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PC만 고민이 아니다

일반입력 :2012/08/24 09:59    수정: 2012/08/24 13:50

델이 PC 시장 축소의 직격탄을 맞아 매출과 순익이 동반하락했다. 엔터프라이즈 솔루션기업으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적보고서로 드러나는 현재 상황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많은 돈을 투입했던 기업용 스토리지 사업 정체에 델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 델의 회계연도 2013년 2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델은 이 기간동안 순익 7억3천200만달러(주당 42센트), 매출 144억8천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각각 전년동기 대비 13%, 8% 감소한 것이다.

순익과 매출 하락 자체를 이례적인 상황으로 볼 수는 없다. 경기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동안 델을 수렁에서 건져왔던 마이크로소프트(MS) 운영체제(OS) 업데이트가 그 힘을 잃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올해 10월로 예정된 MS 윈도8 출시는 이번엔 호재로 보이지 않는다. 마이클 델 회장은 이번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윈도8 PC에 대한 기업시장의 수요가 느린 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윈도RT를 탑재하는 태블릿 사업 역시 불투명할 것으로 예상했다.

델은 올해 들어 매출규모가 15억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순익은 2011년 상승곡선을 그리다 2012년 2분기를 정점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에 델은 수년째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업체로 변신을 선언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왔다. 2010년 이래 무서운 속도와 추진력으로 14개의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단기간에 기업솔루션을 다수 확보함으로써 소비자 시장 매출감소를 상쇄하고,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계산이었다.

이중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영역은 스토리지다. 델은 2008년 14억달러에 이퀄로직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부터 컴펠런트, 오카리나, 엑사넷, 앱어슈어 등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iSCSI 스토리지 이퀄로직, 유니파이드 스토리지 컴펠런트, NAS 파워볼트, 중복제거 솔루션 오카리나, NAS 클러스터 엑사넷, 백업SW 앱어슈어, 최근의 퀘스트소프트웨어까지 폭넓은 스토리지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지난해엔 전체적인 자체 스토리지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는 판단에 EMC 스토리지 OEM 계약종료를 선언했다. EMC 의존을 없애고 델만의 스토리지로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웅대한 계획이었다.

판단은 적절했다. 스토리지는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의 이슈와 맞물려 최근 IT 하드웨어 중 가장 사업성이 좋은 분야로 평가받는다. 스토리지업계 1위 EMC는 연일 사상최대 실적을 갱신하고 있다. 넷앱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델뿐 아니라, HP와 IBM, 오라클 역시 스토리지를 신성장동력으로 꼽는다. 데이터 생성량의 절대적인 증가와 함께 데이터 활용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현상이다.

하지만 현 상황의 델에게 스토리지사업매출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 이는 1년째 고정된 채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델은 EMC OEM을 줄이고, 자체 스토리지 판매를 높여가고 있다는 것을 들어 스토리지 사업의 현재를 설명한다. 그러나 델의 자체 스토리지 매출 역시 1년 이상 답보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델의 스토리지는 여전히 고가 장비를 판매할 수 있는 하이엔드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하이엔드 시장을 위해 3PAR를 인수하려 했지만 이를 HP에 뺏겼고, 대체로 사들인 컴펠런트 스토리지는 미드레인지 제품으로 분류된다.

EMC와 히타치데이터시스템즈(HDS), IBM, HP에 사업적으로 밀릴 뿐 아니라, 상징적인 제품도 없는 상황이다. 델 스토리지 중 스토리지성능위원회(SPC) 벤치마크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IBM DS8000, HDS VSP, EMC VMAX 같은 장비가 없는 것이다.

컴펠런트, 이퀄로직 등을 판매할 수 있는 미드레인지 시장 역시 기존 업체들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EMC의 VNX, VNXe 스토리지와 넷앱의 FAS 시리즈에 막혀 활로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퀄로직 iSCSI 스토리지는 틈새 시장에 머물러 있다.

회계연도 2012년부터 올 2분기까지 6분기에 걸친 델 스토리지 사업의 매출 추이를 보면 이같은 상황은 더 짙게 드러난다. EMC와 넷앱이 꾸준하게 매출 상승곡선을 유지하는 것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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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은 4억~5억달러 수준에서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다. 자체 스토리지 판매는 작년 4분기 처음으로 4억달러를 넘었지만 올해들어 다시 하강곡선을 그렸다. 전체 매출과 자체 스토리지 매출의 변동추이도 동반상승과 동반하락을 반복했다. OEM 매출 축소를 자체 스토리지 매출이 상쇄하지 못하는 상황이 1년째 이어지는 것이다.

올해 델의 노트북과 PC 매출이 10억달러이상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델의 엔터프라이즈 하드웨어 매출은 본래 계획에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델의 고민은 PC가 아니라 스토리지를 비롯한 기업용 하드웨어 사업의 국면전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