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I 데이터센터 사업의 자문과 설계, 심사를 맡아 여러 지역을 다니고 있다. 가장 자주 만나는 유형은 이 사업을 너무 쉽게 보고 오는 쪽이다. 부지가 있고 전력이 근처에 있으니 짓기만 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뭐, 일부는 맞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됐다.
AI 데이터센터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자본과 지자체가 몰리는 사업이고, 들어올 만한 자리가 실제로 있다. 다만 초대장에는 입장 조건이 붙어 있다. 최근 이 사업의 자문과 설계, 심사를 맡아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가장 자주 만난 유형은 그 조건을 모른 채 오는 쪽이었다. 부지가 있고 전력이 근처에 있으니 짓기만 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왜 그렇게 보이는지, 그리고 실제로는 어디서 멈추는지를 정리해 두려고 한다.
골격은 부동산 개발업
AI 데이터센터 사업의 뼈대는 부동산 개발업과 같다. 먼저 들어와 살 세입자, 즉 테넌트를 확보한다. 테넌트는 자기가 쓸 시설에 직접 투자하기도 한다. 그 돈으로 부족하니 설비를 파는 쪽, 엔비디아나 델 같은 회사와 앞으로 입주하거나 용량을 되팔 클라우드 사업자에게서도 출자를 받는다. 여기에 사업 전망을 보고 들어오는 투자자를 붙여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짠다. 이 돈을 담을 그릇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우고, 그제야 건설이 시작된다.
국내에서 가장 큰 사례가 이 순서를 그대로 밟았다. 국가AI컴퓨팅센터는 2026년 6월 10일 특수목적법인 '코아크(KOACC)'를 세우고 8월 3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솔라시도에서 착공했다. 초기 출자 4000억원 가운데 공공이 1160억원, 민간이 2840억원을 냈고, 삼성SDS·네이버클라우드·삼성물산·카카오·삼성전자·KT 등이 컨소시엄에 들어갔다. 2030년까지 2조5000억원 이상을 넣어 첨단 AI 반도체 1만5000장 규모로 만든다.
이 사업이 2025년에 두 번 유찰됐다는 사실은 더 중요하다. 5월 30일 마감된 1차 공모와 6월 13일 마감된 재공고에 응찰한 컨소시엄이 한 곳도 없었다. 공공이 51% 지분을 갖는 구조와, SPC를 청산할 때 민간이 공공 지분을 이자를 얹어 사들여야 하는 매수청구권 조항이 걸림돌로 꼽혔다. 지분과 환매 조건을 손본 3차 공모에서야 삼성SDS 컨소시엄이 단독 응찰했다. GPU 수량이나 예산이 아니라 지분 구조 때문에 국가 사업이 1년 가까이 멈췄다. 부동산 개발업의 문법은 여기까지는 잘 맞는다.
인허가 창구가 하나가 아냐
그런데 부동산 문법만으로는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유는 허가를 내주는 손이 여럿이라는 점이다. 건축과 개발 인허가는 지방자치단체가 쥐고 있다. 10MW 이상 전기를 쓰는 시설에 붙는 전력계통영향평가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따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심사한다. 이 제도는 2024년 6월 시행 뒤 2026년 5월 보도 기준으로도 법정 고시 없이 시범 운영 중이었다. 수천억원짜리 결정이 확정되지 않은 기준 위에서 내려지는 셈이다.
2026년 5월 7일 국회를 통과한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과기정통부 중심의 통합 창구와 기한 내 미처리 시 허가로 간주하는 타임아웃제를 도입하고, 비수도권의 일정 규모 이하 시설에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한다. 다만 시행은 2027년 3월 10일이고, 면제 용량은 시행령에서 정한다. 간소화는 예고됐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지자체와의 협력은 여전히 출발선이다.
숫자를 보면 이 관문이 얼마나 좁은지 드러난다. CBRE코리아가 2026년 7월 12일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3월 누적 기준 수도권 데이터센터 전력계통영향평가 1차 기술검토 신청은 522건, 3만3592MW였다. 이 가운데 최종 공급 가능 승인을 받은 사업은 10건, 1010MW다. 건수로 1.9%, 용량으로 3%다. 보고서는 계통 접속 가능성과 앵커 임차인, 사업 실현 가능성을 갖춘 일부 대형 프로젝트에만 전력이 허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입자가 곧 신용
앵커 임차인이라는 단어가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한다. 테넌트는 확실히 입주할 수 있는 곳을 원한다. 언제 지어질지 모르는 집에 계약금을 걸 세입자는 없다. 그런데 거꾸로 전력 심사도, 금융도, 지자체도 테넌트가 확정된 사업에만 움직인다. 테넌트 확보는 여러 과제 중 하나가 아니라 나머지 모든 것을 여는 열쇠다.
테넌트의 신용은 돈의 값을 직접 정한다. 나스닥 상장 GPU 클라우드 사업자 아이렌(IREN)이 2026년 8월 27일 공시한 회계연도 실적을 보면, 마이크로소프트 계약에 붙은 36억 달러 GPU 금융은 투자등급으로 연 6.0%에 조달됐다. 투자등급이 아닌 고객의 배치에 쓰이는 금융 가운데 24억 달러는 블루아울과 핌코가 자문하는 투자자들이 연 9.0% 고정금리로 댔다. 같은 회사, 같은 장비인데 세입자가 누구냐에 따라 이자가 3%포인트 벌어진다.
미국에서는 설비 회사가 그 신용의 빈자리를 메우는 단계까지 갔다. 엔비디아가 2026년 7월 26일 마감 분기의 보고서(10-Q)에 밝힌 내용이다. 오하이오주 파이크 카운티에 SB에너지가 짓는 4.25GW 캠퍼스에 오픈AI가 입주하는 조건으로, 엔비디아가 임대료와 전력 비용의 정해진 일부에 최대 1050억 달러의 보증을 선다. 보증은 오픈AI가 만족할 만한 신용등급을 얻으면 끝난다. 그 대가로 이 부지는 엔비디아 AI 인프라만 호스팅한다. 앞서 필자가 '가구회사'라고 부른 쪽이 출자를 넘어 세입자의 보증인이 됐다. 같은 보고서를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지분 투자 잔액은 990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에서 이 역할을 맡을 주체는 아직 정책금융뿐이다. 그래서 PF를 짤 때 지분 조율이 어려워진다. 기존 주주의 지분을 사들이며 개발사에 현금을 대는 투자자, 완공 뒤 현금흐름을 담보로 빌려주는 대주단, 그리고 가동이 시작되면 들어오는 운영사, 이른바 MLOps·AIOps 업체는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국가AI컴퓨팅센터의 두 번 유찰은 그 조율이 실패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건물은 40년, 안의 장비는 3년
세 번째 이유는 부동산 개발업의 기본 가정이 깨진다는 점이다. 건물의 물리적 수명은 30~40년인데 GPU 세대교체 주기는 2~3년이다. CBRE는 준공 당시 최신 사양이던 데이터센터도 5~10년 안에 임차 수요를 받지 못하는 진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랙당 전력밀도는 5kW 수준에서 40~50kW 이상으로 올라가고, 냉각은 공랭식에서 액체냉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 위험이 임대인에게 몰린다. 국내 계약은 건물과 전력·냉각 설비를 임대인이 모두 제공하는 완전설비형이 많다. 임차인이 설비 투자와 유지관리를 부담하는 글로벌의 코어앤셸(Core & shell)·트리플넷 구조와 다르다. 부동산 개발업자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3년마다 바뀌는 장비의 감가를 떠안는 설비 사업자가 된다.
그래서 보험이 따라온다. 스위스리 연구소는 데이터센터 관련 글로벌 보험료가 2030년까지 106억 달러에서 242억 달러로 두 배 넘게 늘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 조건 때문에 최대 예상 손실이 훨씬 낮아도 전체 교체 가격 기준의 보장을 요구받는다는 설명이다. 보고서가 인용한 FM의 15년 손실 연구에 따르면 화재는 데이터센터 손실 사건의 11%지만 손실 비용의 42%를 차지한다. 랙 안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와 액체냉각 배관은 예전에 없던 발화·누수 원인이다. 이 보험을 다시 감싸는 재보험이 붙고, GPU 잔존가치를 보장하는 보험 상품도 나왔다.
이 대목에서 참고할 역사가 있다. 1970년대 로이즈 보험시장은 IBM 메인프레임 리스에 보험을 제공했다. 1979년 IBM이 더 싸고 강한 4300 시리즈를 내놓자 기존 장비 가치가 급락했고 리스 해지가 잇따랐다. 컴퓨트 크레딧 인덱스 리서치 추산으로 로이즈의 손실은 3억4000만~4억 달러에 이르렀다. 같은 일이 GPU에서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설비를 무엇으로 채울지, 시행사와 시공사를 어떻게 고를지는 이 위험을 누가 지느냐의 문제와 붙어 있다.
필자는 현재 AI 데이터센터 사업의 자문과 설계, 심사에 관여하고 있다. 이 글은 개별 사업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반복해 본 패턴을 적은 것이다.
쉽게 보고 오는 이유는 부동산 개발의 문법만 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문법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전력 심사와 테넌트 신용, 그리고 3년마다 갈리는 장비의 금융이다. 이 셋은 순서가 있다. 테넌트가 없으면 전력 승인이 안 나고, 전력 승인이 없으면 금융이 닫히고, 금융이 없으면 설비를 무엇으로 채울지 정할 수 없다.
그래서 검토 요청을 받으면 부지도, GPU 수량도 먼저 묻지 않는다. 확정된 테넌트가 있는지, 그 테넌트의 신용으로 대주단이 움직이는지를 먼저 본다. 그 답이 없으면 나머지 서류는 아직 읽을 단계가 아니다.
마치며
AI 데이터센터는 부동산 개발업으로 시작해서 전력 사업과 장비 금융으로 끝난다. 세 문법을 한 사업 안에서 동시에 다뤄야 하고, 한국은 그 가운데 전력 문법의 제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부지와 전력 근처라는 조건만으로 이 사업에 들어오는 것은, 세입자 없는 집에 가구부터 사들이는 일이다. 초대는 유효하다. 다만 입장권은 세입자가 들고 있다.
◆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이자 INLEVEL9(인레벨나인) 전략 컨설턴트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기업의 AI 도입과 전환, 시장 진입과 GTM 전략 컨설팅을 이끌고 있다. 넥슨, 한화생명, 노션 한국 론칭, 카카오브레인 AI 제품, 감마 GTM 전략을 거치며 제품과 시장, 기술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일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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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AI가 오래 함께 일할 때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지를 연구한다. 장기 대화형 AI의 기억 아키텍처를 다룬 ‘HEMA-2’ 논문이 한국인공지능학회에 채택됐고, 에이전틱 AI 제품의 신뢰 붕괴를 분석한 논문을 JAIH에 발표했다.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선별하는 Daily Arxiv를 운영한다. 지은 책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는 2026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에 선정됐다.
기술·경제·인문을 교차해 읽는 뉴스레터 INLEVEL9 Letter(https://inlevel9.com/)를 매일 오전 11시에 발행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