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인재 양성 정책이 개발자와 연구자 숫자를 늘리는 데서 모든 전공에 AI 역량을 내재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전공 지식과 AI 활용 역량을 함께 갖춘 융합인재 확보가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9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발간한 'AI 교육 혁신과 AI 융합인재 양성 전략: 해외 대학·교육기관 사례와 시사점'에 따르면 주요국 대학들은 AI 교육을 컴퓨터과학이나 AI 전공자를 위한 전문교육에서 전공 구분 없이 필요한 공통 역량 교육으로 확대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카네기멜런대, 중국 푸단대·칭화대, 영국 서리대·사우샘프턴대, 캐나다 토론토대, 스위스 ETH 취리히 등 8개 대학·기관 사례 분석 결과를 내놨다.
SPRi는 AI 인재상을 모델·알고리즘·시스템을 개발하는 '전문 AI 인재'에서 전공·산업 지식과 AI 역량을 결합하는 'AI 융합인재', 안전·윤리·편향 등을 판단하는 '책임 있는 AI 인재'까지 다층화해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AI가 일부 전문가만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과 직무의 문제 해결 도구로 자리 잡았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주요 대학은 AI 학과를 늘리는 대신 기존 전공에 AI를 결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IT는 생물학·경제학·건축·인문학 등 학생의 원전공에 컴퓨팅을 접목하는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 교육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AI 전문가만 키우는 대신 각 분야의 전문성과 AI·컴퓨팅 활용 능력을 함께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초점 맞췄다.
푸단대는 AI 기초부터 핵심기술, 학제 간 융합, 산업·연구 응용까지 단계적으로 배우는 'AI-BEST' 체계를 구축했다. 이와 함께 법학+AI, 철학+AI, 마케팅+AI 등 X+AI 복수학위와 AI+X 마이크로전공을 운영해 비AI 전공 학생의 AI 융합 역량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교육 방식도 강의 중심에서 실제 문제 해결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카네기멜런대는 AI·머신러닝(ML) 교육에 캡스톤과 산업체 인턴십을 결합했다. 토론토대는 8개월 교과과정과 8개월 응용연구 인턴십을 통합 석사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SPRi는 국내에서도 산업체와 공공기관이 제시한 문제를 학생들이 데이터 분석부터 모델 설계와 성능 검증, 결과 해석까지 수행하도록 정규 교육과정에 편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산업 현장 경험을 단기 체험이나 비교과 활동이 아닌 핵심 학습 과정으로 다뤄야 한다는 취지다.
대학, 학생 평가 바꿔야…결과보다 검증 과정·전공 연계 중시
생성형 AI 확산에 따라 대학이 학생 결과물을 평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AI 활용 자체를 제한하기보다 학생이 결과를 어떻게 검증하고 수정했는지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서리대는 AI가 만든 결과물 자체보다 학생이 이를 어떻게 검증하고 수정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과정 중심 평가'를 도입하고 있다. 학생이 어떤 오류를 발견했고 어떤 전공지식을 근거로 결과를 보완했는지 등 사고 과정과 판단력을 평가 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은 전공별 적용 방식도 구체화했다. 정치학에서는 생성형 AI로 분석한 선거 투표행동 결과를 정치행동 이론과 학술 데이터로 검증하고 있다. 토목공학에서는 AI가 만든 설계안을 수작업 계산과 유한요소 모델링으로 다시 확인한다. 경영학에서는 AI가 작성한 시장분석과 마케팅 계획 오류와 일반화 한계를 전공지식으로 비판하고 재구성하도록 한다.
책임 있는 AI 활용도 교육과정에 들어가고 있다. MIT는 사회·윤리적 책임과 관련된 내용을 기존 AI·컴퓨팅 교과에 접목하고 있다. 푸단대와 사우샘프턴대도 AI 안전과 윤리, 책임 있는 활용 등을 교육 내용에 포함했다. 보고서는 AI 활용 역량을 단순한 도구 사용 능력이 아니라 AI 결과의 한계와 오류를 판단하고 책임 있게 활용하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학생 지도 방식도 단일 교수 중심에서 여러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구조로 확대되고 있다. 칭화대는 박사과정 1년차 학생이 3~6개월 단위로 2명 이상의 교수 연구실을 경험하도록 하는 지도교수 그룹 순환제를 운영한다. ETH 취리히는 서로 다른 분야 연구책임자 2명이 박사과정생을 공동 지도하며 토론토대는 산업계와 대학 지도교수가 함께 학생을 맡는다.
SPRi는 국내 대학도 단일 교수·연구실 중심 지도체계에서 벗어나 학제 간 협업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공동지도가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지 않도록 교수 간 역할 분담과 학생 지원·평가 책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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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해외 사례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은 경계했다. 대학 유형과 전공별 특성에 맞는 AI 인재 양성 모델을 마련하고 단순 수강자 수나 교과목·전공 신설 수보다 전공별 교육과정 개편 수준, 산업·공공문제 해결 경험, 책임 있는 AI 평가체계 도입 여부 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SPRi는 보고서에서 "AI 인재 양성을 단순한 인력 공급정책에서 대학 교육시스템 혁신정책으로 확장해야 한다"며 "전문 AI 인재의 양적 확대와 함께 전공별 AI 내재화, 경험 기반 학습, 책임 있는 AI 교육, 융합형 거버넌스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