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공정보화 쪽은…춘궁기예요. 평년보다 좀 길어요. 2011년 하반기부터 계속이니까 거의 1년반 째네요.
공공정보화 사업을 주요 매출원으로 삼아온 중소중견 IT서비스업체들이 보릿고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기관과 중앙부처의 고질적인 예산집행 관행에 정권교체기와 맞물린 시장침체가 겹친 악천후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중견 IT서비스업체들에게 올해 1분기는 유독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대규모프로젝트가 적다. 연초는 원래 중앙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 수십억원 이상 규모의 주요 프로젝트 수행을 제안하는 시기다. 입찰경쟁이 평년 5대1 정도였다면 요즘은 7대1~10대1까지 치열해졌다.
또 한 IT서비스업체는 연초 10억원 미만 규모로 발주된 지방자치단체 정보화사업 BMT 설명회에 42개업체 담당자 120여명이 몰려드는 기현상도 있었다고 전했다. 수십억단위 프로젝트도 아닌 지자체 사업에 업체들이 평년대비 2~3배 이상 몰려들었단 얘기다.
이에 업계는 정부 공공정보화 발주관행의 원죄를 짊어진 안전행정부(과거 행정안전부)와 지식경제부로부터 소프트웨어(SW)산업 살리기의 숙제를 떠안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새정부 기조에 맞춰 조직을 정비한 뒤 업계의 개선 목소리를 반영해주길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최근까지의 흐름만으로는 정부가 이 기대에 부응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달초 기획재정부는 '2013년도 공기업, 준정부기관 예산집행지침'을 통해 각 공공기관에 경기불확실요인에 선제 대응하고 서민생활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예산 조기집행을 추진한다는 일반지침을 제시했다. 그 핵심 내용은 '조기집행'이다.
문구를 인용해 보면 ▲일자리지원사업, 대규모SOC사업, 취약계층지원 및 민생안정사업을 별도 중점관리하고 조기집행할 것 ▲2012년도 이월사업, SOC계속사업 등 집행이 용이한 사업은 상반기 중 최대한 집행할 것 ▲2013년 신규사업은 사업계획 수립, 설계, 발주, 계약 등 집행을 위한 사전절차를 최대한 조속히 추진할 것 등이다.
하지만 공공발주 시스템통합(SI) 사업을 주요 먹거리로 삼는 한 중견 IT서비스업체의 고위 임원 A씨는 연초 새정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경기부양책으로 올상반기 공공발주예산 70%를 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그대로 실행되든 안 되든 오히려 문제를 만드는 것이라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정부와 공공기관은 공공정보화 사업을 수주하는 업체들을 1~2분기에 '놀게' 하고 3~4분기에 '벼락치기' 하게 유도해왔다. 분기별로 들쭉날쭉한 예산을 배정해 놓고, 그마저 계획대로 집행하지 않은 결과다. 사업자의 경영부담을 덜고 수행 결과물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데 기관들이 정보화사업 예산을 고르게 편성하고 분기나 월단위로 배분해 집행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공공정보화 예산, 편성-집행 '정반대'
A씨는 수행사업자들의 공공부문 IT서비스 매출은 1분기 10%, 2분기 20%, 3분기 30%, 4분기 40%로 하반기 집중돼 있다며 이는 해당 사업을 발주한 기관에서 예산 집행을 연말에 집중 처리하는 관행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국내 공공정보화 사업발주계획을 보면 시기별 예산편성비중이 1분기 40%, 2분기 30%, 3분기 20%, 4분기 10%로 상반기에 집중되며 하반기로 갈수록 줄어든다. 기관별 담당 공무원들이 연초 주요 사업계획을 추진하고 연말 남은 예산을 처리하겠다는 1년단위 업무계획 맞춰진 특성이다.
그래서 정부가 대규모 공공정보화사업 예산을 1분기와 2분기에 대거 편성한 일은 새롭지 않다. SW산업정보시스템의 연간 수요예보조사 내용에 따르면 거의 매년 상반기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공공정보화 사업의 발주계획이 집중돼 있다.
정부는 기관들이 연초에 정보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산을 풀면 이를 수행하는 사업자를 통해 IT시장에 돈이 흘러들어갈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기대다. 기관의 사업대금이 IT서비스업체 직원들의 임금과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들의 SW와 하드웨어(HW) 공급 대가로 제때 지불될 경우의 얘기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수행업체가 사업일정을 맞추지 못해 대금지급을 늦춰 받더라도 억울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제때 일을 해주고도 발주처로부터 제때 돈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IT서비스업계의 중론이다. 예산편성시점에 맞춰 사업자 선정과 계약이 체결될 뿐, 기관이 사업을 발주한 시기와 이를 수행하는 사업자와 솔루션 공급업체들에게 매출이 떨어지는 시기는 일치하지 않는단 얘기다.
모든 사업이 마무리됐어도, 그와 별개로 정부기관의 업무관행이나 해당조직 안팎의 사정이 대금지급시점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일례로 담당 공무원, 기관장, 상급부처 등의 인사발령과 조직개편도 단골 지연사유다. 결재란에 도장 찍어 줄 조직체계와 담당임원이 자리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주처는 정작 상반기 편성된 예산을 하반기에 집행하기 일쑤다. 특히 4분기 몰아서 처리되는 예산이 많다. 순환보직 때문이다.
1분기는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이 잦다. 2분기는 조직이 자리잡는 기간이다. 3분기는 실무자가 업무파악에 바쁠 때다. 연말 집행도 그나마 담당 공무원들이 이듬해 예산을 깎이지 않으려고 서두른 것이다. '조건부검수'라는 명목으로 이듬해 1분기까지 늦춰 집행되는 경우도 있다. 이게 해마다 반복된다.
■IT보릿고개, 정권교체로 심화…새정부 숙제
지난해부터 정권말기 대통령의 권력누수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지난해 하반기~올해 초 대통령선거, 정부조직개편, 장관급 인사 등이 이슈였다. 한 정부 관계자는 업무내용과 조직구성이 달라질 수 있는 모든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및 산하기관에서 적극적으로 일을 벌일 수 없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소위 IT보릿고개로 일컬어지는 공공정보화시장의 얼어붙은 분위기가 1년반씩이나 지속된 배경도 정치권 동향같은 외적 요인이 작용해서다. 통상 연말엔 예산이 집행돼야 하지만, 재작년은 큰 사업건이 비교적 적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임대통령의 임기말 주요 관심사는 IT산업이 아니라 다른 쪽에 있었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결국 연초엔 정기적인 업무추진 성격으로 유지보수나 기자재구입, 필요한 업무시스템구축 등이 주로 발주됐다. 지방자치단체 발주건처럼 소규모 사업이라 중견업체들이 존속할 수 있을만큼의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 비쳤다.
A씨는 지난해부터 수요예보조사 등을 통해 사업수행에 필요한 인력과 매출계획을 구상하고 연초 수주에 나섰지만 1분기 내내 정부조직개편과 장관 인선으로 주요사업 진행은 거의 마비됐다며 자체예산을 집행하는 지자체에서 발주한 수억대 프로젝트마저 입찰경쟁이 평년대비 3배가량 심화됐다며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런 어려움은 기관들이 발주사업 예산을 제때 집행하는 것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애초에 특정시기에 몰려있는 공공정보화사업 발주관행 자체를 되짚어봐야 한다. 일시적으로 발주가 몰리면 수행사업자의 매출과 순이익, IT업계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일단 특정시기에 비슷한 유형의 대규모 사업발주가 몰리면 사업자들도 그 시기에 맞춰 담당 인력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그만한 규모를 정규직으로 상주시키면 공공정보화 사업 공백기에 그에 상응하는 민간사업을 수주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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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다음도 문제다. 수행업체 매출은 연말에 사업대금을 지급받아야 생긴다. 그런데 프로젝트 진행기간 내내 채용인력의 인건비를 몰아서 줄 수는 없다. 이를 위해 금융기관에 대출을 하게 되는데, 연말까지 발생하는 이자부담은 발주처에서 신경쓰지도 않는다. 사업자는 연말에라도 받는 게 감지덕지다.
이렇다보니 수행업체 입장에선 사업을 가급적 단기간에 끝내야 할 동기가 크다. 상시인력을 두기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떠나는 비정규직 엔지니어를 쓰는 게 안전하다. 또 수행시 처음부터 설계와 구현과 테스트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지 않을 가능성도 는다. 이는 현장의 S엔지니어들이 밥먹듯 야근하면서도 시간에 쫓기며 일하게 되는 구조적 이유중 하나로도 지적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