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암호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을 재산적 가치가 있다고 판결함에 따라 법조계에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성격과 정의 규정을 위한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디넷코리아는 암호화폐와 관련한 다양한 쟁점에 대해 법률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주는 전문가 칼럼을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다. 전문가 칼럼을 맡은 한서희 변호사는 2007년 49회 사법시험을 합격해 2010년 사법연수원 제39기를 수료했다. 201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대학원에서 경제법과 관련해 석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2011년 법무법인 바른에서 공정거래·기업자문 등의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편집자주]
세상에 많은 거래소가 있다. 거래 대상물은 다양하지만 일관성이 있다. 바로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들만 거래소에서 거래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 세계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암호화폐(가상화폐·가상통화)는 이미 그 재산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상화폐의 재산적 가치에 대해서 각국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법원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지 최근 선고된 대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 암호화폐는 화폐인가
암호화폐의 대표주자 격인 비트코인은 2011년 초 실크로드 사건이 터지면서 음성적, 비공식적인 인터넷 환경에서 불법적인 거래의 수단으로 비트코인이 이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암호화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암호화폐의 결제수단으로서의 기능에 대해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상화폐는, 마치 게임머니처럼, 어떤 한정된 영역 내에서는 사적인 교환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실제 교환가치를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법률상 인정되는 지급결제수단은 아니기 때문에 화폐로 볼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지급결제수단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률에서 결제수단으로 규정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암호화폐를 지급결제수단으로 규정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암호화폐를 지급결제의 수단으로 볼 수 없다.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가상화폐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라도 의심 거래의 경우에는 각 은행들이 신고의무를 부담하기는 하나, 암호화폐 거래가 가이드라인에 규정된 것은 의심거래를 감독하기 위한 목적에 불과한 것이고 가상화폐를 지급결제수단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에서는 자금결제법상 암호화폐를 '대가의 변제를 위하여 불특정인에 사용할 수 있으며, 또한 불특정인을 상대방으로 구입 및 매각할 수 있는 재산적 가치'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법률로서 가상화폐의 재산적 가치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였으나 그 자체를 '지급결제수단'으로까지 규정한 것은 아니므로, 일본에서도 가상화폐를 법정화폐로서의 자격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재무부 산하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암호화폐를 '일부 환경에서만 통화로 사용되고 진정한 통화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교환수단으로, 특히 암호화폐는 어떤 법정관할지역에서도 법정화폐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고, 암호화폐 중개기관을 자금세탁방지법상 자금서비스업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즉, 아직까지는 암호화폐 그 자체를 지급결제수단으로 인정한 것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보여진다.
■ 암호화폐는 금융상품인가
암호화폐는 이미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리고 코인을 발행해 공개하는 코인공개상장(ICO)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암호화폐를 법정 화폐라고 하긴 어렵더라도 투자 상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순 없을까.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서는 금융상품을 증권과 파생상품으로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가상화폐가 증권 또는 파생상품에 해당한다면 금융상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금융상품 중 증권에 해당할까. 자본시장법은 증권을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증권예탁증권의 6가지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증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암호화폐는 개념상 중앙집권적 발행기관이 존재하지 않고, 취득한다고 해 어떤 조직의 출자 지분권을 바로 획득한다고 보기 어렵다. 신탁제도에서의 수익과도 무관하다. 채무증권이자 지분증권, 수익증권 등에 해당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암호화폐를 자본시장법 상 증권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기초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여 장래의 채권계약을 성립시키는 효력을 갖는 계약은 아니므로 가상화폐는 파생상품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 암호화폐, 재산적 가치 있어
외국에서는 이미 암호화폐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한 다수의 법령 등이 등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자금결제법에서는 가상화폐를 '대가의 지급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제2조), 미국의 선물거래위원회(CFTC)에서도 암호화폐를 상품(Commodity)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선물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암호화폐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몰수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이 의미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태도와는 별개로 암호화폐의 재산적 가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위 대법원 판결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자녀 중 1명에게만 자신이 소유한 전 재산을 비트코인으로 바꿔서 상속받도록 했다고 가정해 보자. 비트코인의 재산적 가치를 부정한다면 비트코인 증여에 따른 유류분반환청구소송 따위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라면, 비트코인을 상속받지 못한 다른 상속자들은 비트코인을 상속받은 사람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추측컨대 앞으로 전개될 많은 소송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참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암호화폐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는 판시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 암호화폐, 결국 플랫폼을 형성하는 기반될 것
이미 거래소를 통한 현금 전환이 가능하고, '시세'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상화폐의 재산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 상황에 눈감는 것일 뿐이다. 암호화폐는 기존의 지급결제수단도 아니고, 금융상품에도 해당하지는 않지만 그 재산적 가치를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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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암호화폐가 유의미한 재산적 가치를 가진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암호화폐는(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겠지만) 분명 의미 있는, 플랫폼을 형성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플랫폼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코인이 존재한다면 그 코인의 가치는 결국 그 플랫폼의 가치와 연동하여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 때에도 사람들이 '가상화폐 광풍은 결국 튤립파동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와 그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법과 제도는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의 행위를 규정하고 그 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존재하는 현실과 법·제도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면 혼란이 가중될 뿐이다. 이러한 점을 정부 당국 관계자들도 어서 빨리 깨닫는 날이 오길 바란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