문 대통령은 왜 지지자를 배신할까

[이균성 칼럼] 규제와 혁신에 관하여

데스크 칼럼입력 :2018/08/08 11:12    수정: 2018/11/16 11:17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영국의 '붉은 깃발법(적기조례)'까지 언급하며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한다”고 강력한 어조로 말해 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벌써 십 수 년 째 논란이 된 사안입니다. 문 대통령과 시각을 달리하는 쪽은 주로 그의 지지그룹들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내 이 분야 전문가격인 의원들과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이를 반대하는 세력입니다.

그들은 특히 문 대통령에게 크게 배신감을 느낀 듯합니다. 8일 아침 진보를 자처하는 한 조간신문을 보니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재벌과 관료에 포획되는 길을 가고 있다”고 경고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제도가 산업자본(혹은 재벌)의 전횡을 막는 강력한 규제 가운데 하나이니 이들이 느꼈을 허탈감을 이해 못할 바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편협한 외눈박이의 사고일 수도 있을 겁니다.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재벌의 불공정행위를 막아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전횡을 막는 것도 꽤 중요한 일입니다. 금융시장에도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의 씨(혹은 메기)를 뿌려야 할 때이지요. 그 메기가 될 핀테크를 대표하는 업종이 인터넷전문은행이고요. 그러나 이 규제가 족쇄로 작용합니다. 해서, 은산분리 취지는 살리며 메기는 키워내는 길을 찾아내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일 아닐까요.

대통령의 말도 그 현묘한 지점을 같이 찾자는 뜻이지 재벌에 퍼주자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지지자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지지자들의 편협한 사고가 대통령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인터넷전문은행 이슈에서만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갈등의 현장 곳곳에서 반복되겠지요. 혁파해야 할 규제와 새로 만들어야 할 규제는 도처에 널려있고 그곳 모두가 갈등의 현장입니다.

갈등은 왜 생기는 걸까요. 모두가 한 쪽만 보기 때문이겠지요. 사물이나 현상은 다양하고 복잡한 것이 진실인데, 오직 자신의 이해만 고려한 시선으로 극히 단순화해서 보면 진실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세상은 투쟁의 정글이 되는 거지요. 법치주의 사회에서 투쟁의 대상은 바로 규제입니다. 규제는 다른 말로 하면 법과 제도고 그걸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패싸움 하는 거죠.

갈등을 줄이는 방법은 뭘까요. 합의 문화를 키우는 것밖에 없습니다. 합의를 하려면 이해관계가 엇갈린 서로가 적당히 양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정치입니다.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게 바로 그 정치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 국회를 욕하지만 멱살 잡고 패싸움을 하는 곳은 비단 국회만이 아닙니다. 왜 우리는 정치를 못할까요. 무지와 불신 때문입니다. 앞날을 모르고 서로를 믿지 않는 것이죠.

무지와 불신이 넘치면 문재인 정부 3대 경제 정책은 그 자체로 갈등의 씨앗일 뿐입니다. 어찌 보면 서로 모순되는 정책이기 때문이지요. 3대 정책 중 하나인 공정경쟁이란 화두를 거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워낙 좋은 어휘니까요.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은 어떤가요. “빨갱이”라는 우(右)의 욕설이 벌써 들리는군요. 혁신성장과 규제혁파는요. 이번엔 “배신자”라는 좌(左)의 비판이 난무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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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우리 국민은 개나 돼지와 같으니 스웨덴이나 덴마크 사람들처럼 복지가 좋은 나라에 살 희망을 가지면 안 되는 걸까요. 그런 정책을 고민하면 그저 빨갱이인 것인가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구글의 창업자에 비해 뭣도 아니니 우리 혁신 기업가들은 실리콘밸리의 좋은 투자시스템을 희망하면 안 되는 걸까요. 그런 정책을 고민하면 그저 자본가에 포획되는 일인가요.

포용적 복지도 혁신 성장도 모두 필요합니다. 때론 그 사이에 모순도 있겠지요. 우리는 덴마크나 스웨덴이 아니고 미국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미국의 진정한 정치인은 스웨덴의 복지 정책을 고민할 것이고, 스웨덴의 진정한 정치인은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고민할 겁니다. 우리처럼 스웨덴 정책을 빨갱이라 욕하거나, 미국 정책을 자본에 포섭됐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