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섭섭하냐? 그래서 그만둔다"

생활입력 :2024/04/28 08:29

온라인이슈팀

"오늘 귀하신 시간 내주셔서 정말 고맙고 오늘 저는 잘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게 아니고 무조건 잘하겠습니다. 잘해야 되는 이유가 이런저런 이유가 있습니다마는 우선 인천공연은 이번 이 공연으로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오늘 공연은 앞으로 한 10년은 더 할 것처럼 할 겁니다."

은퇴를 시사했던 '가황(歌皇)' 나훈아(74 또는 77)가 마지막 전국 투어를 공언했다. 27일 오후 3시 인천 송도컨베시아에서 연 전국 투어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LAST CONCERT)) 첫 공연에서 이번 투어가 '은퇴 투어'임을 못박았다.

나훈아는 앞서 지난 2월 이번 전국 투어 소식을 알리면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고 선언해 '은퇴 시사'라는 해석이 나왔다. 나훈아는 당시 자필 편지에서 "여기까지 왔다. 한발 더 한발 걸어온 길이 반백년을 넘어 훌쩍 오늘까지 왔다"면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서울=뉴시스] 나훈아. (사진 = 예아라·예소리 제공) 2024.02.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나훈아 '고맙습니다' 편지. (사진 = 예아라·예소리 제공) 2024.02.2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어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를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 세월의 숫자만큼이나 가슴에 쌓인 많은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없기에 '고마웠습니다!'라는 마지막 인사말에 저의 진심과 사랑 그리고 감사함을 모두 담았다"고 했다. 다분히 은퇴가 암시된 글이었지만, 팬들은 은퇴가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나훈아는 이날 은퇴를 공식화했다.

나훈아의 콘서트 티켓은 원래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은퇴 투어가 된 이번 콘서트 예매는 피케팅(피가 터질 정도로 치열한 티케팅)이었다.

이번 투어는 인천 이후 5월11일 청추 석우문화체육관, 18일 울산 동천체육관, 6월 1일 창원 창원체육관, 15일 천안 유관순체육관, 22일 원주 원주종합체육관, 7월6일 전주 전주실내체육관 등을 돈다. 전주(30일 예매 오픈)를 제외하고 예매가 오픈된 13회차 공연은 모두 단숨에 매진됐다. 토요일엔 공연을 2회씩 여는 강행군이다. 하반기엔 서울을 포함해 공연이 추가된다. 올해 말 서울에서 은퇴식이 마무리될 것으로 추정된다.

나훈아는 이날 "여러분들의 아드님·따님들이 힘들게 표를 구해서 보내주신 걸 제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저는 오늘 무대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잘할 겁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차·물레방아 모티브로 일대기 정리…"노래하는 동안 11명의 대통령이 바뀌어" 정말 잘한 이날 공연은 나훈아 가수 일대기를 정리하는 형식이었다. 기차가 달리는 영상이 상영됐는데 그의 데뷔해인 1967년으로 시작해서 2024년 멈췄기 때문이다. 과소문 루머 관련 기자회견을 한 2008년부터 컴백 콘서트를 연 2017년까지 기간엔 기차가 수면 아래를 잠수하며 가로지르기도 했다.

영상 속에서 기차가 역에 도착했고 이후 '고향역'을 시작으로 '18세 순이'까지 나훈아는 여섯 곡을 쉬지 않고 불렀다. 매 곡마다 옷도 갈아 입었다. 무대 위 반투명 막 뒤에서 바로 갈아 입었는데 근육질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18세 순이'를 부를 땐 분홍빛 망사 상의에 치마를 입고 나오기도 했다.

'공연 장인' 나훈아의 공연은 쇼콘서트의 모범 사례와 같았다. 능수능란하게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다. 티켓은 지류 대신 포토카드로 대신하는 등 젊은 감각도 돋보였다.

공연 초반 무대를 가린 스크린에선 '이 막을 벗겨주셔야 합니다'라며 박수와 환호 소리 기계가 100이 달하면 가능하다고 공지, 초반부터 열기를 확 끌어올렸다. '부산 싸나이' 나훈아를 상징하는 '기장 갈매기' 캐릭터가 이를 안내했다.

EDM 장르인 '체인지'를 부를 때는 '불기둥'이 끊임없이 솟구쳤다.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부를 때는 몽환적인 무대 위에 나룻배가 등장하기도 했다. '가시버시'를 부른 뒤엔 팬들이 꽃다발 10여개를 무대 위에 있는 그에게 건네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나훈아는 자신이 작곡한 곡이 1200곡가량 된다고 했는데 그 만큼 세월이 흘러서 가능한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나훈아의 첫 녹음은 1968년 '내 사랑'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나훈아는 1967년을 가수 경력의 시작해로 보고 있다. 올해가 57주년이 되는 셈이다.

나훈아는 "제가 노래하는 동안 11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현 윤석열 대통령까지 역대 11명의 대통령 사진을 한 화면에 띄운 뒤 "그런데 저는 아직도 하고 있다"고 했다.

'물레방아 도는데'를 부를 땐 그간 옛날 모습들이 화면에 하나둘씩 등장하기도 했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자신의 대표곡 '홍시'를 부르긴 전엔 "우리 어머니가 100세인데 실제 성씨가 홍씨"라고 했다.

소록도·일본 오사카 공연 기억 남아 나훈아는 공연 중간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참 많았다고 돌아봤다. "공연을 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 속에서 정말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뭐가 있겠노 하고 생각을 해봤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1997년 5월 방송된 SBS TV '나훈아 그리고 소록도의 봄'을 꼽았다. SBS가 유튜브 채널에도 올린 영상이다. 한센병 환자들은 한 때 소록도에 격리돼 있었다. 나훈아는 한센병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더 부정적인 그 때 위로 공연을 갔었다.

나훈아는 "마음 아픈 곳이지예. 그때만 해도 우리가 무지해서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고 그랬습니다마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는데도 그랬기 때문에 더욱이 제가 가서 공연하는데 정말 가슴 찡하고 마음 아프고 그랬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노래하는 중간에 제일 중한 환자 제일 환자분들이 바로 앞에 이렇게 쫙 앉아 있었습니다. 환자 한분이 저한테 신청곡을 하나 신청했는데 무대 위에선 도저히 못 부르겠더라고요. 제가 내려가서 그 신청한 여인을 끌어안고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또 나훈아는 지난 1996년 일본 오사카 오사카성홀 공연도 언급했다. '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는 와중에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친 유명한 일화다. 이후 일본 우익 세력이 나훈아에게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나훈아는 "그래 '죽여봐라. 죽어 보자'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겁 없이 했다. 원래 이 성질이 가수 하면 안 됩니다"라고 웃었다.

고치지 못한 가요계 관례 아쉬워 나훈아는 마지막 투어인 만큼 그간 가수를 그만두기 전에 꼭 고치고 싶었던 게 몇 가지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중에 한 가지가, 와~ 우리는 좋은 말을 놔두고 앵콜(앙코르) 앵콜 하는지, 우리 말 중에 기가 막힌 좋은 말이 있습니다. '또!' 오늘 또 만하면 2부(오후 7시30분) 공연은 빵굽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트로트 가수'라는 말도 바꾸고 싶었던 것 중 하나다. 트로트 탄생의 기원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191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4분의 4박자의 춤곡 폭스-트롯(fox-trot)에서 파생됐다는 얘기가 유력한 설 중 하나다.

폭스트롯이 일본으로 건너온 뒤 현지 발음화돼 '도로토'가 됐다. 이 장르에 일본식 정서와 문화가 더해지면서 '엔카'가 탄생했다. 일부에서는 반박도 하지만 여기에 우리 정서가 더해지면서 우리 식의 '트로트'가 확립됐다는 이야기에 상당 부분 힘이 실린다.

이날 나훈아도 "트로트라는 말은요. 영어에 일본식 발음을 더한 건데요, 방송이나 신문이나 이런 데서 트로트 트로트 하니까 속이 뒤집어져가지고… 그런데 어쩝니까 내가 어찌 할 수도 없고요. 우리 전통가요 말이 있는데 제가 한번 전통가요를 불러볼 테니까 얼마나 좋은지 숨소리 내지 않고 들어보이소"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 이애리수의 '황성옛터'를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커버하기도 했다.

이날 나훈아의 모습은 10년은 더 노래를 해도 거뜬해 보였다. 목소리는 여전히 낭창낭창했고, 열다섯 번의 옷을 갈아입는 무대 위 강행군에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반짝이는 의상, 흰색 슈트도 기깔나게 소화했다. 팬들에게 서로 말을 놨으면 좋겠다며 이제 본인이 "맞제?"라고 물으면 "응!"이라고 답하라고 웃기도 했다.

특히 나훈아는 이날 가수를 그만두는 게 맞지만 '은퇴'라는 말은 밀려가는 느낌이라 싫다고 했다. 여전히 할 수 있어서 앞서 손편지에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점쟁이들이 자신이 내년에 죽는다고 루머를 퍼뜨린 걸 언급하며, 올해 2월에 피검사 스물 다섯가지를 했는데 "(너무 건강해서) 의사 선생이 깜짝 놀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혹시 곡을 써주며 연예계에 기웃기웃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전 후배 가수들을 잘 몰라 곡을 잘 주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제 피아노 앞에 앉지 않고, 기타도 만지지 않을 것이며, 책은 봐도 글은 쓰지 않을 것이며 일기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미에 나훈아는 팬들에게 "(자신이 그만두는 게) 섭섭하냐"고 물었다. 팬들은 "응!"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그만두는 겁니다. 여러분이 만약 서운해 안 했으면 얼마나 슬펐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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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선 한정판 음반을 한정 수량으로 판매했다. 회당 30장인데 일찌감치 품절이 됐다. 객석엔 중장년 팬들이 대다수였지만, 부모를 따라 온 젊은 팬들도 상당수였다. 세대를 막론하고 팬들은 대부분 마지막 투어에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드러냈다. 인천에 산다는 정수임·김수민 씨 모녀는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여전히 아이돌 못지 않은 끼를 갖고 있는데 더 노래해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나훈아의 은퇴를 반대하는 내용이 써진 플래카드를 들고 객석에 앉아 있는 팬들도 있었다. 해당 플래카드엔 "기장 갈매기는 계속 날아야 한다! 은퇴는 국민투표로"가 적혀 있었다.

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