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복학생 창업가의 "나의 펀딩 도전기"

인체공학 키보드로 와디즈 펀딩 흥행...고난도 공정으로 시행착오도

인터넷입력 :2026/10/27 08:47    수정: 2026/10/27 14:26

인하대학교 컴퓨터공학과·디자인테크놀로지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상혁(23세) 모두(MODU) 대표에겐 캠퍼스의 낭만과 자유로운 일상, 또래들이 한창 즐기는 대학 생활과 연애는 먼 나라 이야기다. 대신 그는 지난해 엘리베이터도 없는 용산구 원효로 5층 건물에 작업실을 내고 청년 창업가의 길을 선택했다. 사업자 등록도 했다.

그가 이끄는 MODU는 맞춤형 인체공학 키보드를 제작하는 회사다. 올해 초 와디즈에서 목표액의 811%를 초과 달성하며 총 6080만원의 펀딩을 유치했다. 서포터만 204명. 자본도 유통망도 없던 학부생 3명이 의기투합해 거둔 성과치고는 눈부셨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뒤 마주한 것은 ‘8개월에 달하는 배송 지연’과 ‘불어난 적자’라는 혹독한 성장통이었다. 

이상혁 MODU 대표. 2003년생인 그는 군대를 전역해 현재는 인하대학교 3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와디즈 펀딩 성공기를 듣고자 이 대표를 지난 22일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지디넷코리아 사무실로 초대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성공기가 아닌, 실패기 혹은 시행착오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 귀가 열리고 마음이 가는 인터뷰가 진행됐다.

손목 불편한 친구 보고 찾은 사업 아이디어…제조 경험 부족이 부메랑으로

이 대표에 따르면, 창업의 출발점은 단순한 일상의 관찰이었다. 컴퓨터 앞에서 온종일 코딩과 디자인 작업을 하던 학부 동기가 손목터널증후군과 팔꿈치 관절 이상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 기존 인체공학 키보드는 해외 직구 가격이 50만~60만원에 달할 정도로 비쌌고, 기성품의 획일적인 굴곡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손 크기를 반영하지 못했다.

“손을 키보드에 억지로 맞추며 통증을 참을 바에야, 내 손에 딱 맞는 키보드를 직접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ODU 맞춤형 인체공학 키보드

이 대표는 어깨 말림과 손목 신경 압박을 줄여주는 분리형(스플릿) 무선 키보드를 기획했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진짜 난관은 펀딩 성공 이후 시작됐다. 

이 대표와 팀원들은 200여 명 서포터(선 구매자) 전원에게 손 사진을 받아 픽셀 단위로 크기를 역추정하고, 1인당 최대 40분씩 메신저로 상담을 진행하며 손목 각도, 색상, 스위치 성향을 맞춤 설계했다.

제조 경험이 없던 대학생들의 순수한 ‘이상주의’는 양산 과정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수백 가지 조합의 부품을 좁은 공간에서 관리하다 재고가 뒤섞이는 일도 있었다. 제작 비용과 인건비, 물류비를 고려하지 않은 채 30만원 안팎의 가격표를 매겼던 탓에 만들수록 적자가 쌓였다. 청춘의 패기만으로 덤벼들기엔 제조업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바닥난 예산에 손편지까지…“배수의 진 친 심정으로 버텼어요”

설상가상으로 KC 전파 인증과 정전기 방전(ESD) 시험 과정에서 일정과 예산이 바닥났다. 제품 양산 단계에서 자금이 고갈되자, 이 대표는 무작정 와디즈 본사로 찾아갔다. 지나가던 임원을 붙잡고 절박한 심정을 담은 장문의 손글씨 편지를 건네며 선정산을 호소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안전 인증을 통과했지만, 약속했던 출하 물량을 제 때 맞추지 못했다. 

MODU 맞춤형 키보드 제작을 위한 손 스캐닝 과정. 회사는 200여 명 서포터(선 구매자) 전원에게 손 사진을 받아 픽셀 단위로 크기를 역추정하고, 1인당 최대 40분씩 메신저로 상담을 진행하며 손목 각도, 색상, 스위치 성향을 맞춤 설계했다.

“반복되는 지연 공지에 실망하셨을 서포터분들을 생각하면 매일 밤 죄책감이 들었어요. 솔직히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요. 하지만 돈을 날리는 것보다 무서운 건 ‘끝을 보지 않고 남을 배신한 사람’으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배수의 진을 친 심정으로 끝까지 버텼습니다.”

현재 MODU는 전체 물량의 약 80%를 출고했으며, 연내 전량 발송을 완료하기 위해 막바지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제품 하나를 조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분 남짓이지만, 미세한 불량이라도 발견되면 해결될 때까지 밤을 꼬박 새운다고. 완성된 제품 상자 를 직접 짊어지고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사업가로서 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실감했다고 한다.

실패와 빚으로 남은 도전..."넘어져 본 사람만이 제대로 달리잖아요"

적자와 빚을 떠안은 채 첫 도전을 마무리 짓고 있지만, 그는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자판에 손을 얹었을 때 내 몸의 일부처럼 편하다는 서포터의 긍정적인 리뷰를 받았을 때가 좋았죠. 여러 피드백을 통해 다음 펀딩에서는 공용 규격과 모듈형 맞춤 부품을 분리해 생산성을 확보하고, 정밀한 손익 계산을 해야한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펀딩 결과만 보면 MODU는 와디즈에서 꽤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속한다. 내 손에 맞는 키보드를 찾고 있던 이용자들의 취향과 가려운 곳을 제대로 짚었고, 이를 실 제품으로까지 구현 했으니 나름의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정해진 일정을 맞추고, 이익을 남기기까지 치밀하지 못했던 사업 계획이 뼈 아픈 교훈으로 남았을 뿐이다. 

이상혁 대표는 이번 와디즈 펀딩을 통해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경험을 통해 값진 교훈을 얻었다.

“아이디어를 머릿속에만 가둬두면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요. 비록 실패와 빚으로 기록될 도전이었지만, 현실로 구현해 본 사람만이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넘어져 본 사람만이 제대로 달리는 법을 배운다는 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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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청년 창업가 이상혁 대표는 취사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복학생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뷰하러 온 몇 시간조차 아직 제품을 받지 못한 서포터들에게 '여유'로 비쳐질까봐 부담스러워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 성공에 대한 장미빛 전망을 쏟아내기 보다 서포터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담감 탓에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복학하고 저 나이 때 뭘 했지?'라는 생각과 반성이 들었다. 앳되어 보이던 인상은 사라지고 그의 깊은 눈동자와 투박한 손에서 듬직한 창업가의 기운이 느껴질 때즈음 인터뷰가 마무리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