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눅스로 '학교 컴퓨터실' 바꾸는 선생님들

일반입력 :2013/03/04 08:38    수정: 2013/03/06 23:26

고등학교 선생님이 오픈소스 전도사가 돼 상용소프트웨어(SW)로 가득찬 학교 컴퓨터실을 바꾼다. 경기도 인덕원고등학교 황병욱 교사와 경남고등학교 김윤영 교사가 추진해온 공개SW교육 활성화 프로젝트 '리눅스기반교육학습관리(LILA)'의 성과다.

LILA는 공개SW 활성화를 목적으로 초중고교 정보관련 교육을 리눅스컴퓨터실 구축과 운영, 그리고 공개SW수업을 위한 학습자료 제공이라는 2가지 차원에서 지원한다. 공개SW기반 학습환경이 필요한 학교에서 리눅스컴퓨터실을 갖추도록 기술적으로 돕고, 구축 이후 수업에 공개SW를 활용시 필요한 자료를 보조하는 활동이다.

4일 황 교사는 국가에서 여전히 교육 분야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공개SW 활용을 강화해야 한다거나 하다못해 학생들에게 이를 선택할 기회라도 줘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 지원을 통해 향후 학교 현장에 리눅스컴퓨터실과 공개SW 보급을 더 활성화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 목표가 비용절감이 아니라 학생들이 다양한 문제해결능력을 기르고 다양한 SW기술을 자유롭게 활용케 한다는 수업목표 실현이 돼야 할 것이라 본다. 다만 기존 컴퓨터실 구축시 상용SW 구입에 드는 교육청 예산을 절감할 수 있어 국가적으로도 나쁠 게 없어 보인다.

실제로 LILA 프로젝트를 통해 리눅스컴퓨터실을 구축한 학교들 가운데 기존 윈도와 상용 SW들을 걷어내면서 차기년도부터 일정부분 예산절감을 기대중인 곳도 있다. OEM 방식으로 공급된 PC OS의 윈도 라이선스나 재부팅시 하드디스크를 초기화시켜주는 프로그램, 문서작성이나 스프레드시트와 프리젠테이션 교육과 영상 및 사진편집용 SW 구매예산을 더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황 교사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업관리 SW를 개발했다.

'리눅스컴퓨터실관리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은 수업을 진행하는 정보교과 담당 교사 입장에서 실내 학생들의 PC 기능을 원격으로 통제하고 사용현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모든 컴퓨터를 켜고 끄거나 수업에 불필요한 프로그램 사용을 차단하고 교육자료를 일괄 배포, 회수하는 등 실제 수업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기능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리눅스컴퓨터를 재부팅하고 초기화할 수 있어 각 학생들은 동일한 환경의 공개SW기반 학습이 가능하다. 공개SW 컴퓨터실용 이미지와 자동설치프로그램을 통해 구축시간도 단축된다. 교육적 차원에선 학생들이 정당한 권리로 SW를 사용해 불법복제를 예방하고 다양한 PC운영환경을 경험할 기회를 얻게 해준다.

황 교사는 지난해부터 이천 경남고등학교 김윤영 교사와 함께 활동중이다. 김 교사는 경남고 발령 전부터 황 교사를 도와 LILA 적용과 테스트를 수행해왔다.

이들은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2012년도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커뮤니티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일부 활동비용을 올해까지 지원받지만, 우리나라 교육환경 전체를 대상으로 한 목표실현에는 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더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부터 공개SW 확산에 목소리를 높여온 정부가 교육분야와의 연계를 추진해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LILA가 눈길을 끄는 요소는 교육 환경이라는 공공 영역에 찾아보기 드물게 민간 차원에서 출발한 공개SW 활성화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이 활동이 최근 국내 일부 중고교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둬 오히려 정부가 주도해 공개SW의 활성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와 대조돼 두드러진다.

■교육활동이 특정 SW기업의 영리추구에 동원되는 현실 고쳐야

프로젝트를 주도한 황 교사는 윈도와 그에 기반한 한글, 엑셀, 포토샵 등 애플리케이션 활용 교육 위주인 현행 중고등학교 정보교육을 비판한다. 정보교육이 단순히 프로그램 활용교육으로 전락할 뿐아니라 특정 운영체제(OS) 환경에 종속돼 소수 업체의 사익이 커질 뿐이란 지적이다. 그는 또 정보담당 교사의 활동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체 제품에 이용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아는 OS는 윈도 시리즈뿐이다. MS나 한글과컴퓨터 외에도 여러 공개SW 커뮤니티에서 '오피스'를 만든다는 점이나 포토샵을 대신할 이미지 편집도구도 많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이는 학교 정보수업이 학생들에게 공개SW를 선택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능력을 키워준다는 교육목표에 어울리지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 공공부문의 공개SW 사용을 활성화하고 특정 기업의 사익에 충실한 상용 SW제품을 줄이려는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다. 우정사업본부가 전국 우체국에 검색용 PC로 리눅스 기반 컴퓨터를 보급한 적이 있고, 지식경제부와 한국SW진흥원(KIPA)이 주관해 전국 대학교에 공개SW기반 실습실을 보급한 적도 있다.

이는 모두 실패했다. 우정사업본부가 보급한 우체국 PC는 리눅스 기반으로 활용될 당시부터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작동하지 않거나, 어느새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로 OS가 바뀐 경우를 접할 수 있다. 지경부와 KIPA의 공개SW기반 교육혁신 프로젝트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2년간 사업을 진행한 이후 대부분실습실을 MS 윈도 기반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SW의 무기는 '익숙함'…공개SW 확산에도 필요

정부의 시도는 SW의 최대 무기인 '익숙함'을 무시한 기획이었다. SW는 익숙해야 잘 다룰 수 있다. 특정 환경에 형식상 공개SW로 구성된 PC를 설치하고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해놨더라도 사람들이 이를 익숙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현재 온라인에서 공짜로 내려받을 수 있는 공개SW 기반 오피스 프로그램, 사진과 영상 편집 도구, MS 윈도를 대신할 리눅스 데스크톱 OS가 널렸지만 그 사용자를 찾긴 어렵다. 이미 많은 기업과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윈도PC와 유료SW를 도입했고 일반 사용자들이 이를 활용중이기 때문이다. 정부처럼 느닷없이 공개SW를 탑재한 PC를 갖췄다고 사람들이 알아서 잘 쓰리라 기대했다면 실패하는 게 당연했다.

황 교사는 공개SW 활성화는 급격히 이뤄지지 않고 조금씩 익숙해지는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며 그 효과는 교육과 함께 맞물릴 때 장기화되고 큰 파급력을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LILA 프로젝트는 단순히 리눅스기반의 컴퓨터실을 구축해주는 사업에 그치지않고 사람들이 공개SW를 익숙하게 접하고 활용할 환경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반인이 아니라 학교에서 학생을 위한 컴퓨터실과 정보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을 지원하는 이유다.

지난 2010년부터 2012년사이 LILA 프로젝트의 지원을 통해 리눅스컴퓨터실을 갖추고 공개SW기반 교육을 시행하게 된 곳은 ▲인덕원고 ▲구리고 ▲이천고 ▲동백고 ▲마장고 ▲세종중 ▲용인 영문중 ▲경기 모바일과학고 ▲평택 기계공고 등이다. 이밖에 설치를 희망하는 학교로 ▲고양 백마고 ▲경기 영재고 ▲오산 정보고 ▲오산 대호중 ▲고양 정발중 ▲경남 남해정산고 ▲대구 경주중도 언급됐다.

LILA 프로젝트는 지난 2010년 2월 시작됐고 그해말 열린 공개SW개발자대회에서 금상을 받으며 알려졌다. 이를 주도한 황 교사는 리눅스컴퓨터실 환경을 구축하고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SW를 스스로 개발했을 뿐아니라 일부 학교에서 이를 통한 컴퓨터실 구축 작업도 직접 도왔다. 하지만 실제 구축된 리눅스컴퓨터실에서 쓰일 수업자료들은 참여한 학교들의 담당교사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 활발히 공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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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사는 2년간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공개SW를 이용한 정보 및 컴퓨터교육을 진행한 결과 학생들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눅스 기반의 공개SW를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컴퓨터를 많이 접하기 시작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를 경험케 해줘야 새로다가올 환경에 거부감을 줄이고 공개SW를 널리 쓰이게하는 발판을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젝트가 지원한 리눅스 기반의 컴퓨터실습환경은 중고등학생뿐아니라 한국교원대학교의 미래 유치원 및 초중등학교 교육자들에게도 주어졌다. 교원대가 배출할 교사들이 향후 학생들에게도 공개SW 사용 경험을 전수해줄 가능성도 기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