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노키아 휴대폰 사업 27년 略史

일반입력 :2014/04/29 15:25    수정: 2014/04/29 17:58

김태정 기자

한때 세계 최강의 휴대폰 브랜드였던 노키아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휴대폰 사업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된 데 이어 그 브랜드마저 없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29일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MS의 스티븐 엘롭 디바이스그룹 책임자는 “노키아 브랜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며 “훨씬 더 진취적인(go-forward) 브랜드를 선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에서 노키아를 지우고 MS의 색깔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노키아는 1992년 요르마 올릴라의 최고경영자(CEO) 취임과 함께 기존 사업을 매각하고 정보기술(IT) 분야에 집중하면서 글로벌 최강의 IT기업으로 변신했다. 1998∼2011년 세계 휴대폰 업계 1위 자리를 14년 연속 차지했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는 시장 점유율이 무려 70%까지 치솟았다.

노키아는 우리나와도 일찍 인연을 맺었다. 마산에 노키아TMC라는 휴대폰 생산공장을 만들었는데 1984년의 일이다. 올해 딱 30년이 됐다. 당시 이름은 탠디모비라통신주식회사였다. 이 시절에 국내에서는 지금과 같은 휴대폰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이 해는 국내에 카폰서비스가 처음 선보였다. 올해가 그래서 한국 이동통신서비스 30주년이며, 노키아TMC도 1984년 한국에 들어와 카폰부터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노키아TMC는 사라지는 노키아와 함께 결국 국내에서도 문을 닫기로 했다.

노키아의 역사는 세기를 거슬러 1865년까지 올라간다. 프레드릭 이데스탐이 핀란드 남서부 소도시 ‘노키아’에 세운 종이공장이 모태다. 당시에는 통신이 아니라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드는 펄프회사였다.

소도시 ‘노키아’는 강을 끼고 있어 목재 운송이 편했다. 이데스탐이 회사를 그 곳에 세운 이유다. 초창기 노키아 로고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소도시 ‘노키아’의 강을 뜻한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노키아는 본격적으로 미국 기업에 맞설 공룡으로 성장한다. 케이블과 임업, 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몸집을 키웠다.

처음으로 휴대폰을 만든 해는 지난 1987년이다. ‘모비라 시티맨(Mobira Cityman)’이 그 첫 제품이다. 당시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이 제품을 사용해 화제를 모았었다.

1990년대는 노키아란 꽃이 가장 활짝 핀 시기다. 휴대폰 제왕 자리에 올랐다. 특히 1998년에는 미국 모토로라를 제치고 휴대폰 연 판매량 첫 1위를 차지했다. 핀란드 국민들은 환호했다.

당시 노키아 제품은 ‘싼 맛’에 사는 것들이 아니었다. 유럽형 2세대(2G) 이동통신을 처음 개발한 혁신의 브랜드가 노키아였다. 로열티 수입만으로도 돈 방석을 쌓았다. 기술 혁신과 판매 성적 등 모든 분야에서 적수가 없었다.

이런 노키아에게 2007년은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해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노키아가 끝내 무릎을 꿇어야만했던 신예 아이폰이 그해 상반기에 첫선을 보인 것이다. 아이폰은 이듬해부터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노키아는 애플의 급성장과는 반대로 6년연속 매출과 수익 하락세를 보이자,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MS 출신 스티븐 엘롭을 새로운 CEO로 영입하게 됐다. 엘롭은 취임 후 노키아의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심비안을 불타는 플랫폼으로 규정하고 뛰어내려야 한다(윈도폰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키아의 스마트폰 사업은 호전되지 않았고 2013년 결국 MS에 매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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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스티븐 엘롭은 MS가 파견한 '트로이 목마'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편, 애플 출현 이후 노키아와 함께 위기에 처했던 삼성전자는 노키아와 달리 구글과의 굳건한 안드로이드 동맹을 통해 갤럭시 시리즈를 내놓고 재기에 성공, 2012년에 세계 1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