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킹 뉴스’란 책이 있다. 게이 터크만이 1970년대에 쓴 이 책은 저널리즘 쪽에선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
터크만은 신문사 참여 관찰을 통해 어떤 과정을 통해 뉴스가 생산되는지 잘 정리했다. 특히 그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뉴스 제작진들이 일정한 틀(FRAME)을 갖고 접근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 틀의 특징에 따라선 뉴스의 내용이 윤색되기도 한다는, 당시로선 굉장히 파격적인 결론을 내놨다.
이 책 첫 머리에 나오는 “뉴스는 세계로 나 있는 창이다”는 말은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터크만의 통찰이 아니더라도 뉴스는 절대로 객관적이지 않다. 어떤 아이템을 선정하고, 취재해서 기사를 쓰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이미 기자의 ‘관점’과 편견이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전통 저널리즘 시대엔 공급이 수요를 결정했다. 한정된 인적 자원으로 한정된 분량의 기사를 생산해야 하는 언론사 입장에선 수요를 최대한 자극할 수 있는 ‘틀 짓기’에 주력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나오면서 이런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잘 아는 대로 AI와 알고리즘을 활용한 생산의 최대 강점은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큰 부담 없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할 수 있다.
흔히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사회 전반의 시스템, 특히 일 자리에 많은 변화를 몰고오는 건 이런 배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저널리즘 영역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그 동안 언론은 ‘보편적인 상품’을 보편적인 독자들에게 보급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특별한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뉴스 시장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 WP, 자동생산 알고리즘으로 고교 풋볼 보도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인기가 많이 시들해진 고등학교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관련 기사를 풍부하게 보기 힘들다.
그래도 야구는 좀 낫다. 고교 하키나 수영 같은 종목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자신들의 취미 욕구를 만족시킬 정도로 기사를 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언론사들이 기자를 투입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AI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쏟아지는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기사를 쏟아낼 수도 있다.
좀 더 발전할 경우엔 개인 맞춤형 기사 생산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하키 A팀의 B 선수에게 관심 있는 독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경우 정교하게 개발된 AI 알고리즘은 그 욕구를 충족해줄 기사를 무한정 생산할 수 있다. 그것도 추가 비용 부담 전혀 없이.
여기까지 얘기하면 공상과학(SF) 소설 같은 얘기라고 하실 분이 있을 것 같다. 해외 언론사들에선 이런 시도들이 심심찮게 이뤄지고 있다.
제프 베조스 품에 안긴 뒤 ‘혁신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자체 개발한 자동 스토리텔링 기술인 헬리오그래프(Heliograf)를 활용해 고등학교 풋볼 경기를 보도하겠다고 발표했다.
경기 결과, 개별 선수들의 기록 등을 종합해 다양한 기사를 쏟아내겠다는 얘기다.
■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
워싱턴포스트 측은 “헬리오그래프를 활용해 보도 범위를 넓히면서 기자들은 좀 더 깊이 있는 심층 보도에 주력할 수 있게 됐다”면서 “헬리오그래프 같은 기술은 뉴스룸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AI와 사물인터넷(IoT) 같은 첨단 기술이 몰고 올 거대한 변화는 지금 우리 가까이 와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탐탁치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곁에 와 있는 거대한 변화를 외면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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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새로운 시도는 SF 작가로 유명한 윌리엄 깁슨의 유명한 말을 다시금 되뇌이게 만든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