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은 세계 휴대폰史에 기록으로 남을 만한 해로 기억된다.
노키아가 미국의 자존심 모토로라를 꺾고 세계 시장 1위에 올라선 바로 그 해다. 모토로라가 누구인가. 워키토키(무전기)에서 세계 첫 휴대전화 다이나텍, 쉘 타입의 스타텍, 칼날 같은 레이저는 물론 페이저(삐삐) 시장까지 호령하던 원조 휴대폰 기업이다.
그런 모토로라를 제친 요르마 올릴라(jorma ollila) 당시 노키아 최고경영자(CEO)는 "이제 글로벌 휴대폰 제조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이는 유럽의 변방 기업에서 세계 휴대폰 산업의 주도권을 거머쥐는 노키아 시대를 알리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노키아는 이후 몸집 불리기에 나선다. 시장도 노키아 편이었다. 당시 모토로라, 에릭슨, 알카텔, 지멘스, 필립스 등 경쟁사들은 모바일 수요 예측 등 변화하는 시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급기야 수익 악화로 인한 인력 감축과 주가 하락으로 고전하며 허우적댄다. 필립스는 미국 루슨트와의 휴대폰 사업 진출 계획까지 취소하고 만다.
노키아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대규모 라인업 확장과 연구개발(R&D) 투자를 감행한다. 제품의 효율성을 높이고 프리미엄에서 저가형 모델까지 촘촘히 제품을 깔았다. 세계 곳곳에도 연구-생산 공장을 짓는다. 그 결과 경쟁사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단박에 유럽-아프리카, 북미와 아시아 등에서 수직 성장세를 이룬다. 세계 어디를 가도 현지인의 한쪽 주머니에는 노키아 휴대전화가 꼽혀 있었다. 절정기 노키아 휴대전화 점유율이 무려 40%에 육박했으니 그야말로 ‘노키아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삼성전자가 '절대강자' 노키아를 넘어 휴대폰 글로벌 톱에 오른 것은 2012년이다.(노키아의 휴대폰 사업부문은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렸다.) 통신 불모지 아시아의 삼성전자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노키아의 아성을 14년 만에 무너뜨린 것이다. 물론 이같은 성과는 성공의 법칙이 그러하듯 혼자의 힘으로만 이룬 결과는 아니다. 2007년 스마트폰의 정석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은 애플의 창조적 파괴(?)의 힘이 컸다.
또 노키아, 모토로라, LG전자, 림(RIM) 등 선두 경쟁사들이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딜레마도 작용했다. 일반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재편기라는 시대적 변화가 삼성전자에게는 천우신조였던 셈이다. 하지만 1988년 첫 휴대전화(SH-100)를 개발한 이후 삼성전자의 끈질긴 생존 근성과 발 빠른 경영 판단이 없었다면 세계 1위 도약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노키아를 제친 이듬해인 2013년, 삼성전자는 정점을 찍는다. 그해 3분기 매출이 59조원, 영업이익은 10조1000억원에 달했다. 단군 이래 최고 실적이다. 당시 스마트폰 사업을 책임지는 IM(IT & Mobile) 사업부의 매출이 36조5천억원, 영업이익은 6조7천억원이었다. IM 단일 사업부가 전사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6%를 차지한 셈이다. '갤럭시가 살아야 삼성전자가 산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후 삼성전자는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중저가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과 피 말리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수익성과 시장 지배력이 점차 약화됐다. 삼성전자가 노키아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부터 스마트폰 시장에서 사실상 애플에 왕좌를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암울한 평가가 쏟아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실적과 시장 점유율에서 의미있는 턴 어라운드에 성공하며 다시 일어서고 있다. 1분기 IM 부문 매출은 27조6천억원, 영업이익 3조8천900억원을 벌었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각각 6.6%, 42.0% 씩 상승한 수치다. 비율적으로 절정기 때 IM 사업부 영업이익도 거의 회복됐다. 13년만에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애플과의 시장 격차(6.3%p→8.3%p,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기준)도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같은 시그널이 단기적 국면인지, 아닌지는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다. 애플은 여전히 절대적 시장 수익을 점유하고 있고, 중국의 추격도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시장도 포화 상태다. 하지만 그동안 삼성전자에 제기된 위기의 헷징에 있어서는 꽤 긍정적이다.
이같은 전망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지난 3월 출시된 최신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7의 완성도와 시장 반응이 꽤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갤럭시S7은 전작에 비해 탄탄한 셀-아웃(Sell-out) 판매량과 낮은 재고량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미 등 현장에서 반응이 좋아 제품이 즉시 팔려나간다는 전언이다. 2분기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갤럭시A, J, C 시리즈 등 중저가 라인업 강화와 판가(ASP) 회복은 삼성전자가 중국과 신흥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 상실을 최대한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는 9월 애플 '아이폰7'의 반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S시리즈에 이은 하반기 삼성의 '갤럭시노트6'의 제품 완성도와 시장 공세 역시 극대화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특유의 고가와 중저가 라인업이 갖는 투트랙 전략이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란 전망이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제조업 DNA에 소프트웨어·서비스 DNA를 접목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갤럭시S7를 공개하면서 "단순한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벗어나 모바일 생태계의 주인공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갤럭시S7을 허브 삼아 웨어러블과 액세서리, 콘텐츠와 서비스를 통합하는 전략으로 시장 리더십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또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 전략적 파트너와 끈끈한 협력 구도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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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마도 삼성전자가 단순히 단말기 세트만 많이 파는 제조업체에 머물러서는 평범해진 스마트폰 시장에서 미래가 없다는 경영 수뇌부들의 메시지일 것이다. 삼성전자가 서비스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을 강조하고 가상현실(VR), 전자기기 상의 지불결제 시스템, B2B 보안, IoT 등 스마트폰을 넘어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에 애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은 PC 산업처럼 수익 전망이 낮은 저성장 산업으로 점점 기울어져 갈 것이다. 삼성전자가 시장의 국면마다 더 소프트해지고 기술과 시장, 소비자 변화에 능동적으로, 때로는 모험적으로 적응해야 할 때다. 길게는 포스트 스마트폰을 찾고 파트너들과의 과감한 협력과 실험에도 나서야 한다. 단말기 제조사로만 홀로 살수 없는 세상이 됐다. 그래야 몰락한 노키아를 넘어 삼성만의 스토리를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