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억원짜리 최신예 주력전차(MBT)가 부품값을 모두 합쳐도 수백만 원 수준인 FPV(1인칭 시점) 자폭 드론에 무력화될 수 있다. 조종사는 게임 컨트롤러를 닮은 조종기를 쥔 젊은 병사이고 드론 상당수는 민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과 기술을 활용한다.
공상과학 영화의 장면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평원과 중동의 하늘에서 이미 현실이 된 21세기 전쟁의 모습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가 이 전쟁을 먼 나라의 일로 바라보는 동안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참여하며 새로운 전쟁 방식을 실전에서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에는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20세기 전쟁에서 군사력의 핵심은 플랫폼이었다. 전차 몇 대, 전투기 몇 대, 함정 몇 척을 보유했는지가 전투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계산법을 바꾸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NSDC)는 FPV 드론이 지난해 러시아군 손실의 약 60%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FPV 드론 연간 생산능력은 2026년 기준 800만대 이상으로 확대됐다고 한다. 전쟁 초기 보조적 정찰수단으로 여겨졌던 드론이 이제 전장의 핵심적인 소모전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전장의 공간도 달라졌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우크라이나군이 다양한 무인체계와 정찰·타격체계를 결합하면서 일부 전선에서 약 30㎞ 깊이의 '드론에 의한 소모지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차와 장갑차가 전선으로 이동하는 순간 드론에 노출되고 병력과 보급차량까지 감시와 공격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드론이 전차와 포병을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중요한 교훈은 정반대에 가깝다. RUSI 역시 드론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포병·미사일·기뢰 등 전통적인 화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드론이 표적을 발견하고 위치를 추적하면 포병이 타격한다. 전자전 장비가 적의 통신을 방해하면 FPV 드론이 침투하고, 장거리 미사일이 방공망을 압박하면 값싼 무인기가 그 틈을 파고든다.
미래전의 핵심은 '재래식 무기냐 첨단무기냐'의 선택이 아니다. 전차·포병·미사일이라는 강력한 재래식 화력에 드론·AI·센서·전자전·데이터를 결합해 기존 전력의 효과를 몇 배로 증폭시키는 것이 새로운 전쟁 문법이다.
센서에서 타격까지…전쟁은 이제 '시간'을 지배하는 싸움이다
전쟁 속도도 달라졌다. 표적을 발견해 타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급격히 줄고 있다.
과거에는 정찰자산이 획득한 영상을 지휘소로 보내고 정보분석관이 판독한 뒤, 지휘관이 판단해 포병이나 공군에 타격을 요청했다. 여러 단계의 사람과 조직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다르다. 드론이 표적을 탐지하고 AI 기반 영상분석이 사람의 식별을 지원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좌표가 공유되고 포병·미사일·자폭드론 가운데 가장 적합한 타격수단이 연결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즉 센서-지휘결심-타격이 하나의 디지털 전투망으로 연결된다.
과거의 전투가 '누가 더 멀리 쏘느냐'의 경쟁이었다면 미래전은 '누가 더 먼저 보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결심하고, 먼저 타격하느냐'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전장의 시간 단위도 시간에서 분, 다시 초 단위로 압축되고 있다. 미래전에서 시간 격차는 곧 생존 격차다.
따라서 국방 AX의 핵심도 단순히 AI 프로그램 몇 개를 군에 도입하는 데 있지 않다. 전장의 모든 센서와 지휘통제체계, 유·무인 전투체계와 타격자산을 하나의 데이터 기반 전투체계로 연결해야 한다.
이스라엘·이란 전쟁…값싼 무기가 값비싼 방어체계를 소모시킨다
중동 전쟁은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바로 '전쟁의 경제성'이다.
2024년 4월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대규모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과 미국 등은 대부분을 요격했지만 방어에 들어간 비용 역시 막대했다. 당시 이스라엘 측 전문가들은 방공작전에 수십억 셰켈 규모의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추산했다.
전술적으로는 방어자의 승리였다. 그러나 공격자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드론과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방어자가 매번 수백만달러 수준의 고성능 요격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격자는 방어자의 무기뿐 아니라 탄약 재고와 국방재정, 나아가 전쟁 지속능력 자체를 공격할 수 있다.
2025년 이스라엘의 대이란 작전은 또 하나의 변화를 보여줬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라이징 라이언(Rising Lion)' 작전에서는 사전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소형 폭발 드론이 이란의 방공 레이더와 통신시설을 공격한 뒤 200대 이상의 이스라엘 전투기가 100개 이상의 핵·군사 관련 표적을 정밀타격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F-35와 드론 가운데 어느 무기가 더 우수한가가 아니다. 저비용 무인체계가 먼저 적 방공망의 눈과 귀를 흔들고, 고성능 유인전력이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조합 자체가 중요하다.
2026년 중동 전쟁에서도 미사일·드론 공격과 방공요격이 반복되면서 탄약 재고와 생산능력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됐다. CSIS는 관련 전쟁 비용 분석에서 패트리엇과 사드 같은 고성능 요격탄의 재고와 보충 속도가 미국과 동맹국의 중요한 전략적 제약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래전에서는 '최고 성능의 무기'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고가·고성능 무기와 저가·대량 무기를 어떻게 최적의 비율로 조합하느냐가 전쟁 지속능력을 좌우한다.
더 무서운 경고…북한군은 우크라이나에서 ‘다음 전쟁’을 배우고 있다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욱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가 있다.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2024년 10월 이후 러시아에 1만 6000명 이상 병력을 파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1500만발 이상의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한 것으로도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북한군이 무엇을 배우고 있느냐다.
국가정보원은 이미 2025년 북한군이 러시아 측으로부터 드론 운용과 전술을 학습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이러한 우려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2026년 8월 러시아에 있는 북한 병력 가운데 약 400명 규모의 드론 운용 인력이 포함돼 있다는 평가까지 내놓았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 역시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드론전과 대드론 전술, 위장과 분산, 신속한 진지 이동 등 현대전의 전술적 교훈을 학습하고 있으며 초기 시행착오를 거쳐 전장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북한군은 수십 년 동안 대규모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군대였다. 그러나 이제 일부 병력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드론·전자전·포병전이 벌어지는 전장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싸우며 현대전의 시행착오를 실제 전투를 통해 학습하고 있다.
처음에는 드론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더라도 이후 위장과 분산을 강화하고 이동방식을 바꾸며 대드론 전술을 습득한다. 정찰드론과 FPV 드론, 포병을 어떻게 연계하는지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전훈이 북한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북한군이 보유한 막대한 재래식 포병과 미사일 전력에 값싼 FPV 드론, 정찰드론, 전자전, AI 기반 표적식별과 데이터 네트워크가 결합되는 상황을 우리는 진지하게 상정해야 한다. 특히 북한은 자원이 제한된 국가이기 때문에 저비용 대량 무인체계를 이용해 상대의 고가 전력을 소모시키는 방식에 더욱 강한 유인을 갖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군에 단순한 파병의 장이 아니라 21세기 전쟁을 배우는 거대한 실전학교가 될 수 있다. 북한군이 그곳에서 익힌 전술과 경험이 언젠가 한반도에 적용될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국방 AX 골든타임
우리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계속 고도화되고 있고 무인기와 GPS 교란, 전자전과 사이버전 등 비대칭 위협도 복합화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전 경험까지 북한군에 축적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병역자원 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위협은 커지는데 병력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답이 단순히 '드론을 많이 만들자'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전차와 포병, 전투기와 함정, 미사일과 방공체계 모두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력한 재래식 화력과 충분한 탄약 비축의 중요성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기존 전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전력에 AI와 무인체계를 결합해 전투력의 승수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전차에 드론을 결합하고 포병에 AI 표적획득체계를 연결하며 보병부대에 정찰·공격드론과 로봇을 배치해야 한다. 전투기·함정·미사일과 무인체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AI가 방대한 전장정보를 분석해 지휘관의 판단을 지원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개별적인 'AI 무기'가 아니라 AI로 연결된 군대다.
문제는 속도다. 민간의 AI와 드론 기술은 몇 달 단위로 발전하고 전장의 전술 역시 몇 주, 몇 달 만에 변화한다. 반면 우리의 무기체계 획득과 전력화가 수년 단위로 움직인다면 실제 전력화되는 순간 이미 뒤처질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국방 AX는 기술혁신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획득체계의 AX, 지휘통제의 AX, 교육훈련의 AX, 군수·정비의 AX, 그리고 군 조직문화의 AX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시험하고 전장에서 효과가 확인된 것은 신속하게 반영할 수 있는 제도와 조직도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장은 우리에게 미래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그 전쟁을 화면으로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참여하고, 싸우고, 실패하고, 배우고, 적응하고 있다. 이 차이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전장의 룰은 이미 바뀌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 군은 AI를 도입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북한군이 실전에서 학습하는 속도보다 우리 군이 더 빠르게 혁신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에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재래식 전력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AI·드론·로봇·전자전·데이터를 결합하고, 값비싼 정예전력과 저비용 대량전력을 함께 운용할 수 있는 한국형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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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AX는 더 이상 먼 미래를 위한 기술개발 사업이 아니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전쟁을 배우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이 추진해야 할 현실의 군사혁신이다.
평시에 혁신하지 못한 군대는 전시에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이 대한민국에 던지는 가장 무거운 경고가 바로 이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