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없는 스마트 혁명 종착역은 무덤속"

[연중기획]한국IT의 부활 시나리오 '콘텐츠2.0'

일반입력 :2011/01/05 08:19    수정: 2011/01/05 10:44

황치규 기자

언제부터인가 세계 IT시장은, 이른바 플랫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물론 TV시장까지 플랫폼을 둘러싼 거대 기업간 샅바싸움이 한창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들었다놨다하는 운영체제(OS) 시장도 이제 경쟁 시대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큰놈 위주로 판이 정리된듯 보였던 플랫폼 시장이 21세기 두번째 10년들어 막강 흥행 파워를 자랑하는 격전지로 급부상한 것이다.

플랫폼 시장의 다자간 경쟁 구도는 20세기까지만 해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이다. 오랫동안 데스크톱은 MS, 윈도 서버는 윈도와 유닉스의 분할 통치 구도였다. 판이 깨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였다.

새로운 DNA가 자리를 잡기에 기존 생태계는 넘기 힘든 성벽처럼 보였고, 이것은 한번 자리를 잡은 플랫폼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으로 이어졌다. 21세기 들어서도 계속 유효할 것 같은 패러다임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을 듯 했던 플랫폼에 대한 고정 관념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사실상 무장해제됐다. 차세대 플랫폼을 주도하는 주역이 누가 될지 알 수 없는 구도로 단숨에 판이 재편됐다.

변화의 신호탄은 2007년 등장한 아이폰이었다. 애플은 그해 여름 출시한 아이폰과 애플리케이션 마켓플레이스인 '앱스토어'를 앞세워 기존 휴대폰 패러다임과 결별을 선언했다. 하드웨어 중심의 휴대폰 시장 경쟁 판도에 '비밀병기' SW와 콘텐츠를 투입시켜 단숨에 판세를 뒤흔들었다.

SW와 콘텐츠를 보고 휴대폰을 산다는, 그전에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킨 것이다. 아이폰에서 쓸 수 있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이 올라와 있는 앱스토어는 지금 사용자들로 북적거린다. 이미 30억회가 넘은 다운로드가 이뤄졌다.

내년에는 등록된 애플리케이션수가 50만개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지금도 전세계 개발자들은 엔터테인먼트, 교육, 게임, 업무용 SW 등을 앞다퉈 앱스토어에 올리고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에 올라오는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날 수록 아이폰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 아이폰을 퍼트려 개발자들의 애플리케이션 개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이것이 다시 소비자들의 아이폰 구매욕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비즈니스 용어로 말하자면 하드웨어와 SW 그리고 콘텐츠로 이어지는 '삼두마차' 체제를 완성한 셈이다.

콘텐츠를 앞세운 '애플 군단'의 등장은 IT업계에서 새로운 협업 생태계가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플랫폼과 콘텐츠간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게, IT업계 필승카드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플랫폼 업체 입장에서 콘텐츠는 이제 알파요 오메가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언제부터인가, 스마트폰 제조사, 운영체제(OS) 업체,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가 앞다퉈 콘텐츠를 외치고 있는 상황은 콘텐츠의 전략적 가치가 크게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콘텐츠라고 하는 든든한 후방지원없이 플랫폼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이석채 KT 회장은 한국의 IT인프라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미디어 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I(information, 정보)'와 `T(Technology, 기술)'가 상생의 길을 찾지 않는다면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IT헤게모니, 콘텐츠에서 결판난다

콘텐츠에 대한 전략적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는 모습이다. 스마트폰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태블릿, 스마트TV는 물론 윈도만 있으면 될 것 같던 PC시장도 스마트폰과 유사한 콘텐츠 패러다임의 등장에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애플이 올해 4월 출시한 아이패드는 이미 출판, 신문, 잡지, 영상 콘텐츠의 새로운 메카로 떠올랐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콘텐츠 혁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아이폰을 성공으로 이끈 방정식이 태블릿에서 다시 한번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태블릿 시장도 애플을 견제하려는 경쟁 플랫폼 업체들의 반격이 본격화됐다. 싸움은 역시 콘텐츠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IT업계에서 태블릿이나 스마트TV 대권경쟁이 콘텐츠에서 결판난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드물다.

의미있는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무늬만 플랫폼'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난 10월 기대를 한몸에 받고 등장했지만 초반부터 시장 진입에 애를 먹고 있는 구글TV가 대표적이다. 구글TV는 그동안 주요 방송사 콘텐츠를 확보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구글TV 사용자들은 ABC, CBS, NBC등 주요 방송사들의 콘텐츠를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사용하고 싶어 하지만 현재는 방송사들이 구글TV에서 접속을 차단한 상황이다. 메이저 방송사들과 계약에 실패한다면 구글TV의 매력은 크게 줄어 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구글TV 뿐만 아니다.

스마트폰도 빈약한 콘텐츠를 보유한 플랫폼들에겐 기회의 땅이라기 보다는 무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콘텐츠 생태계를 거느리지 못한 모바일 플랫폼 '리모'나 '미고'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직 있으나 마나한 존재에 머물러 있다. 천하의 노키아나 MS도 콘텐츠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지 않다. 두 회사 모두 콘텐츠 생태계 구축을 위해 와신상담, 절치부심 중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도 바야흐로 플랫폼과 콘텐츠간 공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한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단일 서비스에 그친 마이스페이스는 지금 앞날을 기약하기 힘든 처지에 내몰렸다.

클라우드 컴퓨팅, SNS, 모바일로 대표되는 새로운 IT패러다임은 모두 콘텐츠 지원군이 있고 없느냐에 따라 울고 웃는 상황이 됐다. 콘텐츠를 외치는 거인들의 함성소리에 긴박감과 절박함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이유다.

콘텐츠 생태계 육성, IT강국 코리아 부활을 기대하며

IT강국을 자부해온 한국이지만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에 대해서는 할말이 별로 없다. 반성할게 오히려 많다.

패러다임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다음에도 과거에 발목 잡혀 '우물안 개구리'란 비판에 휩싸였다. 닫혀진 대한민국 모바일 생태계는 '갈라파고스'로 불리었다.

물론 국내 대기업들이 플랫폼과 콘텐츠의 중요성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었던건 아니다. 그러나 환골탈태를 시도할만큼, 절박함을 느끼지는 않았던 듯 하다.

SK텔레콤 서비스 플랫폼 사업을 주도하는 이진우 실장은 국내 1위 이동 통신회사로서 서비스플랫폼을 너무 기만했다는 점을 반성하고 있다면서 국내 통신시장이 가진 문제의 뿌리는 관련 업계가 서비스 플랫폼을 고객이 원하는 만큼 만들어내지 못한데 있다고 말했다.

고질병인 '갑과 을' 구조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콘텐츠 업체를 파트너가 아니라 단순 하청 업체로 생각하는 대기업들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형 콘텐츠 생태계 육성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대기업과 협업이 필요한 분야에서 경쟁력있는 콘텐츠 벤처 기업이 얼마안되는 것도, 결국은 갑과 을 마인드 때문이란 쓴소리도 쏟아진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디지털 콘텐츠 업체 대표는 이렇게 얘기한다.

대기업에서 입찰을 붙이거나 제안서를 받아놓은 뒤 중소기업 아이템을 가로챈 사례가 적지 않다. 예전에 A사에 기획안을 들고 갔는데, 얼마 후 A사가 계열사를 통해 기획안과 같은 내용의 아이템을 혼자 내놓은 것을 목격했던 경우도 있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경험했던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대규모로 인력을 끌어모았지만 구체적으로 내놓은 성과도 없다. 중소 업체들을 없애버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폰이 대박을 친 이후 대기업들이 콘텐츠 업체를 대접하는 스타일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무늬만 상생이 아니라 콘텐츠 업체들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으면 설자리가 없다는 위기감이 진하게 풍긴다.

삼성전자, SK텔레콤, KT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플랫폼 강화를 위한 콘텐츠 생태계 육성을 위해 거액의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게 이를 대변한다. 한 발 늦은만큼, 실탄을 투입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양상이다.

SK텔레콤은 올해 T맵, T스토어, SMS 등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확정성있는 개방형 구조로 전환, 글로벌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서비스 플랫폼으로 키워나간다는 전략이다. 서비스 플랫폼 확산을 위해 향후 3년간 1조원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금이야말로 플랫폼 사업을 추진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진우 실장은 확장성을 제공하지 못해 플랫폼을 발전시키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해 핵심 기술 자산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이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가 창출될 수 있도록 콘텐츠 육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콘텐츠 확보를 위한 삼성전자 행보에도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기 위한 일환으로 국내외 콘텐츠 업체들과의 협력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의 권강현 전무는 전세계적으로 하드웨어 성능만 뛰어난 업체보다는 핵심 콘텐츠 및 서비스와 이를 위한 생태게를 잘 구성하는 업체들이 급부상하는 등 경쟁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하드웨어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만큼, 콘텐츠 업체들과 생태계를 만들어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콘텐츠 업체들을 대하는 대기업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에 대해 일부는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을 것이다. 설마설마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TV로 IT패러다임이 확산되고, 이들이 서로 컨버전스(융합)되는 환경에서 콘텐츠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드웨어에 강점이 있는 한국 대기업들이 콘텐츠를 외면할 수 없고, 외면해서도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콘텐츠 업체들과 상생은 거룩한 구호가 아니라 이제 경영 전략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얘기다. 빈말로 퉁치고 넘어갈 처지가 아니다.

콘텐츠를 향한 거대 기업들의 구애 작전은 콘텐츠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애플 아이폰의 등장에 심장이 두근거렸다는 컴투스 박지영 대표, 아이폰은 인터넷 포털과 SW사업을 10년씩해온 내게 너무나도 새롭고 도전의식을 느끼게 하는 분야라고 고백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같은 이들이 계속해서 나오게될 것이다. 해외는 이미 콘텐츠 스타들의 질주가 시작됐다. 세계 최대 SNS 페이스북을 등에 업고 초일류 게임 회사로 성장한 징가나,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에서 가장 잘나가는 게임중 하나인 앵그리버드는 바다건너 한국에서도 익숙한 이름들이 됐다.

한국에서도 징가나 앵그리버드와 같은 차세대 콘텐츠 스타의 탄생을 보게될까? 하기 나름일 것이다. 한정현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 교수는 지금이 바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디지털콘텐츠간 건전한 가치사슬을 형성할 수 있는 적기라며 협력에 기반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만큼,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앱과 콘텐츠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형 KAIST 교수도 우리나라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점유율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게임 분야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다면서 창의력 있는 개발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모바일 앱 시장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다. 지디넷코리아는 2011년 연중기획 키워드로 '콘텐츠'를 선정했다. 이를 통해 스마트폰과 태블릿 그리고 스마트TV로 이어지는 디지털 혁신의 주인공은 콘텐츠임을 강조하기로 했다.

콘텐츠 중요한거 다 아는데, 뜬금없이 무슨소리냐?라고 묻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 했던 얘기인데, 갑자기 지금 왜 콘텐츠 타령이냐고 따지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디넷코리아는 올해 콘텐츠를 중심으로 IT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이유? 이번에도 구호만 요란한채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앞으로는 콘텐츠를 외칠 기회 조차 없어질 것이란 절박함 때문이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 콘텐츠는 부가가치의 핵심이며 IT강국이란 실체없는 구호에 안주했던 한국이 다시 뛸 수 있는 계기 역시 콘텐츠가 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부존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사람 밖에 없다. 고급인력이 넘쳐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미래 산업 역시 콘텐츠가 제격이다. 건전한 콘텐츠 생태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로 활용하는데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관련기사

이런 관점에서 지디넷코리아는 올 한해 콘텐츠라는 화두를 작심하고 끌어안기로 한다. 국내 콘텐츠 산업의 현주소와 최신 이슈 그리고 발전 방향에 대해 다양한 앵글로 접근할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할 것이다. 언론매체란 한계가 있겠지만 연중 기획 시리즈를 통해 적게나마 건전한 콘텐츠 생태계 육성에 밀알이 되어보기로 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채찍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