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재강국] 피지컬 AI가 다시 불러낸 '세계'에 대한 질문

데이터 스케일링에서 월드 모델링으로 향하는 AI연구

전문가 칼럼입력 :2026/09/04 14:24    수정: 2026/09/04 14:28

조민수 포스텍 교수

국가 AI 연구거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지원을 받고 서울시와 서초구청이 뒷받침하는 AI 연구 컨소시엄으로, 카이스트·고려대·포스텍·연세대와 국내 기업들이 함께한다. 지디넷코리아는 격주마다 한국 AI 연구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을 국가 AI 연구거점의 생생한 이야기로 조망해 본다.[편집자주]

요즘 AI 분야를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단연 '월드 모델(World Model)'이다. 거대 AI 모델들이 인터넷 스케일의 데이터를 학습해 그럴듯한 문장과 영상을 만들어내며 여러 영역들을 휩쓸고 있지만, 정작 몸을 입혀 화면 바깥의 현실로 데려와야 하는 피지컬 AI, 즉 로봇 AI 영역에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효과적인 후속학습, 테스트타임 컴퓨트 같은 기법들을 통해 나름의 개선책을 찾아왔지만, 그 결과를 믿고 로봇을 현실에 그대로 풀어놓을 만한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다.

조민수 포스텍 교수

그러다 보니 행동하기 전에 앞으로 일어날 결과를 미리 평가하고 검증할 수 있는 오라클, 즉 ‘월드 모델’이 점점 주목받게 됐다. 전세계 굵직한 연구소와 기업들이 일제히 '세계를 이해하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AI'로 방향을 틀고 있는 이유다.

사실 월드 모델이라는 개념 자체는 새로울 게 별로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머릿속에는 세계에 대한 어떤 정신적 모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손쉽게 의식할 수 있다. 심리학과 로봇공학, 인공지능은 저마다 다른 언어로 이 '세계상'을 최소 수십 년 전부터 다뤄왔다.

1940년대 심리학자 케네스 크레이크가 제시한 ‘정신적 모형’의 개념은 외적 행동만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아야한다는 행동주의에 맞서 마음의 내적 과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인지 혁명'을 예고했고, 그 흐름은 이후 인지과학과 AI 분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니 지금의 ‘월드 모델’ 붐은 새 개념의 등장이라기보다, ‘마음이 세계를 어떻게 담아내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피지컬 AI라는 난제 덕분에 다시 귀환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한동안 딥러닝과 스케일링의 시대를 지나며, 유연한 범용 학습 모델과 충분한 데이터만 있으면 고전적 이론이나 인지-물리 기반 모델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씁쓸한 교훈'이 학계의 주류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다. 대규모 데이터를 쌓고 거기서 귀납적으로 일반화를 끌어내는 것이 중심이 된 것이다.

이전 세대에게 AI 연구란 계산적, 알고리즘적, 구현적 층위를 분석해 나가며 인지 구조의 본성을 밝히는 일이었으나 어느새 그런 시대는 저물고, 밝혀야할 '정보처리 과정과 구조’는 데이터에 기반한 ‘종단간의 대규모 학습'으로 조용히 대체되는 듯했다. 인간의 행동을 철저히 증류해서 똑똑한 AI를 만들 수 있다면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이제 ‘피지컬 AI’라는 난제 덕분에 필수적인 구조로서의 ‘월드 모델’, 즉 ‘세계상’에 대한 흥미롭고 심오한 질문들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 세계는 데이터를 축적하다 보면 저절로 드러나는 대상이 아니라, 세계상을 구축해줄 내적 구조와 능동적인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대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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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가져야하는지는 뭐하나 뚜렷한 것이 없다. 월드 모델 안에 무엇이 어떻게 표상되며, 얼마나 명시적이어야 하는지,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설계해야 하고, 또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 건지. 그래서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진취적인 한국 AI 연구가 확실히 도약할 수 있을 시점인지도 모른다.

빅테크의 자본과 GPU 규모를 뒤쫓는 지루한 경쟁에서는 늘 한 걸음 늦을 수밖에 없지만, 세계를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라는 흥미로운 질문 앞에서는 데이터의 크기보다 질문의 깊이와 대담한 시도가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가 무척이나 반갑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민수 포스텍 교수

조민수 교수는 포스텍 무은재 석좌교수로, 국가AI연구거점에서 2세부 로봇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이끌고 있다. 컴퓨터비전과 기계학습을 연구하며 특히 관계적 시각 인지, 구성적 학습, 피지컬 AI에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컴퓨터비전 탑저널인 IJCV과 IEEE TPAMI의 Associate Editor를 맡고 있다. 2024년 KCCV에서 이상욱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24년 하노이 ACCV의 프로그램 위원장을 맡았다. 올해는 한국 인공지능 연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