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회라도 한 번 했으면 억울하지는 않죠. 지금은 정부가 3만명 넘는 통신공사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형국이나 다름없습니다.”
국토해양부가 입법 예고한 도로법 시행령 개정안에 방송통신업계가 들끓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를 비롯해 한국전력, 방송·통신사업자, 가스·송유관 사업자 등이 격렬히 반발하고 나섰다.
해당 안은 전봇대 공중선에 점용료를 부과하고 전주, 관로 등 기존 점유시설의 점용료를 30% 인상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만약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한국전력과 방송통신사업자의 추가지출은 3조5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부는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공중선 점용료 부과를 2년 유예했지만 점용료 30% 인상은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애가 끓는 곳은 통신공사 업계다. 도로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필연적으로 기간통신사업자들의 투자가 줄어들어 구조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토로다. 경기가 어려워 정부 및 민간의 발주가 감소되는 상황에서 도로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들에게 단순히 숫자놀음이 아닌 일자리가, 가족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
“투자가 줄면 중소업자들은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잖아도 경기도 어렵고 올해 5월 방통위의 설비고시 개정 이후 유선 투자가 줄어들었는데, 점용료까지 30% 올라가면 더 이상의 투자는 어렵다고 봐야합니다.”
현재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이하 협회)에는 약 7천600여개 회사가 소속돼 있다. 이중 약 65%에 달하는 5천개 이상의 회사가 1년 매출이 10억에 채 못 되는 영세 업체들이다. “매년 20~30%씩 일이 줄어들고 있다”, “고사 직전이라 세금도 못 내는 업체들이 수두룩하다”는 목소리에 절절함이 묻어난다.
업계는 해당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통신케이블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2천500개 이상의 업체가 당장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2천500개 업체에서 근무하는 종사자는 약 7만5천명에 달한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구조조정을 시행한다고 하면, 절반 이상의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예측이다. 다시 말해 국토부의 도로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3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의견 수렴 절차는 없었다. 그 흔한 공청회뿐만 아니라 실무자 호출조차 없었다. 한국전력, 방송·통신업계, 심지어 가스·송유관 사업자들까지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오히려 국토부는 선심(?)을 썼다는 뉘앙스다. 국토부 관계자는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지난 1993년부터 2010년까지의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을 감안하면 점용료를 56% 인상해야 하지만 이를 반토막 내 30%로 책정했다”며 “그동안 점용료가 너무 저가로 책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참다못한 정보통신공사협회(이하 협회)와 사업자 대표들이 나섰다. 협회 이광희 상임이사와 김상진 국장, 김이성 대정통신 대표, 천낙훈 평송정보통신 대표, 김형준 광명정보통신 대표는 22일 직접 과천 정부청사의 국토부를 방문해 현장의 어려움을 피력했다.
이들은 국토부에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개정안을 갑작스레 시행할 경우 투자 축소, 이에 따른 구조조정 등 현장의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산업현장의 실상과 개정안 시행시 영향을 파악하고, 공청회를 열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달라”고 요구했다.
도로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지적도 내놨다. 기간통신사업자들이 투자 규모를 줄이게 되면, 통신공사업체들은 공사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다. 결국 전반적인 방송, 통신 품질저하가 수반된다는 논리다.
아울러 투자 금액이 늘어날 경우,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지방에서는 이용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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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강국이란 것도 옛말입니다. 이제는 투자를 안 해요. 거액 들여 투자해봤자 경쟁사들한테 빌려주라고 하지, 이제는 돈까지 더 내라하니 누가 투자하겠습니까. 지금은 예전에 투자해놨던 것에서 명주실 뽑듯 빼 쓸 뿐입니다.”
협회는 향후 해당 개정안 철회를 위해 지속적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현 정부는 각종 요금 인상요인을 유발하는 정책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3D 직종인 통신공사 업계 종사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지 말아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