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인 지정제’ 하면 인터넷 역차별 해소될까?

“대리인 자격요건·책임·의무 규정 쉽지 않아”

인터넷입력 :2017/12/27 14:03    수정: 2017/12/27 14:03

국회 입법공청회에서 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의 역차별 해소를 위해 유럽과 같은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실효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됐다.

해외 사업자들이 국내에서 사업을 전개할 때 이용자 민원처리를 담당하고 행정부와 소통하는 대리인을 두도록 의무화한다는 내용인데, 대리인의 자격요건과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또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규제 논의에만 머물러선 안 되고, 미국 주도의 디지털 영토 전쟁에 맞서 우리 정부와 규제 당국이 힘을 보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 “역차별 해소 위해 ‘대리인 지정제’ 도입해야”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김성태 의원,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김성태 의원은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뉴노멀 시대의 국내외 역차별 해결책은?’이라는 주제로 입법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번 공청회는 김 의원이 지난 9월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일명 뉴노멀법)과 함께 내년 2월 임시국회 때 병합 심사할 새로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초안을 공개하기 위한 자리였다.[☞관련기사: 역차별 ‘뉴노멀법’, 국회 법안심사 소위 간다]

새 개정안은 김성태 의원의 뉴노멀법이 국내외 기업 간의 역차별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란 업계와 언론의 거센 비판과 지적이 일자, 이를 보완하는 목적에서 마련됐다.

내년 2월 임시국회 법안심사소위 때 병합심사를 목적으로 한 새 개정안의 핵심은 국내법을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도 적용 받도록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국내에 법인이 없는 해외 사업자라 하더라도 대리인을 지정해 국내 이용자의 민원을 처리하고, 행정부와 소통하는 역할을 시킨다는 계획이다. 해외 사업자가 이용자 피해를 발생시켰을 경우, 대리인에 대한 처벌과 책임을 묻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관련기사: “구글 등 외국기업, 유럽처럼 행정 대리인 둬야”]

김성태 의원이 꺼낸 대리인 지정 제도는 유럽연합(EU)이 내년 5월부터 시행하는 개인정보보호 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이하 GDPR)을 착안한 것이다.

앞으로 해외 사업자들은 EU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면 현지지사를 두거나, EU 회원국 내 업체를 통해 대리인을 지정해야 한다. EU 밖에서 EU에 거주하는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도 GDPR이 적용된다.

■ “대리인 지정제, 역차별 해법 아냐”

방통위 김재영 이용자정책국장이 대리인 지정 제도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문제는 대리인 지정 제도가 인터넷 업계와 학계, 언론 등 전문가들이 우려를 제기한 역차별 해소에 별 다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정부는 일정 자격을 갖춘 자연인이나 법인, 변호사나 로펌 등을 대리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시각이나, 자격 요건과 관련해서는 심층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현시점의 한계를 인정했다. 또 대리인의 책임과 의무를 어디까지 둘지, 또 처벌 범위는 어느 선까지 설정할지 등도 논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 김재영 이용자정책국장은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는 매우 의미있는 제도로, 방통위 실무진에서도 도입을 검토했던 사안”이라면서도 “다만 대리인을 지정할 때 국제법 상호주의원칙, 해외사업자 기준, 대리인 자격요건, 책임과 의무 범위 등은 심층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한계와 문제로 만약 대리인이 단순히 고객응대를 하는 창구 역할에만 그친다면 해외 사업자들이 국내법을 적용받는 데 별다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특히 역차별 문제의 중심에 있는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인터넷 기업들은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별 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해외 앱 사업자들만 해당될 거란 입장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차재필 정책실장은 “역차별 해소방안의 기본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여전히 실행력 담보 측면으로 볼 때는 문제가 남아있는 것 같다”며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인터넷기업들과의 역차별 문제는 이들이 국내에 대리인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국내 사업자와 동등한 규제 적용 시 규제 당국의 집행력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소비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담당 업체와의 연락 접점을 찾다보면 김앤장 로펌과 같은 대리인을 만나게 된다”며 “결국 국내 대리인 제도가 사실상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실행력 확보를 위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 “역차별 해소법, 기존 뉴노멀법 규제 더 강화할 우려”

한편 이번 공청회가 역차별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워 국내 인터넷 사업자들을 더 강력히 규제하고, 결국 국가의 디지털 주권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고려대학교 김성철 미디어학부 교수는 “시장에서의 불공정 행위가 많은데, 이에 대한 해결방안이 규제뿐인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면서 “기존 규제는 포섭된 상대를 풀어주는 쪽으로 진화해왔는데, 이번 역차별 해소 법안이 기존의 뉴노멀법 규제를 더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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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울어진 운동장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에서 마련되는 법안으로 운동장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며 “인터넷 시장은 규제 기관이 한발 물러선 소극적 규제가 필요하다. 역차별에 맞서 국내 기업들이 시장에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진흥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숭실대학교 박진호 소프트웨어학부 교수는 “국가 간 디지털 경쟁이 과열되는데 기업이나 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법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외국 기업들도 매출과, 경쟁상황평가 등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에 맞는 역할을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