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피다 두고 한-미-일 반도체 삼국지

일반입력 :2012/04/08 15:30    수정: 2012/04/09 10:23

송주영 기자

엘피다의 굴곡진 역사가 결국 매각으로 끝이 날 전망이다. 엘피다가 D램 3위업체에 등극한 2008년 이후 4년만의 파산 신청이다.

엘피다가 설립된 것은 지난 1999년이었다. NEC, 히타치의 반도체 부문 합작사였던 엘피다는 초기에 양사 공정 부문의 변화로 이견도 있었지만 현 사카모토 유키오 회장이 2002년 취임한 후 D램 시장 강자로 올라섰다.

2001~2002년 4%까지 떨어졌던 점유율은 2006~2007년을 넘어서며 급속도로 성장, 10%대를 회복했다. 한때 삼성전자, 하이닉스, 인피니언에 이어 4위였고 인피니언에서 분사한 키몬다가 쓰러지자 3위로 올라섰다.

PC용 D램 시장 진출을 선언한 이후 이뤄낸 성과였다. 당시 모바일용 D램으로 강세를 보였던 엘피다 유키오 회장은 “PC용 D램을 양산해야 기업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고 했다.

유키오 회장의 장담처럼 엘피다는 점유율에서 3위의 기록하는 업체가 됐지만 최근 PC용 D램 가격에 발목이 잡혔다.

3개사의 소수의 업체가 시장의 90%를 넘는 모바일 D램 등과는 달리 한국, 일본, 타이완, 미국 등의 업체가 경쟁사는 PC용 D램 시장의 가격 등락폭을 견디지 못했다. D램의 불안한 시황 때마다 공적자금을 수혈받는 등 자금난에 시달리던 엘피다는 결국 무너졌다.

엘피다의 영업적자는 최근까지 5분기 연속 지속됐다. 시황이 꺾이기 시작한 2010년말부터 다. 언제쯤 상황이 나아질지 기약할 수도 없다. 일본 엘피다는 키몬다와 함께 21세기 초반 우리나라, 일본, 타이완 등이 가세했던 메모리 치킨게임의 패자가 됐다.

■이달 말 2차 입찰 거쳐 우선협상자 선정

엘피다는 지난 2월 도쿄지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재정이 단기간에 회복되기 힘든 상태로 접어들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엘피다의 부채규모는 6조원에 이른다. 이미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300억엔을 포함한 부채 상황이 불투명하다.

당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엘피다는 회생이 되더라도 투자여력을 잃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회생, 경쟁력마저 의심되는 엘피다에게 일본 정부, 채권단은 더 이상의 지원을 하기 꺼려했다.

엘피다는 지난달 공개매각 전환을 선언했다. 예상외로 입찰은 흥했다. 지난달 30일 마감한 1차 입찰에는 마이크론과 함께 우리나라 SK하이닉스도 복병으로 나섰다. 당시 일본 메모리업체인 도시바도 참가했지만 낮은 입찰 가격으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현재 도시바는 SK하이닉스에 공동 입찰할 것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답을 얻지는 못한 상태로 전해졌다. 김성인 키움증권 상무는 “공동 입찰은 도시바에게는 좋지만 하이닉스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나온 해석이다.

마이크론이 1천500억엔 이상을 써내 가장 많은 금액으로 입찰했다. 엘피다는 마이크론, SK하이닉스 외에 추가 업체를 하나 더 선정, 이달 말 2차 경쟁 입찰에 나설 계획이다 2차 경쟁입찰에는 미국, 중국 사모펀드인 TPG캐피탈․호니캐피탈도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엘피다는 2차 입찰 과정까지 거쳐 다음달 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 최종 인수 대상이 정해지면 오는 8월 도쿄지방법원에 제출할 회생 방안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우리나라 치킨게임의 끝 해피엔딩?

엘피다의 몰락과 D램 치킨게임의 끝에서 각 메모리 업체는 서로 다른 계산을 하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느긋하게 상황을 즐기는 삼성전자, 꽃놀이패를 쥔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업체는 치킨게임의 끝에서 유리한 위치에서 상대적으로 더 여유가 있다. 반면 마이크론은 좀 더 적극적으로 엘피다에게 매달려 우리나라에 맞설 수 있는 체력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안 되면 엘피다 꼴이 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 속에서 말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치킨게임 종료를 선언했다. 전동수 사장도 “이제는 내부에만 신경쓰겠다”고 말한 바 있다.

치킨게임의 최고 승자 삼성전자는 경쟁사들의 다급한 행보를 느긋한 태도로 즐기며 관전하고 있다. 엘피다를 도시바나 마이크론 등 낸드플래시 생산업체가 가져간다면 모바일 통합 경쟁력 측면에서 신경은 좀 쓰이겠지만 현재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넘을 수 있는 업체는 없다.

44%의 높은 점유율로 경쟁사와 격차를 낸 삼성전자. 엘피다를 누가 인수하더라도 상관없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도 크게 조급해할만 한 상황이 아니다. 엘피다를 인수한다면 점유율면에서는 삼성전자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게 되겠지만 못해도 상관은 없다.

마이크론이 엘피다를 가져간다면 D램 시장에서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 점유율을 소폭으로 추월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미 D램에서 30나노 양산, 20나노 양산을 눈앞에 두는 등 삼성전자에 이어 미세공정에서도 경쟁사를 따돌린 SK하이닉스가 소폭 점유율에 신경쓸 만한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엘피다를 메모리업체가 가져간다면 큰 규모의 부채, 향후 D램 시황에 대한 불투명성 등으로 힘든 상황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바의 SK하이닉스 공동 입찰 참여에 대해 관련업계는 SK하이닉스가 응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SK하이닉스 응찰의 목적은 인수가 아닌, 경쟁사 동향 파악을 위한 꽃놀이패라는 분석이다.

■“마이크론 인수 관심있을 것…도시바 글쎄”

현재 가장 입이 바짝 말라 있을 업체가 마이크론이다. 자칫 우리나라 업체에게 몸집으로 이렇게 밀리다가는 치킨게임의 패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엘피다 꼴이 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할 터다.

마이크론은 자산규모 141억달러에 현금 등 단기자금도 20억달러가 있다. 최근까지 적자가 지속됐지만 버틸 여력이 있는 회사다. 인수에 대한 시각도 다른 회사 대비 긍정적이다. 지난 2010년에는 노어플래시업체 뉴모닉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은 과거 하이닉스, 뉴모닉스 등의 인수에 나섰으며 뉴모닉스는 실제로 인수도 하는 등 몸집 키우는 데 적극적인 기업이어서 인수 의지는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바의 의도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관련업계는 도시바에게 엘피다는 ‘계륵’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인수하기도 안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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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피다가 일본 내 다른 해외업체에게 인수될 경우 같은 일본 내 메모리 업체인 도시바는 비난 여론이 몰릴 수도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정부 지원금을 약속하며 은근히 도시바를 압박하고 있다.

도시바는 D램에 큰 미련이 없다. 지난 2002년 이미 이익이 안되는 D램 사업을 정리한 바 있는 도시바에게 대규모 부채를 안고 엘피다를 인수해야 할 동기부여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등 떠밀려 인수전에 참여한 도시바가 인수 위험 부담을 낮추고 아예 발을 빼려고 했다는 일본 내 여론을 고려해 인수에 참여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