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해진 IT 뉴스 시장 헤쳐나갈 지혜

데스크 칼럼입력 :2015/12/16 11:35    수정: 2015/12/16 13:5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T 쪽은 다른 분야에 비해 외신이 중요한 편이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도 외신 쪽에서 중요한 뉴스가 많이 나온다. 경쟁 무대가 글로벌 시장으로 옮겨간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IT기자들은 아침에 외신 기사 따라잡는 게 중요한 일이다. 주요 뉴스 플랫폼에서도 외신 기사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편이다. 간단한 소문부터 공을 들인 분석까지 엄청나게 많은 기사가 매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IT업계의 한 유력 인사로부터 조금은 충격적인, 하지만 충분히 짐작 가능한 얘기를 들었다. 자기는 직원들에게 국내 언론이 보도한 외신 기사 보지 말라고 한다는 얘기였다. 그냥 외국 사이트에 가서 직접 보는 게 훨씬 낫다는 게 그 분의 논지였다.

애플 뉴스앱 (사진=씨넷)

■ '단순 전달'만으로도 경쟁력 갖던 호시절은 가고

충격적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현재 국내 언론사들이 아침에 쏟아내는 IT 외신 기사들은 대부분 ‘단순 인용 보도’이기 때문이다. 웬만큼 영어 하는 사람이면 굳이 한 단계 거친 기사 볼 것 없이, 그냥 원 기사 그대로 접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내가 처음 기자 생활할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달라진 풍속도다. 1990년대엔 외국 신문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경쟁 포인트였다. 국내 많은 독자들은 외국 소식을 알 경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간단한 인용 보도조차도 소중한 정보였다. 기자들에겐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 같은 호시절 얘기다.

미국의 대표적인 큐레이션 사이트인 테크밈.

그런데 해외 뉴스 쪽에선 그런 장점이 완전히 사라졌다. 일부에선 ‘특파원 무용론’까지 거론할 정도로 해외 소식이 실시간으로 쏟아져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IT 기자들은 외신 뉴스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누구나 볼 수 있으니 그냥 외국 사이트에 가서 봐라, 고 내팽개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단순 인용 보도만 계속 하자니, 장기 경쟁력이 걱정된다.

물론 이런 상황은 꼭 IT 외신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현장을 뛰는 대다수 기자들이 늘 피부로 느끼는 문제들이다. 인터넷으로 촉발된 정보 혁명이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폭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젠 ‘단순한 사실 전달’만으론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채기도, 또 관련자들의 사랑을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모두 공짜로 물건 내다파는 시장 같은 상황

여기서 잠시 책을 한번 들쳐보자. 솔직히 털어놓자. 최근 내가 번역한 <비욘드 뉴스, 지혜의 저널리즘>란 책이다. 이 책 저자인 미첼 스티븐스는 언론 역사 관련 고전적 저술인 <뉴스의 역사>를 쓴 저명한 학자다. <비욘드 뉴스, 지혜의 저널리즘>은 언론의 과거를 훑었던 저자가 뉴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최근 뉴스 경쟁 상황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주요 언론사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판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세계 모든 슈퍼마켓 뿐 아니라 온갖 가족 경영 식료품점과 농장들이 밀집해 있는 마을에서 식료품을 판매하려고 애쓰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이런 비유는 어떨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든 물건을 공짜로 내다팔고 있는 상황.” (95쪽)

저자의 비유가 조금 과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곰곰 따져보면 크게 잘못된 분석은 아니다. 이젠 쉴새 없이 쏟아지는 사실(fact)만 따라다녀선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저자는 ‘지혜의 저널리즘(wisdom journalism)’이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혜의 저널리즘? 저자는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한층 강화해주는 저널리즘’이란 말로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단순한 사실보다는 분석과 해석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이런 설명이다.

“이제 ‘누가’ ‘무엇을’ ‘언제’ 그리고 ‘어디서’가 인터넷에 과다 노출되면서 싸구려로 전락함에 따라 ‘왜’가 더 많은 가치를 갖게 됐다. 그것을 위해선 생각을 해야만 한다. 때론 전문 지식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전통 저널리즘에서 자주 실종되는 요소, 즉 설명을 해 준다. 취재원에 적용하게 되면 동의하건 혹은 반대하건 간에 ‘왜’는 저널리스트로 하여금 누가 어떤 주장을 했다는 단순한 속기술 보도 이상을 얻도록 해 준다. 더 깊은 이해를 향해 갈 수 있도록 해 준다.” (137쪽)

■ 지혜의 저널리즘은 대체 뭘까?

미첼 스티븐스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이제 언론 환경이 예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20세기적 접근법 중 상당 부분은 새로운 환경에 맞게 손을 볼 필요도 적지 않다. 혁신이란 추상적인 말보다는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한 때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문제의식은 “예전엔 몇몇 슈퍼마켓이 있던 시장에 이젠 일반인들까지 뛰어들었다”는 상황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다른 회사 기자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잠재 경쟁자로 변해버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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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자들은 ’전통적인 사실보도’만으론 더 이상 부가가치를 갖기 힘든 현실. 따라서 사실 뒤에 숨어 있는 ‘의미’와 ‘배경’을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뼈아픈 자기 각성이 불가피하단 얘기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계속 고민스런 문제다. IT 쪽, 특히 IT 외신 쪽의 최대 경쟁자는 ‘부지런하면서도 밤잠까지 없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들도 감동하면서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 그 부담감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지혜와 통찰이 더더욱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