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스티브 잡스를 관통하는 CEO2.0 코드…김신배 SK C&C 부회장

[김경묵의 인물탐구-4]

일반입력 :2010/02/07 16:59    수정: 2010/02/09 18:04

대담=김경묵 지디넷코리아 편집국장 정리=황치규기자

혁신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소통이 중요합니다.

국내 최대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 SK텔레콤을 이끌던 김신배 사장이 IT서비스 업체 SK C&C 대표이사 부회장 타이틀로 첫 출근했던 지난해초. 전체 임직원들에게 이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당시 많은 직원들은 이를 김 부회장이 듣기좋으라고 해주는 덕담 정도로 생각했다. 그냥 잘해봅시다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였던 이들이 적지 않았단다. 으례 CEO가 바뀌면 직원들에게 던져지는 단골메뉴가 혁신과 소통이었던 탓이다.

예측은 빗나갔다. 김 부회장은 소통을 화두로 던진 뒤 바로 행동모드에 들어갔다. 사내 커뮤니티인 심포니에 들어가 직원들과 수시로 온라인 대화를 나눴고 댓글도 열심히 달았다. 사내 게시판에서 만큼은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열혈 네티즌이었다.

소통은 실제 업무 현장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임원이든 고객 지원을 위해 외부에 나가있는 말단직원이든 만날때마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외쳤다. 소통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는 말로 긴장감도 불러일으켰다. 회사 내부에선 소통의 에반젤리스트(전도사)가 나왔다는 얘기까지 돌았을 정도. 인상깊게 읽은 책을 사내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러자 반신반의하던 직원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온라인 공간에서 CEO에게 말걸기가 어색하고 무서웠는데, 대표가 직접 성의가 담긴 댓글을 달아주는 사례가 반복되자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은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서서히 전환됐다. CEO와 일반 직원간 온라인 '솔직토크'를 벌이는 장면도 연출됐다. 김신배 부회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혁신과 소통이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변화의 시대, 소통은 경영전략

경영진 차원에서 소통을 외친다고 해서 직원들이 이를 체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대다수 기업들에선 '무늬만 소통'이 넘쳐난다. 사장이 진짜로 우리 소통좀 하자고 나왔을때도 웬지 불편해지는게 월급쟁이들의 마음이다. 솔직한 대화보다는 말한마디 잘못했다가 찍히는게 다반사다.

김신배 부회장이 소통을 강조했을때, 그리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말걸기에 나섰을때 SK C&C 직원들이 어색해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상호 존중에 기반한 소통과 상하관계가 지배하는 기업 조직 문화는 아직은 어울리기 쉽지 않은 사이다.

그런데도 김신배 부회장은 소통을 승부수로 던졌다. '안되도 그만'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퍼뜨렸다. 왜? 그에게 소통은 혁신의 핵심 인프라이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중량감있는 경영전략이란 이유에서였다.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갖춰야할 필승카드였다. 소통없는 혁신은 하나마나한 소리일 뿐이었다.

그래서다. 그는 지금도 소통하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고 부르짖는다. 글로벌 시장 공략 작전에서도 소통을 전진배치했다. 모든 것은 소통으로 통한다는 느낌마저들 정도다. 무엇이 김신배 부회장으로 하여금 '소통', '소통', '소통' 하도록 만들었을까? 그는 어떤 근거로 소통을 비즈니스의 핵심 인프라로 보고 있는 것일까? 그에게 기업 경영에 있어 소통이 갖는 전략적 가치에 대해 물었다.

요즘 고객들은 예전처럼 기업이 일방적으로 공급하면 그냥 사주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참여 지향적으로 바뀌고 있어요. 아니다 싶으면 온라인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합니다. 아이디어의 많은 부분도 고객들로부터 나오고요. 경영자로서 이런 상황을 보고 있으면 두려워질때가 있어요. 혼자서 변화에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빨라요. 숨이 가쁠 정도입니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기업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내부 직원들은 물론 고객들의 아이디어도 적극 받아들여야 됩니다. 안팎의 아이디어를 융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이런게 소통없이 가능하겠어요? 어렵습니다.

-경영 전략 차원에서 소통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CEO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겠네요.

말씀하신대로 저는 소통의 의미를 좀 크게 봅니다. 소통이란게 대화를 많이하고 남얘기 잘 들어주고 이것만은 아니에요. 내부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고객을 포함한 우리 사회와의 소통도 중요합니다. 기업을 둘러싼 전체 생태계와 소통할줄 알아야 한다고 보는거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CEO가 소통을 할 줄아는 리더들을 키워줘야 합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고객을 포함한 생태계에서 나오는 의견을 수용해 의사 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 리더들을 키우고 이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주는게 CEO의 역할이라고 봐요. 심포니 활성화에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변화를 여러차례 말씀하시는데, 핵심은 무엇입니까? 몇년전 얘기했던 '퍼펙트스톰'이라는 말과도 관련 있을 것 같은데요.

핵심은 산업 구조가 바뀌는 것입니다. 정말로 변화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퍼펙트스톰의 시대가 됐어요. 이젠 특정 기업 혼자 다할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가능하지도 않고 용납도 안됩니다. 그 분야에 전문화된 기업들과 협력(네트워킹)을 하지 않고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게 현실입니다. 그런만큼, 이젠 기업 성장의 핵심은 외부 생태계와 얼마나 네트워킹을 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애플을 보세요. 아이팟은 애플 혼자 만든게 아닙니다. 부품이나 하드웨어는 외부 업체를 통해 해결했어요. 애플은 UI나 설계만 챙겼습니다. 그랬는데도 세계 시장을 제패했잖아요? 가볍고 전문성을 갖춘 기업이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이룬 겁니다. 경제위기속에서 이같은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가속될거에요. 패러다임에 적응하려면 외부와의 소통 능력이 핵심이 될거고요.

김 부회장에게 소통은 내부 역량 강화는 물론 외부 생태계와의 협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인프라다. 기업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가 끝나고 협업에 기반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공존 공생하는게 전략적 이슈로 떠오른 만큼, 소통은 비즈니스에 있어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 외부 현장 근무자를 위한 '홈커밍 데이'에서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김신배 부회장.그는 SK C&C의 소통 경쟁력에 대해서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갈길이 남아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는 얘기였다. 가능성을 확인했기에 그는 올해도 소통 문화 정착을 위해 직접 총대를 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CEO 2.0을 꿈꾸는 전문 경영인

많은 이들이 김신배 하면 아직 SK텔레콤 사장을 떠올린다. IT업계 종사자를 빼고나면 그가 IT서비스 업체 SK C&C 대표로 옮긴지 1년이 넘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규모와 대중성에서 SK C&C는 SK텔레콤과 비교하면 무명에 가깝다. 그가 2008년말 그룹인사에서 SK C&C 부회장으로 내정됐을때 축하한다는 말을 걸기가 다소 망설여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천상 전문경영인이었다. 쌍방향 소통을 앞세운 CEO 2.0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무서운 추진력을 보여줬다.SK C&C를 거래소에 상장시켰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모기업 후광이 거의 없는 금융권에서도 인상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중간 평가는 비교적 후한 편이다. 잘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하니 예상대로 대답이 없다. 그냥 더 잘해라는 얘기로만 듣겠단다.

-SK C&C에와서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직원들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해외 시장 진출, 기업 문화 정립, 업무 프로세스 구축 등 SK텔레콤에서 했던 경험을 다시 한번 해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특히 해외 사업의 경우 획기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어요. SI와 아웃소싱사업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고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능한 핵심 IT서비스와 솔루션을 발굴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전자정부와 엠커머스 솔루션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SK C&C에겐 좋은 기회가 있다는 것도 강조했습니다. 앞서있는게 많으니, 그걸 잘 활용하다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김신배 부회장은 현재 IT서비스산업협회장직도 맡고 있다. 그러나 요즘 IT서비스산업을 둘러싼 분위기는 날씨로 표현하면 '흐림'이다. 우리나라 SW 생태계가 파괴된 큰 이유중 하나가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업체들이 중소SW업체와 상생하지 않고 시장을 독식해서 그렇다는 비판이 이명박 정부안에서도 울려퍼지는 시절이다. 관련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김 부회장 입장에선 부담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김 부회장은 할말이 좀 있다는 표정이다.

반성할 점이 있죠. 일정 부분 인정합니다. 국산 SW를 안써준다고 하는 비판이 있는데, IT서비스 업체들이 리스크를 너무 피하려고만 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라면 떠안고 가는 것도 필요한데, 이런 노력이 부족했어요. 내부적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리스크라면 국내 업체들에게 문호를 좀더 개방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중소SW업체 육성을 위해 대기업의 시장 참여를 규제하는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IT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선단형 사업이에요. 시장을 자꾸 쪼갠 뒤 규제로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관건이에요. 생태계란게 한번 만들어지면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측면에선 정부가 도와줄일들이 많다고 봐요. 관련 업체들도 좀더 노력해야 합니다. 전문성을 키우고 해외로 나가야죠. 인재 육성에도 투자하고 대학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늘려야 합니다.

-젊은층에서 IT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지식기반 서비스 경제 시대에 IT를 놓고 3D니 4D니 하는 말을 들으면 안타깝습니다. 사실 IT서비스 산업 환경은 너무 척박하고 열악해요. 학생들도 IT하려고 안하잖아요? IT의 전략적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IT 3D 업종으로 비춰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봐요.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그래요. 변화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IT업계 종사자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야죠. CEO들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근무환경도 개선시켜주고 커뮤니케이션도 활성화시켜가면서 생태계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봐요.

-올해 IT산업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들은 보통 광고와 IT비용 줄입니다. 요즘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다보니 IT투자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과거로 되돌아가는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게될거에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오픈 이노베이션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흐름이 대세가 될 것입니다. 경제 위기는 이를 가속화시킬 거고요. 오픈 이노베이션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IT시스템 도움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변화에 적응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프로세스 개선하려면 일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하는데, IT없이는 안되잖아요. IT에 제대로 투자하는 기업만이 승자가 될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IT업계는 바야흐로 변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CEO가 내리는 결정은 기업의 운명과 직결된다. 잘못된 판단 하나로 잘나가던 CEO가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시대다. 경영자들에겐 살벌하고도 부담스러운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와관련해 김부회장의 신념은 확고하다. 'CEO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다른 기업 CEO들의 행보나 발언들도 꼼꼼히 살핀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보석같은 지혜가 담겨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요즘 주목하는 경영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와 아이폰으로 세계 휴대폰 시장을 뒤흔든 애플의 스티브 잡스. 전혀 다른 스타일로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사람을 바라보면 변화의 시대에 경영자로서 무엇을 어떻게해야하는지를 성찰해보게 된다.

-롤모델로서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어떻게 평가하세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모두 작은 기업에서 시작해 IT업계에서 커다란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한사람들입니다. 빌 게이츠의 경우 걸어온 과정이 참 인상적이에요. 벤처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 경영자를 거쳐 이제 각종 사회 문제에 이슈를 던지는 역할로 변신한 과정이, CEO 입장에서 봤을때 괜찮은 롤모델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엄청난 천재에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혁신적인 제품을 벌써 4개가 내놨어요. 매킨토시, 픽사, 아이팟,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로 다섯번째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를 보고 있으면 그가 없는 애플은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게 지속 가능한 경영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하는거죠.

-변화의 시대에 어울리는 인재를 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제가 늘 얘기하는게 학력(學歷) 보다는 학력(學力)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배울 수 있는 역량, 다시 말하면 학습능력이 있는 사람을 높게 평가해요. 직원을 뽑을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정보를 배우는 과정을 잘 해낼 수 있는냐를 중요하게 봅니다. 이런 역량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이냐가 관건이에요. 학벌은 최소한의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어요.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탄 난장이가 더 멀리본다

김신배 부회장은 중학교때까지 인문학에 빠져 지냈다.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무척 많았단다. 막연하게나마 CEO가 되겠다는 꿈을 꾼 것은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그냥 CEO가 아니라 인문학과 디지털을 넘나드는 경영자를 꿈꿨다.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MBA과정을 밟은 것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요즘 말로 학제간 교류, 이른바 '통섭'을 추구하는 CEO 스타일이라 하겠다.

longdesc=image그는 SK C&C의 소통 경쟁력에 대해서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갈길이 남아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는 얘기였다. 가능성을 확인했기에 그는 올해도 소통 문화 정착을 위해 직접 총대를 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CEO 2.0을 꿈꾸는 전문 경영인

많은 이들이 김신배 하면 아직 SK텔레콤 사장을 떠올린다. IT업계 종사자를 빼고나면 그가 IT서비스 업체 SK C&C 대표로 옮긴지 1년이 넘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규모와 대중성에서 SK C&C는 SK텔레콤과 비교하면 무명에 가깝다. 그가 2008년말 그룹인사에서 SK C&C 부회장으로 내정됐을때 축하한다는 말을 걸기가 다소 망설여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천상 전문경영인이었다. 쌍방향 소통을 앞세운 CEO 2.0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무서운 추진력을 보여줬다.SK C&C를 거래소에 상장시켰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모기업 후광이 거의 없는 금융권에서도 인상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중간 평가는 비교적 후한 편이다. 잘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하니 예상대로 대답이 없다. 그냥 더 잘해라는 얘기로만 듣겠단다.

-SK C&C에와서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직원들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해외 시장 진출, 기업 문화 정립, 업무 프로세스 구축 등 SK텔레콤에서 했던 경험을 다시 한번 해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특히 해외 사업의 경우 획기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어요. SI와 아웃소싱사업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고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능한 핵심 IT서비스와 솔루션을 발굴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전자정부와 엠커머스 솔루션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SK C&C에겐 좋은 기회가 있다는 것도 강조했습니다. 앞서있는게 많으니, 그걸 잘 활용하다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김신배 부회장은 현재 IT서비스산업협회장직도 맡고 있다. 그러나 요즘 IT서비스산업을 둘러싼 분위기는 날씨로 표현하면 '흐림'이다. 우리나라 SW 생태계가 파괴된 큰 이유중 하나가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업체들이 중소SW업체와 상생하지 않고 시장을 독식해서 그렇다는 비판이 이명박 정부안에서도 울려퍼지는 시절이다. 관련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김 부회장 입장에선 부담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김 부회장은 할말이 좀 있다는 표정이다.

반성할 점이 있죠. 일정 부분 인정합니다. 국산 SW를 안써준다고 하는 비판이 있는데, IT서비스 업체들이 리스크를 너무 피하려고만 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라면 떠안고 가는 것도 필요한데, 이런 노력이 부족했어요. 내부적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리스크라면 국내 업체들에게 문호를 좀더 개방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중소SW업체 육성을 위해 대기업의 시장 참여를 규제하는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IT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선단형 사업이에요. 시장을 자꾸 쪼갠 뒤 규제로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관건이에요. 생태계란게 한번 만들어지면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측면에선 정부가 도와줄일들이 많다고 봐요. 관련 업체들도 좀더 노력해야 합니다. 전문성을 키우고 해외로 나가야죠. 인재 육성에도 투자하고 대학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늘려야 합니다.

-젊은층에서 IT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지식기반 서비스 경제 시대에 IT를 놓고 3D니 4D니 하는 말을 들으면 안타깝습니다. 사실 IT서비스 산업 환경은 너무 척박하고 열악해요. 학생들도 IT하려고 안하잖아요? IT의 전략적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IT 3D 업종으로 비춰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봐요.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그래요. 변화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IT업계 종사자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야죠. CEO들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근무환경도 개선시켜주고 커뮤니케이션도 활성화시켜가면서 생태계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봐요.

-올해 IT산업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들은 보통 광고와 IT비용 줄입니다. 요즘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다보니 IT투자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과거로 되돌아가는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게될거에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오픈 이노베이션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흐름이 대세가 될 것입니다. 경제 위기는 이를 가속화시킬 거고요. 오픈 이노베이션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IT시스템 도움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변화에 적응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프로세스 개선하려면 일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하는데, IT없이는 안되잖아요. IT에 제대로 투자하는 기업만이 승자가 될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IT업계는 바야흐로 변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CEO가 내리는 결정은 기업의 운명과 직결된다. 잘못된 판단 하나로 잘나가던 CEO가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시대다. 경영자들에겐 살벌하고도 부담스러운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와관련해 김부회장의 신념은 확고하다. 'CEO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다른 기업 CEO들의 행보나 발언들도 꼼꼼히 살핀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보석같은 지혜가 담겨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요즘 주목하는 경영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와 아이폰으로 세계 휴대폰 시장을 뒤흔든 애플의 스티브 잡스. 전혀 다른 스타일로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사람을 바라보면 변화의 시대에 경영자로서 무엇을 어떻게해야하는지를 성찰해보게 된다.

-롤모델로서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어떻게 평가하세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모두 작은 기업에서 시작해 IT업계에서 커다란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대단한사람들입니다. 빌 게이츠의 경우 걸어온 과정이 참 인상적이에요. 벤처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 경영자를 거쳐 이제 각종 사회 문제에 이슈를 던지는 역할로 변신한 과정이, CEO 입장에서 봤을때 괜찮은 롤모델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엄청난 천재에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혁신적인 제품을 벌써 4개가 내놨어요. 매킨토시, 픽사, 아이팟,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로 다섯번째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를 보고 있으면 그가 없는 애플은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게 지속 가능한 경영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하는거죠.

-변화의 시대에 어울리는 인재를 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제가 늘 얘기하는게 학력(學歷) 보다는 학력(學力)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배울 수 있는 역량, 다시 말하면 학습능력이 있는 사람을 높게 평가해요. 직원을 뽑을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정보를 배우는 과정을 잘 해낼 수 있는냐를 중요하게 봅니다. 이런 역량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찾아낼 것이냐가 관건이에요. 학벌은 최소한의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어요.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탄 난장이가 더 멀리본다

김신배 부회장은 중학교때까지 인문학에 빠져 지냈다.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무척 많았단다. 막연하게나마 CEO가 되겠다는 꿈을 꾼 것은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그냥 CEO가 아니라 인문학과 디지털을 넘나드는 경영자를 꿈꿨다.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MBA과정을 밟은 것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경영자가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요즘 말로 학제간 교류, 이른바 '통섭'을 추구하는 CEO 스타일이라 하겠다. 인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IT업체 최고경영자가 된 지금도 여전하다. 즐겨보는 TV프로그램도 다큐멘터리다. 박물관과 갤러리에도 자주 가는 편이다. 특히 그림을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단다.

인간에 대해 탐구하고 사색할 수록 비즈니스 통찰력도 업그레이드된다는게 그가 경험으로 터득한 작은 지혜다. 그가 흐름을 파악하는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이런 인문학적 사색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을 보며 애플을 생각하는것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림을 볼때면 비즈니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아요. 피카소가 폴 세잔을 존경했고,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림을 그렸지만 그냥 베끼지는 않았어요. 베끼지 않고 훔쳤죠. 훔친다는 말은 아이디어는 세잔에게서 따왔지만 자신만의 큐비즘을 창조했다는 의미에요. 애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팟이나 아이폰이 오기전에서도 MP3플레이어나 스마트폰이 있었잖아요? 그러나 애플은 이미 있던 것을 재해석해서 그들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어요. 피카소가 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를게 없습니다.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탄 난장이가 더 멀리본다 는 그가 즐겨 인용하는 말이다. 이 말처럼 기존에 있던 사례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면 새로운 룰을 세울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앞으로의 그의 훔침이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신배 부회장이 경영자로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기억하는 장면은 95년 삼성을 그만두고 SK로 옮겼을때다. 전략기획 분야 등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새로 해보고 싶어서 옮겼는데, 변화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직장을 바꿔도 직종을 바꾸라고는 권유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 당시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앞으로 무슨일이 생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어떤 선택을 할때에는 건강한 결정이냐 아니냐는 있을수도 있어도 좋은 결정이냐 아니냐로 나눌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단순히 결과가 좋으면 잘한거고, 아니면 잘못된 것 처럼 보일수 있잖아요. 그보다는 과정에 만족하고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김 부회장의 인상은 학자풍이다.

웬지 부모님 잘만나 곱게 자랐을 것 같다는 선입견도 갖게 한다. 고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외모는 그저 외모일 뿐이다. 김 부회장은 평범 또는 평범보다 조금 못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여유있는 형편은 아니었다는게 그의 기억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경험도 있다. 교사였던 부모님이 교편을 내려놓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이 잘 안풀려서 그랬다고 한다.

김 부회장도 인생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나름 우여곡절도 겪었다. 특히 SK텔레콤을 경영하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해외 사업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가 SK C&C 지휘봉을 잡으면서 글로벌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세계 무대 노크라는 쉽지 않은 도전에 다시 한번 나서고 싶은 것이다. 위축되지 않는다면 실패는 배움의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가정 형편이 힘들었을때도 기가 죽어 지낸 기억은 없다고 하는 김신배 부회장. SK C&C의 글로벌 사업을 말할때도 마찬가지다. 잘될까?, 안되면 어떻하지!하는 분위기는 풍기지 않는다. 세상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한번 지켜봐달라고 당부한다. 응원해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에게 뜬금없이 10년후의 모습을 물었다.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위대한 경영자? 아니다. 사회 사업가?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정치인? 역시 틀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역사나 문학을 주제로 세계를 여행을 하면서 그것을 책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얘기할때와 달리 아주 작은톤의 목소리였다. '인문학 마니아'로 지냈던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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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이뤄진다면, 10년뒤에는 '김신배의 인문학 여행기' 또는 '김신배, 인도에서 인간의 존재를 묻다'란 타이틀의 책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전자책으로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로 책이 나온다면 10권정도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10년전에 이런 책 나올지도 모른다고 내가 글로 썼는데, 정말로 나왔다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