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가 배당을 하지 않는다고 소액주주가 소송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상법 개정의 핵심은 바로 '이해상충'에 있습니다."
상법 개정안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에 최대주주뿐 아니라 특수관계인의 소유 주식 지분을 합산해 3%로 제한(3% 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상법 개정안이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지디넷코리아와 인터뷰를 진행한 이상헌 iM증권 리서치본부 부장은 이같이 말하며 "상법개정안이 곧 주주환원정책이라는 것은 오해"라고 강조했다.
이 부장은 지주사 전문 애널리스트로 오랜 기간 기업 지배구조를 집중 분석해 왔다. 주식 시장에서 지주사를 크게 주목하지 않던 지난 2007년부터 지주사 관련 리포트를 써왔다.

그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상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만약 어떤 기업이 배당을 하지 않았을 때 최대주주와 소액주주 둘다 배당을 안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즉, 소송거리가 아닌 셈이다.
이 부장은 "이사는 크게 선관주의·충실의무·손해배상책임 의무가 있지만, 이중 주주 충실의무는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상충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특정 주주의 이익이 훼손되는 상황이 주로 문제가 된다"며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이해상충이 문제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사의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 및 충실 의무 규정만으로도 회사의 이익, 곧 소액주주를 포함한 주주 전체 이익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으로는 ▲지배주주의 회사 주식 저가 취득 ▲지배주주 보유 주식을 경영권 프리미엄 독점 등의 방식으로 고가 매각 ▲합병·분할·분할합병·포괄적 주식교환·영업양수도 등으로 지배주주 혹은 다른 계열회사가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해 소액주주가 손해를 보는 경우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지배주주가 혹은 지배주주에게 우호적인 백기사 주주가 분쟁 상대방 주주보다 우선적으로 주식을 취득해 논란이 되는 경우 등이 있다.
그동안 국내 지주사 주가가 낮았던 이유도 주주간 이해상충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안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부장 역시 상법 개정안 및 자본시장법 개정 등으로 지배구조 개선 정책이 가시화됨에 따라 지주회사 수혜를 예상했다. 주주간 이해상충 상황 발생 우려감 등이 해소되면서, 지주사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식 시장에서는 이러한 기대감이 반영돼 지주사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IMF 야기한 지배주주 사익추구 제동…승계 앞둔 오너 3∙4세들 긴장
이 부장은 앞으로 관련 소송 증가도 예상했다. 승계를 앞두고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하는 기업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하며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을 한다면 소송의 대상이 된다.
그는 과거 IMF가 일어난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지배주주의 독단적인 경영을 지목했다. 이후 이사회 중심 거버넌스로 전환하기 위해 사외이사 비중 50%, 지배 구조 개선을 위한 이사회, 감사, 감사위원회 등의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그치면서 이러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부장 역시 지배주주가 부당한 사적이익 추구를 위해 경영권을 휘두르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는 단순 거수기에 그쳐 소액주주 이익이 제대로 반영되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는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행위 근절'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2·3세에게 승계하기 위해 가족 소유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해당 계열사의 가치를 높인 후 상장 등을 통해 상속 자금을 마련하는 등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들을 상법 개정 곳곳에 담았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 부장은 "상대적으로 안정감 있게 승계해 온 1·2세와 달리 재벌가 오너 3·4세들이 자기 몫을 챙기는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 뿐만 아니라 지배구조 상에 크나큰 문제점 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분을 나눠 가지려면 아름다운 이별을 하든 분쟁을 하든 지배구조를 개편할 수밖에 없고, 이사회를 장악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상법 개정이 굉장히 파워풀하게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법 개정은 주주환원과는 상관이 없지만, 소송 당하기 싫은 최대주주들이 주주 환원 정책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다"고 관측했다.
기업들이 가장 뼈아픈 부분은?…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의 존재감은 커질 수 있다. 상장회사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 등을 합산 3%로 제한하는 ‘3% 룰’이 추가됐는데, 이는 최대주주 영향력 행사를 보다 강하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아직 논의 중인 감사위원 분리선출 역시 마찬가지로 최대주주 영향력을 줄이고 소액주주나 행동주의 펀드 영향력을 키우는 제도다. 향후 주주행동주의를 실행하는 사모펀드, 기관투자자, 소액주주 등이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생긴 셈이다.

이 부장은 "감사·감사위원회는 단순 감사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 비리에 대해서 소송권을 가지고 있어 기업을 대변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며 "소수주주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대표소송을 청구할 때도, 감사(또는 감사위원회)에 먼저 소송을 요구해야 하며, 감사가 1개월 내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주주가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 등이 상법 개정을 통해 이뤄지면 주주행동주의 활동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특히 지배주주 영향력이 가장 큰 지주사의 경우 독립된 감시 기능 강화로 지배구조 개선효과가 가시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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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반발과 여야 합의 불발로 이번 상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은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도 이달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감사(3%룰·분리선출)와 집중투표제는 기업들이 가장 뼈아파할 만한 부분"이라며 "더불어 합병시 공정가액 적용,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일반주주에 신주 우선 배정 등이 자본시장법 개정 등을 통해서 이뤄지면, 지배주주를 위한 기업구조 개편이나 중복상장 등이 적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