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비전은 기계에 눈을 달아주는 연구다. 카메라로 들어온 영상에서 물체를 찾고, 장면의 3차원 구조를 파악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한다. 자율주행차가 보행자를 인식하고, 로봇이 물건을 집어 들고, 스마트폰이 어두운 사진을 선명하게 되살리는 일 모두 그 바탕에 컴퓨터비전이 있다. 생성형 AI와 피지컬 AI 역시 결국 현실 세계를 정확히 ‘보는’ 능력 위에서 작동한다.
한국 컴퓨터비전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지표가 한국컴퓨터비전학술대회(KCCV)다. 2014년 100여 명으로 시작한 학회는 올해 1500명이 참석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CVPR, ICCV, ECCV 등 세계 최고 학회에서 논문 편수 기준 세계 3위에 올라섰다. 10여 년 만에 이룬 비약적인 성장이고, 그 과정에서 배출된 젊은 연구자들은 국내외 대학과 기업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논문 수가 곧 연구 리더십을 뜻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분야의 흐름을 바꾸는 연구는 여전히 소수 국가와 글로벌 빅테크가 주도한다. 격차의 상당 부분은 아이디어보다 연구 인프라, 특히 컴퓨팅 자원에서 비롯된다. 대규모 모델을 처음부터 학습하고 실패를 반복해 볼 수 없는 환경에서는 해외에서 공개된 모델을 분석하고 개선하는 연구에 머물기 쉽다. 이제 한국 컴퓨터비전은 양적 성장을 넘어 세계가 따라올 연구를 만드는 질적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올해 정부의 GPU 지원 사업은 대학 연구 현장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 본 연구실도 국가AI연구거점을 통해 지원받은 GPU를 기반으로, 영상을 픽셀의 집합이 아니라 3차원 공간 속 객체 단위로 표현하는 3D 토크나이제이션과, 끊임없이 들어오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이해하는 스트리밍 비디오 모델 연구를 시작했다. 이는 로봇과 자율주행을 비롯한 피지컬 AI의 기반 기술이다. 공개된 모델을 가져다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제 정의부터 모델 설계와 학습까지 우리 손으로 수행하는 경험은 학생을 연구의 추격자가 아니라 창조자로 성장시킨다.
국제 교류도 연구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조건이다. 해외 대학과 기업의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하다 보면 서로 다른 관점과 자원이 만날 때 혼자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성과가 나온다. KCCV가 세계적 석학을 꾸준히 초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연장에서 시작된 만남이 학생의 연구 주제를 바꾸고, 공동연구와 세계 무대의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여러 차례 보았다. 국제 협력은 선택적 행사가 아니라 우리 연구의 질문과 기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필수 인프라다.
인재 양성은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AI가 수행하는 업무와 산업이 요구하는 역량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대학과 산업계가 함께 어떤 인재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학생들의 진로도 대학이나 대기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신이 개발한 AI 기술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시장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더 많은 젊은 연구자가 도전해야 한다. 대학의 연구 성과가 논문을 넘어 창업으로 이어질 때, 학생은 일자리를 찾는 인재를 넘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인재로 성장한다. 대학은 창업을 연구의 이탈이 아닌 연구 성과의 확장으로 인정하고, 정부는 초기 기술 검증과 투자, 실패 후 재도전을 지원하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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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할은 단기 과제 지원을 넘어야 한다. GPU와 데이터, 국제 공동연구, 안정적인 연구인력 지원을 장기적 연구 인프라로 구축해 연구자가 몇 년 뒤의 성과를 내다보며 난제에 도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산업계는 현장의 문제와 자원을 대학과 공유하고, 대학은 개별 기관의 이해를 넘어 인재 양성의 큰 그림을 함께 그려야 한다.
지금 연구실에서 GPU를 붙잡고 실패를 거듭하는 대학원생이 10년 뒤 한국 AI의 방향을 정할 연구자가 되고, 새로운 글로벌 AI 기업을 세울 창업가가 된다. AI 인재강국은 인재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큰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연구와 산업으로 이어갈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정부와 산학이 도전의 시간을 함께 보장할 때, 한국 컴퓨터비전은 빠르게 따라온 지난 10년을 넘어 새로운 기준과 산업을 만드는 다음 10년을 열 수 있다. 한국이 AI 인재강국이 되는 순간은 세계가 한국 연구자의 질문을 따라오고, 그 질문에서 새로운 산업이 시작될 때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