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디지털자산 논의, 한국만 시간이 거꾸로 간다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 본질에서 벗어나...글로벌 경쟁력 우선돼야

기자수첩입력 :2026/01/09 14:55    수정: 2026/01/09 15:18

“최근 글로벌 금융사와 가상자산 거래소 사이에선 온체인에 실물자산을 구현하는 건 당연한 흐름이 됐고, 어떤 방식으로 서비스를 만들고 사용자를 확보할지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제도조차 마련되지 않았고, 산업을 키우기보다 규제 시각에서만 접근하고 있어 답답하다.”

최근 디지털자산 업계 종사자들을 만날 때마다 반복해서 듣는 말이다. 글로벌에서 전통 금융과 디지털자산 경계가 이미 허물어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오히려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규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비판은 과장이 아니다. 한때 가상자산에 부정적이던 글로벌 금융사들은 이미 입장을 바꿨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시작으로,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며 디지털자산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JP모건을 비롯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도이치방크, 스탠다드차타드(SC)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가상자산은 더 이상 변방의 실험이 아닌, 미래 금융 인프라 일부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움직임도 빠르다. 단순 매매를 넘어 커스터디, 실물연계자산(RWA), 토큰증권(ST), 파생상품, 예측시장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일례로 가상자산 거래소 크라켄은 지난해 12월 토큰화 증권 플랫폼 ‘엑스스톡(xStocks)’을 인수하며 토큰화 주식 서비스 준비에 들어갔다. 애플,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주식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 토큰화는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닌,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

반면 국내 상황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디지털자산과 산업을 정의할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논의만으로도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디지털자산 산업을 관리•통제 대상으로 보고 규제 중심 틀을 강조하는 반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산업 육성과 활성화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대표 쟁점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싼 갈등이다. 금융위는 은행 중심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구상과 함께,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15~20%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구상이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 기류가 감지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진=챗GPT)

디지털자산 업계 역시 금융위의 방향성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다만 업계가 더 문제 삼는 것은 개별 쟁점보다 논의 방향 자체다. 글로벌 금융사와 거래소들은 이미 웹2를 넘어 웹3 기반 ‘슈퍼 금융앱’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경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웹3 시장 특성상, 제도 마련이 늦어질수록 한국은 글로벌 금융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나온다.

일부에서는 “설령 지금 기본법을 만든다 하더라도, 논의가 본질에 벗어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명확성을 확보하려면 발행 주체 논쟁에 앞서, 국내 국채시장 구조 한계, 발행과 유통 분리, 유통 활성화 방안 등 보다 현실적인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업계에선 현재 쟁점이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논의라기보다는, 금융권의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연막전’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의 본질을 흐려 입법을 지연시키고, 결과적으로 산업을 제도 틀 안에 가둬 관리하려는 전략 아니냐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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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디지털자산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지난해만 해도 스테이블코인, 디지털자산기본법, STO 법제화 논의가 활발했지만 지금은 기대감이 거의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한편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가상자산 시장은 2025년 4조8천700억달러에서 2030년 18조1천50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무려 연평균 약 30%에 달하는 성장률이다. 산업은 이미 전진하고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글로벌 흐름 속에서 한국이 설 자리를 고민하는 ‘진짜 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