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해운업의 운항과 규정 업무 전반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선박의 생산성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복잡한 해운 규정을 찾는 데까지 AI 활용 범위가 넓어지는 분위기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노르웨이선급협회(DNV)는 최근 AI 기반 해운 규정 검색 서비스 '룰에이전트(RuleAgent)'를 출시했다. 선박 엔지니어와 기술 담당자들이 여러 문서에 흩어진 DNV 규정과 표준을 자연어로 검색해 필요한 내용을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룰에이전트는 DNV의 공식 규정·표준 데이터베이스와 직접 연결된다. 이용자가 질문하면 관련 규정을 찾아 내용을 요약하고 해당 조항으로 안내한다. 선박 규정(RU-SHIP)과 해양플랜트 규정(RU-OU)을 비롯해 선급 가이드라인, 선급 프로그램, 법정 해석, 표준, 해양플랜트 표준, 권고기준 등을 검색할 수 있다.
모든 답변에는 DNV 공식 '규정·표준 검색 시스템(Rules and Standards Explorer)'의 관련 원문으로 연결되는 링크도 제공된다. 이용자가 AI가 제시한 답변의 근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선박별 맞춤 검색 기능도 적용했다. 선박을 선택하면 선종과 선급 부호 등 해당 선박의 정보를 반영해 적용 가능성이 높은 규정을 좁혀준다. 현재 이 기능은 DNV의 선대 관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제공되고 있다.
AI로 해운 규정 찾는다…신입 교육에도 활용
DNV는 룰에이전트의 답변마다 공식 규정 출처도 함께 제시하도록 했다. 해운 규정은 선박 설계·건조·운항·인증 전반에 적용되는 만큼 잘못된 정보가 현장에 반영될 경우 설계 변경이나 일정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정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의 업무 적응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용자가 필요한 내용을 자연어로 질문하면 관련 규정과 문서 위치를 안내해 신규 인력이나 비숙련 사용자가 규정 체계를 익히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DNV는 룰에이전트를 규정 판단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닌 업무 지원 서비스로 운영하고 있다. 실제 규정 적용 여부와 적합성은 이용자가 공식 원문을 확인해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DNV는 "AI 도구는 고객의 서비스 이용을 지원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기존 서비스를 대체하지 않는다"며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 책임 있는 활용을 중시해 AI를 개발·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격·자율운항 확산…DNV, 안전성 검증 강화
원격·자율운항 분야에서도 AI 활용이 늘면서 안전성 검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AI 기반 의사결정 도구가 실제 선박 운항에 적용되고 일부 기능을 육상에서 지원·감시하는 사례가 늘수록 시스템이 운항 환경에서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해지고 있어서다.
이에 DNV는 원격·자율운항 기술을 직접 개발하기보다 AI 기반 시스템과 원격·자율운항 기술을 실제 운항에 적용할 수 있도록 운영 모델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필요한 절차와 위험 요소를 점검하고 관련 기준과 방법론을 마련해 선사와 기술 기업의 도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DNV는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아시아태평양 해운 탈탄소화·스마트 해운 우수센터(Centre of Excellence for Maritime Decarbonization & Smart Shipping Asia Pacific)' 2단계를 출범시켰다. 2021년 시작된 1단계에서 타당성 연구와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2단계부터는 차세대 원격운항 시스템과 AI 기반 의사결정 도구의 개발·확산을 지원하고 관련 검증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앤서니 M. 드수자 DNV 해운부문 동남아시아·태평양·인도 지역 총괄은 "해운업의 신연료·신기술 전환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2단계 출범으로 업계 지원 역량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됐다"며 "첨단 디지털 기술이 선대 계획과 관리 방식을 바꾸고 있고 원격운항과 자율운항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AI로 운항 최적화…연료·탄소 절감 지원
AI는 선박 운항 효율을 높이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DNV가 최근 발간한 '2050년 해운업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고품질 데이터와 실시간 정보를 활용하면 AI로 해상 물류를 최적화해 적시도착(JIT) 운항을 지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선박이 항만에 일찍 도착해 대기하지 않고 입항 가능 시간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면 연료 소비와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엔진과 추진체계, 운항 상태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분석해 선대 운영 효율을 높이는 데도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DNV 시뮬레이션에선 에너지 효율 기술과 감속 운항을 적용할 경우 글로벌 선대의 에너지 사용량을 기존 운항 방식 대비 2030년 최대 16%, 2050년 25~28%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 기준 약 4000만 톤의 연료와 1억2000만 톤의 이산화탄소 환산량에 해당한다. 연료 가격을 톤당 580달러로 가정하면 연간 약 230억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이는 AI만의 효과가 아니라 감속 운항과 각종 에너지 효율 기술을 함께 적용한 결과다.
크리스티나 샌즈 데 산타 마리아 DNV 해운부문 CEO는 "에너지 효율은 선주가 현재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수단"이라며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 배출량과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가격이 높은 저탄소 연료를 사용하는 데 따른 경제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AI 자율운항 상용화 속도
국내에선 AI 기반 자율운항 기술 도입이 이어지고 있다. HMM은 아비커스와 공급계약을 맺고 운항 중인 선박 40척에 AI 기반 자율운항 솔루션을 도입하기로 했다.
HMM은 HD한국조선해양·아비커스와 AI 기반 자율운항 기술협력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HMM이 도입하는 아비커스의 '하이나스 컨트롤'은 주변 선박과 장애물을 인식하고 운항 상황을 판단한 뒤 최적 항로와 속도를 설정해 선박 제어까지 지원한다.
정부도 운항 데이터 확보에 나섰다.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부는 지난 5월 '자율운항선박 AI 데이터플랫폼 사업'을 시작했다. 오는 2029년까지 346억600만원을 투입해 센서와 항해장비, 기관설비에서 발생하는 실운항 데이터를 수집·표준화하고 충돌 회피와 항로 최적화, 고장 예측 등에 활용할 AI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조선·해운·IT 분야 25개 기업과 기관도 데이터 공유와 함께 참여 의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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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AI 활용이 늘수록 업계에선 운항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소프트웨어에 적용하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실제 운항에 적용되는 AI 시스템이 늘면서 안전성과 신뢰성을 검증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갖추는 작업도 중요해지고 있다.
샤린 오스만 DNV 해운 탈탄소화·스마트 해운 우수센터장은 "원격운항과 자율운항에는 기술적 진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신뢰할 수 있는 보증 체계가 뒷받침되는 운영 모델을 기반으로 선주와 운영사, 규제당국이 관련 기술을 책임 있게 도입할 수 있도록 방법론과 표준, 실무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