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7년소송, 디자인 특허 현대화했다

19세기 규정, 21세기에 맞게 재해석 길잡이

홈&모바일입력 :2018/06/28 15:23    수정: 2018/06/29 10:1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었다. 삼성과 애플이 펼친 7년 간의 특허전쟁은 비교적 조용하게 마무리됐다.

물론 합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다. '같은 내용으로 다시는 제소할 수 없는(with prejudice)' 조건으로 소송을 취하한 점을 감안하면 합의 조건이 만만찮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회사 모두 적절한 시기에 ’명예로운 출구 전략’을 찾아낸 것으로 평가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오히려 연방대법원 무대까지 밟았던 두 회사 소송은 디자인 특허 관련 규정을 현대화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19세기에 제정된 디자인 특허 관련 규정을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사진=씨넷)

■ 연방대법원, 특허법 289조 '전체 이익 배상' 규정 재해석 성과

2011년 시작된 삼성과 애플 특허소송의 핵심 쟁점은 ‘둥근 모서리’를 비롯한 애플 디자인 특허 3건이었다.

1심에서 삼성이 10억 달러를 웃도는 징벌적 제재를 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도 디자인 특허 침해였다. 삼성은 항소심 판결 직후 대법원 상고를 하면서 그 부분을 문제 삼았다.

1심 판결 당시 삼성에게 거액의 배상금이 부과된 근거 조항은 미국 특허법 289조였다. 디자인 특허 침해 배상 관련 규정인 289조는 이렇게 돼 있다.

“디자인 특허 존속 기간 내에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중간 생략) 그런 디자인 혹은 유사 디자인으로 제조된 물품을 판매한 자는 전체 이익 상당액을 권리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 조항에 따라 1심법원은 삼성에 디자인 특허 침해에 대해 3억9천900만달러 배상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삼성은 연방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문제제기했다.

애플 D305 특허 개념도. 배심원들은 이 디자인 특허가 아이폰 전체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라고 판단했다. (사진=미국 특허청)

삼성이 문제제기한 특허법 289조는 1887년 제정됐다. 그 무렵까지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던 디자인 특허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침해 때는 전체이익 상당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이 규정은 주전자나 카펫처럼 디자인 특허가 사실상 제품 전체나 다름 없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스마트폰처럼 복잡한 제품들은 디자인 특허가 미치는 영향은 그 때보다는 훨씬 적다. 그렇기 때문에 특허법 289조는 변화된 상황에 맞게 새롭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는 게 삼성의 주장이었다.

연방대법원은 삼성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 2016년 12월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제품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 사실상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인 판결이었다.

다만 연방대법원은 당시 디자인 특허 침해 보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제조물품(article of manufacture)’에 대해선 하급법원이 다시 논의해보라면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디자인 특허권의 영향이 미치는 제조물품은 반드시 제품 전체는 아니다’는 것이 연방대법원 판결의 기본 취지였다.

■ 미국 의회에서 후속 입법 나설 지도 관심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 배심원들이 지난 5월 ’아이폰 UI 디자인 특허는 사실상 제품 전체다’는 취지의 평결을 내놓자 “대법원 판결 취지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건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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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에서 완벽한 역전 승리가 가능해보였던 소송이 일반인들로 구성된 배심원 평결에서 뒤집어진 건 삼성에겐 두고 두고 아쉬운 부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애플 간 7년 특허 소송은 ‘디자인 특허 규정 현대화’란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남겼다. 연방대법원 판결 취지를 미국 의회가 수용할 경우 디자인 특허 관련 법을 현대화하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