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서 칼럼'은 ‘IT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일하는 21세기형 전문가를 지칭하는 ‘이랜서’(e-Lancer)들이 21세기형 일과 생활에 대한 인사이트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장입니다. IT인재 매칭 플랫폼 이랜서의 박우진 대표가 몇 달간 SF소설속 여행으로 독자 여러분을 안내합니다.(편집자 주)
'앤트맨'은 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독특한 히어로 중 하나다. 하늘을 나는 것도, 초능력을 쓰는 것도 아닌 그가 가진 힘은 작아지는 것, 그것도 아주 극단적으로. 그런데 이 설정,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사실 '크기를 줄여 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는 SF 문학의 전통적인 서브 장르다. 작지만 넓은, 미시 세계 속에 우주 못지않은 세계가 있다는 상상. 앤트맨은 바로 그 고전 SF의 아이디어를 현대 과학 이론과 액션 영화로 재해석한 캐릭터다.
■ 'Fantastic Voyage' – 앤트맨의 원형
앤트맨의 세계관과 가장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SF 작품은 바로 'Fantastic Voyage(환상특급 여행)'다. 1966년 동명의 영화를 아이작 아시모프가 소설화한 독특한 케이스다. 내용은 과학자 팀이 소형 잠수정을 타고 작아져, 인간의 몸속을 탐험하며 얀 베니스라는 과학자의 뇌속 혈전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크기 축소 기술과 미시 세계 과학적 탐험, 시간 제한이 있는 미션 구조, 내부 세계가 곧 우주라는 인식 등이다.
앤트맨(특히 1편과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스콧 랭이 양자 영역(Quantum Realm)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Fantastic Voyage'에서 탐사선이 몸의 동맥 속으로 들어가 떠다니는 장면과 매우 유사하다. 단지 배경이 20세기 생물학에서 21세기 양자역학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 Quantum Realm은 현대적 'Microverse'
마블의 Quantum Realm(양자 영역 또는 양자계)은 실제 과학 이론인 양자역학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SF 문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비슷한 개념이 있었다. 예를 들면 'Microverse'와 Ray Cummings의 단편 'The Girl in the Golden Atom(1922)'이 대표적이다. 'Microverse'는 1960~70년대 SF 코믹스에서 자주 쓰인 용어로, 초소형 우주가 분자 수준에 존재한다는 설정이다. 또 'The Girl in the Golden Atom'은 화학자의 반지 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이야기로, 크기 축소와 함께 새로운 문명과의 만남을 제시했다.
앤트맨이 양자계에서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고, 현실이 비틀리는 공간을 체험하는 장면은 이 고전 SF들이 상상한 "현실 속의 또 다른 차원"이라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앤트맨은 크기가 아닌 인식 변화
'앤트맨과 와스프'에서는 양자 영역이 단순한 과학적 영역을 넘어 또 다른 우주처럼 묘사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앤트맨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즉 독자가 생각할 것은 또다른 우주가 아니라 또다른 이해의 지평인 것이다. 이는 르 귄의 'The Lathe of Heaven'이나 아서 C. 클라크의 “과학이 충분히 발전하면 마법처럼 보인다”는 명언처럼, 과학적 발전을 통한 의식의 전환이라는 SF 테마와 연결된다. 즉, 앤트맨은 크기를 줄이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현실을 다르게 보는 이야기다.
■ 앤트맨은 SF를 가장 유쾌하게 실현한 영화
많은 고전 SF 소설들이 ‘작아짐’이라는 주제를 무겁고 철학적으로 풀어냈다면,앤트맨은 그것을 가장 유쾌하고 액션 넘치게 구현해낸 영화다. 기차 세트 위에서 벌어지는 ‘장난감 전투’와 '개미가 치는 드럼 연주', '바퀴벌레 택시', '연구실 빌딩이 사실은 여행용 캐리어'인 것, 이런 장면들은 마치 상상한 아이디어들이 팝콘처럼 튀어나온 것 같은 시각적 쾌감을 준다. 그래서 앤트맨은 과학소설을 모르는 사람도 SF를 즐길 수 있는 관문 역할을 한다.
■ 마무리하며
앤트맨은 단지 작아지는 히어로가 아니다.그는 SF 고전들이 상상했던 '작지만 거대한 세계'를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존재다. 소설속의 탐험정신과 상상력 그리고 현대 물리학의 다차원 이론이 모두 이 안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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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맨을 다시 본다면,그의 헬멧 속에 담긴 작은 우주와 오래된 상상력의 역사까지 함께 떠올려보자. 앤트맨은 작지만, 빌딩보다 커질 수 있다. 개미처럼 작지만 한편으로는 SF의 거대한 존재다.
또하나 생각해 볼 것은 ‘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내 인식을 바꾼다면 안보이던 세계가 눈앞에 커다랗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저자가 좋아하는 앤트맨의 대사다. “두 번째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아요. 그러니 이 기회를 정말 자세하게 들여다보길 바래요. 당신의 딸의 눈빛 안에 있는 거요. 이미 당신의 딸은 당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눈빛 안에요”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