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 스토어'가 앱 마켓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이균성의 溫技] 도구와 공간의 차이

데스크 칼럼입력 :2023/11/09 10:33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한 뒤 약 1년만인 6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으로 개발자 회의를 개최했다. 발표된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성능을 개선하면서도 사용료는 낮춘 ‘GPT-4 터보’가 공개됐다. 누구나 쉽게 맞춤형 챗봇을 만들 수 있는 ‘GPTs’란 이름의 서비스도 새롭게 공개됐다. GPT 모델을 사고 팔 수 있는 장터인 ‘GPT 스토어’를 이달 말에 공개할 것이라는 계획도 나왔다.

세 가지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끈 것은 ‘GPT 스토어’다. GPT 성능의 고도화와 챗봇의 대중화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GPT 스토어’ 또한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GPT가 더 큰 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도 이 부분을 강조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를 구축해 빅테크 기업과 경쟁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샘 알트먼 오픈AI CEO(왼쪽)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이 분석은 ‘GPT 스토어’가 애플의 앱스토어나 구글의 안드이드마켓과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관측으로 이어졌다. 생성 AI 붐을 일으킨 당사자인 오픈AI로서는 당연히 꿈꿔볼 일일 수도 있다. 애플이나 구글이 모바일 시대를 호령할 수 있게 된 이유와 배경은 스마트폰 기기 그 자체라기보다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앱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어낸 덕분이고 오픈AI도 그 방법을 취하고 싶었을 수 있다.

이 분석은 과연 옳은 것일까. 다시 말해 ‘GPT 스토어’는 애플의 앱스토어나 구글의 안드이드마켓과 경쟁하는 위치에 있을까. 이에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과는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GPT 스토어’가 애플의 앱스토어나 구글의 안드이드마켓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그것들을 대체하는 존재로서의 위상을 갖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플랫폼으로서의 차원이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GPT 스토어’에 대한 전망은 기술이 시장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에 대한 관점에서 흥미로운 사안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분석은 생성 AI를 인터넷과 모바일에 준하는 기술로 본 듯하다.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흔들어 놓을 기술로 여기는 거다. 생성 AI가 당대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역할에서는 인터넷이나 모바일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위대한 건 선(線)을 입체적인 공간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아이폰과 앱스토어가 나오기 전에 모바일은 통화를 하는 기술에 불과했다. 나와 타인의 목소리를 연결하는 ‘선(線)의 기술’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폰과 앱스토어가 출시되고 나서 이 선(線)은 현실 세계를 품는 공간으로 변했다. 현실 세계의 수많은 서비스와 상품이 앱이라는 형태로 모바일이라는 공간에 들어간 거다.

스티브 잡스가 이 위대한 창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선행 기술 덕분이다. 월드와이드앱(WWW)이 그것이다. 인터넷 또한 초기에는 ‘선(線)의 기술’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월드와이드웹의 출현으로 수많은 선(線)이 거미줄처럼 연결되면서 또 다른 세계로서의 공간이 창출됐다. 그것이 사이버 세계다. 스티브 잡스는 PC에서 구현되던 사이버 세계라는 공간을 이동 중에도 쓸 수 있게 만들어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시장 판도를 완전히 뒤집으며 시대를 가르는 기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은 그러므로 ‘공간의 기술’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애플의 앱스토어나 구글의 안드이드마켓은 ‘공간의 기술’이 낳은 정점이다. 한때 메타버스가 각광을 받았던 까닭은 그것이 인터넷과 모바일에 이어 인류가 창조할 수 있는 최후의 공간으로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생성 AI는 그러나 시장 판도를 완전히 뒤엎을 수 있게 해줄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기술은 아닌 듯하다. 그것은 ‘공간의 기술’이라기보다 ‘도구로서의 기술’에 가깝다. 공간은 사물을 새롭게 배치할 수 있게 해주지만 도구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생산성 향상은 결국 노동의 재배치와 관련이 있다. 로봇이 육체적인 노동을 대체한다면 생성 AI는 정신적인 노동을 대체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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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 스토어’에 담길 서비스와 상품은 그러므로 ‘지피티스(GPTs)’로 한정된다. 지피티스는 코딩 없이도 누구나 쉽게 말과 글로 만들 수 있는 챗봇들이다. 이밖에 지피티스를 만들기 위한 데이터셋이나 생성 AI 모델들도 담길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의 앱스토어나 구글의 안드이드마켓에 있는 수많은 앱이 그리로 옮겨가진 않을 것이다. 그곳은 앱이 살아가는 공간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은 탓이다.

GPT가 인터넷과 모바일처럼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PC나 모바일과 다른 전용기기가 있어야 할 거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새로운 공간이 된 것은 선행된 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있을 수 있을 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은 아닐 듯하다. 오히려 앱 마켓에서 살아가는 앱들이 생성 AI의 도움을 받아 더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GPT 스토어가 앱 마켓을 대체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