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세계 개발자들의 주문이 폭주한 시계가 하나 있다. 2009년 처음 소개된 TI(Texas Instrument)의 eZ430 크로노스 스포츠 시계다. 49달러인 이 시계가 ‘TI(Texas Instrument) 딜’ 사이트에 8월 올라온 가격은 해외 무료 운송비 조건으로 29달러였다. 순토(SUNTO) 등 유명 스포츠 시계의 줄 값 정도에 시계를 준 것이나 다름 없는데, 이 시계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개발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짜 시계에 올릴 수 있는 개발 키트이다.
이 시계는 기본 사양만 놓고 보면 40~50만원 대 스포츠 시계와 맞먹는다. 동작 기반 컨트롤을 인지하는 센서가 장착되어 있고, 고도ㆍ온도 등의 측정 센서를 고루 갖추고 있다. 또한 915MHz, 868MHz, 433MHz 등 다양한 RF 주파수 대역을 지원해 심박계나 자전거 속도계 등 무선 기기와의 연동도 용이하다.
개발 키트란 특성으로 인해 전세계 개발자들이 만들어 올려 놓은 쓸만한 애플리케이션도 꽤 된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넘긴다거나, 무선 마우스로 쓴다거나, 홈 오토메이션(Home Automation) 기기 제어용 단말기로 쓴다거나 등등…… 마치 스포츠 시계 계의 아이폰이라 할까? 이것저것 깔아보고 싶은 것, 개발해 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필자가 ‘TI 딜’ 사이트를 통해 eZ430을 손에 넣은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개발자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TI의 마케팅 전략이 갖는 차별화와 지속성 때문이다. 전세계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거의 원가에 제품을 뿌리는 TI의 용단은 개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보름에 가까웠던 딜 기간이 불과 36시간만에 재고 부족으로 마무리됐다. 모바일 기기 관련 개발 키트란 포장을 둘렀지만 누구나 하나쯤 갖고 싶은 스포츠 시계를 원가에 준다는 것 그리고 관련해 다양한 개발 리소스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 등등 어느 면 하나 안 땡기는 것이 없는 프로모션이었다.
TI의 이런 마케팅은 일회성이 아니다. 또 다른 딜의 시작을 알리는 시계가 돌아가고 있고, 9월 15일 현재 무선 센서를 태양렬로 작동시키는데 쓰이는 도구인 MSP 430 개발 킷을 놓고 새로온 딜이 시작되었다. 이 툴 역시 일반 판매가는 149달러이지만 개발자들에게 공급되는 가격은 74달러이다. 물론 해외에서 주문해도 배송료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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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의 이런 행보를 볼 때 최근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를 놓고 소프트웨어와 개발자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떠올랐다. 세계적인 디바이스 제조 기업들이 있음에도 개발자들에게 TI와 같이 좀더 가까이 친밀하게 관계를 이어가고자 노력했던 기업이 어느 하나라도 있었던가? 시류에 편승해 컨퍼런스만 주구장창 그것도 거의 같은 시기에 열어 개발자들 마음 속에 혼돈과 바람만 집어 넣었을 뿐이지 않았나?
개발자들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개방적인 자세와 마음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손을 뿌리친 적이 없다. TI의 새로운 딜에 개발자뿐 아니라 마케터들도 관심을 좀 가져 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하드웨어 플랫폼 모두 에뮬레이터 차원의 공개가 아니라 개발 킷 차원의 파격적인 제안이 있다면! 개발자들의 관심과 열정이 얼마나 뜨거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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