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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해성사 하나 - 오프라인 서점 나들이와 우연한 만남
한 때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 나들이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뚜렷한 목적은 없었다. 딱히 찾는 책도 없었다. 그냥 혼자 한 두 시간씩 시간을 보냈다.
오프라인 서점 나들이의 가장 큰 재미는 ‘우연한 만남’이다. 가끔 뜻하지 않은 코너에서 전혀 의외의 책을 만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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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터넷 서점을 주로 이용하면서 그런 즐거움이 사라졌다. 예측 가능한 책만 주로 만나게 됐다. 뻔한 얘기지만 주로 검색을 통해 책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최근 내 독서의 폭이 좁아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 때문일까? 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의외의 책’을 읽는 빈도는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다시 서점 나들이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2. 유식한 얘기 하나 - 선스타인의 ‘여론 쏠림’ 현상 연구
<넛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같은 저술로 유명한 캐스 선스타인(C. Sunstein)은 인터넷 공간의 여론 쏠림 현상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리퍼블릭 2.0>에선 흥미로운 분석을 하나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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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링크'는 주로 끼리 끼리 이뤄지고 있다는 것.
자신과 상반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기는 커녕, 불편한 의견은 아예 접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때 이후 선스타인의 책을 읽은 적 없어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바일과 SNS 시대가 되면서 ’여론 쏠림 현상’은 더 강화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을 통해 보고 싶은 소식만 접하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색 최적화를 통해 '보고싶어 할' 결과물을 먼저 노출해 주는 구글이나, 관심 있어 할만한 사람을 알아서 찾아주는 페이스북의 뛰어난 알고리즘 덕분에 우리는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3. 주목해야 할 변화 하나 -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변화
최근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골자는 간단하다. 친한 친구들 글을 더 집중적으로 노출하겠다는 게 골자다. 반면 친구들이 다른 곳에서 활동한 내역, 이를테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 것과 같은 행위는 노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알고리즘 변화 소식을 들은 뒤 살짝 걱정이 됐다. 기업들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의 노출도가 크게 줄어들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한 달 전 페이스북이 ‘포털형 뉴스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던 터라 알고리즘 변경 의도가 더 의심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런 걱정을 담은 ‘페이스북 심판의 날이 다가오나’와 같은 글도 썼다.
그 글을 쓴 뒤 “내가 혹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닐까”란 걱정이 살짝 들었다. 아무래도 언론사에 몸담고 있다는 점이 편향된 판단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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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페이스북의 ‘횡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독자들에겐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도 적지 않았다. 쓸데 없는 소음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나도 일정 부분 그 주장에 공감했다. “친구들이 다른 곳에 가서 댓글 남긴 소식까지 내가 꼭 알아야 할까?”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선 분명 깔끔해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소음들이 주는 효용도 적지 않았다. 그런 소음들을 통해 내 견문을 넓힌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페이스북에서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소중한 의견을 나누는 분들도 적지 않다. 내가 '내 친구의 친구'에 관심을 갖는 건 그 때문이다.
4. 걱정되는 얘기 하나 - 개인 맞춤형의 어두운 그림자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짐작했을 것이다. 난 지금 지나친 맞춤형 서비스가 ‘공론의 실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다시 페이스북 얘기로 돌아가보자. 페이스북에서 친구들의 활동 내역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보여주는 데 대해 불편한 적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즐거운 경험이 더 많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접하지 못했을 ’우연한 만남’을 한 경험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연결된 분들도 적지 않다.
이런 경험 때문일까? 난 ‘의도된 만남’ 못지 않게 ‘우연한 만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고 믿고 있는 편이다. 내가 뭘 좋아할 지도 미리 알아낼 수 있다는 버즈피드의 알고리즘을 썩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어제 오늘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변화를 놓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미디어 쪽에 있는 분들은 ‘페이스북의 횡포’를 걱정했다. 그 진단엔 나도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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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더 우려하는 것은 ‘우연한 만남의 즐거움’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계획된 대로 움직이고, 예측 가능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 같아서다.
이런 걸 보면 난 분명 아날로그형 인간인 모양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알약 하나로 식사 한 끼 해결해주는” 상황을 썩 반기지 않는 것과 똑 같은 심정으로 ‘내가 좋아할만한 글들만 골라주는 상황’이 반갑지 않은 걸. 식사의 효용이 ’영양 보충’이란 실질적 목적에만 있지 않은 것처럼, SNS나 미디어 소비 역시 ‘정보 습득’이란 실용성에서만 그 가치를 찾을 일은 아니라는 믿음만은 버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