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한 때 친구였다. 서로 격려하면서 우정을 다졌다. 늘 함께 하자고 다짐했다. 삶은 팍팍했지만, 그들의 우정엔 그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훌쩍 흘렀다.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다. 나름 자기 분야에서 성공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소싯적 친구였던 둘은 운명처럼 다시 만났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생각보다 심한 장난을 쳤다. 마음을 나눴던 친구였던 둘은 적으로 맞닥뜨리게 됐다. 통속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스토리 라인이다.
운명의 장난같은 이런 일이 미국에서 벌어지게 생겼다. 주인공은 AOL과 타임워너. 한 때 ‘세기의 결합’이란 평가 속에 몸을 섞었던 사이다.
■ AOL, 타임워너 떠나보낸 뒤 디지털 미디어 기업 변신
물론 둘의 결혼은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 2000년 합병과 동시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점령군’이던 AOL의 젊은 경영진은 타임워너의 ‘늙은 문화’가 못마땅했다. 전통 콘텐츠 강자 타임워너의 눈에 비친 AOL은 철부지였다.
그렇게 둘은 ‘심한 부부싸움’을 한 끝에 3년 만에 별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9년 만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 뒤 둘은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았다. 2009년 타임워너와 결별한 AOL은 곧바로 변신을 시작했다. 변신을 주도한 것은 구글 출신인 팀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는 메신저를 비롯한 서비스를 대거 포기하는 대신 디지털 미디어 회사로 변신을 꾀했다.
2009년 테크크런치에 이어 2011년엔 허핑턴포스트를 인수했다. 허핑턴포스트 창업자인 아리아나 허핑턴은 AOL의 최고콘텐츠책임자로 들어왔다.
AOL이 공을 들인 건 콘텐츠 뿐만이 아니었다. 온라인 광고 플랫폼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2011년 야후,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경쟁사들과 광고 판매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이듬해부터는 온라인 동영상 광고를 주요 수익원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결국 AOL은 지난 해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 품에 안겼다. 버라이즌이 AOL의 콘텐츠 뿐 아니라 광고 플랫폼 쪽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AOL은 올해 인수된 야후와 함께 버라이즌의 모바일 변신 전략의 핵심 축이 됐다.
■ 타임워너, 케이블+종이잡지 떼낸 뒤 디지털 콘텐츠 확충
한 때 AOL과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지냈던 타임워너의 삶도 신산하긴 매한가지였다.
AOL과 결별한 타임워너는 2009년 타임워너 케이블도 떠나보냈다. 타임워너에서 떨어져나온 타임워너 케이블은 지난 2014년 또 다른 케이블 사업자 차터에 인수됐다. 타임워너는 또 다른 축이던 ‘타임’ 잡지도 2013년에 매각했다.
케이블과 종이잡지를 떼낸 타임워너는 본격적으로 콘텐츠 쪽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2010년 미국 대학스포츠 연맹과 공동으로 NCAA 디지털을 설립한 데 이어 2012년엔 파라마운트와 블루레이 DVD 유통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2010년 게임 스튜디오 터빈을 인수한 것도 눈에 띈다. 2012년엔 스포츠 사이트 블리처 리포트를 인수했다. 이 사이트는 터너 스포츠 산하에서 운영된다.
타임워너는 한 때 인수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2014년 21세기 폭스가 800억 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한 것. 하지만 결국 이 제안은 없던 일로 됐다.
당시 21세기 폭스는 타임워너를 인수할 경우 CNN을 매각할 의향이었다. CNN 라이벌인 폭스뉴스를 갖고 있어 반독점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타임워너 경영진들은 폭스의 제안을 거부했다. CNN 매각도 없던 일이 됐다.
폭스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주주들의 불만을 샀던 타임워너 경영진은 결국 통신사인 AT&T와의 결합을 성사시키는 데 성공했다.
■ 한 지붕 두 가족→적으로 만난 두 기업의 운명은?
덕분에 한 때 한 가족처럼 지냈던 AOL과 타임워너는 ‘로미오’와 ‘줄리엣’ 비슷한 사이가 됐다. 미국 통신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버라이즌과 AT&T의 차세대 성장 전략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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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 때 ‘사이 나쁜 부부’였던 둘이 ‘진짜 앙숙관계’가 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AT&T의 타임워너 인수가 최종 확정되기까지는 만만찮은 걸림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지붕’을 덮고 있던 사이에서 적으로 뒤바뀐 두 기업의 사연이 유난히 흥미를 끈다. 제 아무리 돌고도는 비즈니스 세계라도 해도 둘의 관계가 얄궂은 건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