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기사가 '사람 기자'에게 던지는 경고 메시지

데스크 칼럼입력 :2016/01/22 11:05    수정: 2016/01/22 11:2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어제 증권 시황 기사 한 편이 화제가 됐다. 국내 모 경제지가 송고한 코스피 시황 마감기사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21일 코스피가 4.92포인트 하락하면서 1840.53 포인트로 마감됐다는 내용이었다. 흔하디 흔한 시황기사였다.

화제가 된 건 이 기사를 쓴 기자였다. 기사 끝에는 IamFNBOT 기자라고 돼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지에도 로봇 기자가 등장했다는 점 때문에 잔잔한 화제를 몰고 왔다.

로봇 저널리즘이 대중적으로 관심을 끈 건 지난 2014년 3월 무렵이다. 당시 LA타임스의 ‘퀘이크봇’이 자동 알고리즘을 이용해 캘리포니아 지진 속보 처리를 했다는 보도가 계기가 됐다.

그 무렵 미국에선 로봇이 언제쯤 퓰리처상을 받을 것인가란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C-3PO(왼쪽)와 R2D2. 로봇 기자는 이들처럼 움직이면서 취재하는 기자가 아니라 알고리즘이다.

■ 웬만한 기사는 사람 못지 않게 처리하는 로봇

2014년 7월엔 AP통신도 로봇을 활용한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AP는 기업 분기 실적 기사 쪽에 초점을 맞췄다. 6개월 뒤 AP는 로봇 도입 이후 실적 기사 건수가 10배 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 해엔 국내에 로봇 저널리즘을 다룬 연구서도 등장했다. 언론진흥재단 김영주 박사 등이 펴낸 <로봇 저널리즘>이다. 당시 연구팀은 로봇과 사람이 쓴 기사를 가려내는 실험 연구도 병행해 화제가 됐다.

특히 놀라웠던 건 실험 결과였다. 일반인 뿐 아니라 기자들조차 로봇 기사와 사람 기사를 제대로 구분해내지 못했다. 짜여진 기사를 처리하는 덴 로봇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결과였다.

때마침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직업의 미래(The Future of Jobs)’란 보고서를 내놨다.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같은 신기술이 주도할 제4차 산업혁명 여파로 앞으로 5년 동안 선진 15개국에서 약 5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게 골자였다.

국내 경제지에 등장한 로봇 기사.

로봇 기자의 등장은 언론계도 4차 산업혁명의 무풍지대가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란 경고장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실제로 일부 호사가들은 ‘로봇이 기레기를 몰아낼 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과연 그럴까? 난 개인적으로 ‘로봇 저널리즘’이나 ‘로봇 기자’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부르자면 ‘알고리즘 저널리즘’이 적합한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로봇 기사는 ‘미리 짜여진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한다. 이를테면 시황 같은 경우 상승률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는 등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조금 응용하자면 ‘깜짝 상승’이나 ‘폭락’ 같은 표현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 AP, 실적 기사에 도입한 뒤 크게 만족

이 대목에서 한번 따져보자. 우리는 전통적인 기자 교육 중 상당 부분을 ‘기사 쓰는 알고리즘’을 가르치는 데 할애해 왔다. 일정한 공식에 기사를 끼워 맞추는 훈련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사 형식을 익혀왔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훈련이다. 어느 업종이든 처음 입사하면 공식에 따라 업무를 배우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전문직으로 통하는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본을 알아야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자들의 글쓰기는 시간이 흘러도 알고리즘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여전히 많은 언론들은 보도자료나 각종 발표 자료를 따라잡는 쪽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AP통신은 2014년 7월부터 실적 기사에 한 해 로봇으로 대체했다.

요즘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어뷰징 기사’는 아예 내용은 없고 알고리즘만 남아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어뷰징이란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더라도 현재 기자들이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업무 상당 부분은 수습 때 배운 알고리즘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지난 2014년 AP가 로봇 기자를 도입한다고 선언할 당시 미국 잡지 <애틀랜틱>이 흥미로운 지적을 했다. 그 동안 AP통신 기자들은 실적 기사를 처리할 때 로봇과 같은 방식으로 해 왔다는 것이다.

<애틀랜틱>은 또 AP통신이 로봇 기자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미국 주요 언론의 기사도 전부 비슷비슷했다고 꼬집었다. AP 보도 자료를 요약해주는 선에서 처리하다보니 제목부터 본문 내용까지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초등학교 입학생 65%는 지금 없는 직종에 종사"

알고리즘을 활용한 로봇 기사는 국내 경제지를 중심으로 조금씩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이달 말경엔 주요 경제지 두 곳이 또 로봇 기사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해답의 단초를 찾기 위해 WEF의 ‘직업의 미래’ 보고서를 살짝 들쳐보자.

‘직업의 미래’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를 위해 대비하기’란 1부에서 깜짝 놀랄 전망을 인용했다. 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중 65%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할 것이란 전망이다.이 전망은 2016년 현재 저널리즘 종사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지 않을까? 지금 일상적으로 처리하는 일중 65%는 몇 년이 지나면 더 이상 사람 기자의 일거리가 아닐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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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는 책에서 ”자신의 일을 아웃소싱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경고한 적 있다. 로봇 저널리즘이 기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단순 사실보도’나 ‘보도자료 의존한 기사’ 같은 것들은 더 이상 기자들의 경쟁 포인트가 되기 힘들 것이란 엄중한 경고 메시지.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