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는 치료를 못 받고 성형만 잘 하는 나라

[이균성의 溫技] 필수·지방의료도 잘 챙겨야

데스크 칼럼입력 :2023/10/18 10:08    수정: 2023/10/18 18:04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의사들의 총파업을 국민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국가고시를 거부했던 기억도 떠올릴 수 있을 거다. 당시 정부는 의사들의 강력한 반발을 넘지 못했다. 그해 9월 4일 정부와 의사협회는 이 문제를 코로나19가 안정된 이후에 협의체를 구성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일단은 의사들이 이겼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승리’가 아녔던 모양이다.

‘영원한 승리’가 아닐뿐더러 의사협회로서는 더 나쁜 결과를 받아들 수 있는 상황이 됐다. 2020년 정부의 계획은 10년 동안 4천여 명을 늘리는 것이었다. 10년 동안 4천여 명이면 연 평균 400명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 안팎에서 도는 이야기는 이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클 수도 있는 모양이다. 아직 숫자는 확정되지 않았다는 게 정부 공식 입장이지만 1천명 안팎이 될 거라는 이야기도 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의사들에겐 정세(情勢)도 더 불리해졌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권이든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려 한다는 것은 여야 정치권의 표현처럼 이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2020년과 달리 지금은 야당도 이 문제에 적극 협력할 태세다. 집권당일 때 추진했던 일이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겠다.

지금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이 문제가 2020년보다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2020년에는 이 문제가 크게 정치적일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마침 이의 시금석과도 같았던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바람에 후폭풍이 몰아치는 와중이다.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이 이슈가 여론을 바꿀 소재일 수 있고 전 정부와 차별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찬성 여론이 높고 지금의 야당이 집권당 시절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만큼 정부와 여당이 의사들의 반발을 무난하게 돌파한다면 행정 능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의사들도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인식하는 듯하다. 관계자들의 발언 중에 “정치적 발상”이니 “정치적 결정”이니 하는 말이 자주 목격된다.

의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두 가지겠다.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숫자를 포함해 의대 정원 확대 정책 결정과정에서 이해당사자와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는 것 같다. 정부가 (어떤 목적 때문에)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는 의미다. 또 법 정비와 재정 투입 같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 또한 충분치 않다고 지적하는 것 같다. 정부도 신중한 듯하다.

의대 정원 확대 이슈가 다시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이 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마냥 정치적 계산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야당도 흔쾌히 협력하기로 한 만큼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 것 같지도 않다. 정부와 여당의 의지가 확고하고 야당도 협조적인 만큼 2020년과 달리 이 문제가 대화로 잘 풀리길 바란다. 의사들은 이제 파업을 한다고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왜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하는 지는 이미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숫자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 인구 10만명 당 의대 신규졸업자 수는 OECD 평균이 13.6명인 반면 우리는 7.2명이라고 한다. 인구 천 명당 의사 수도 OECD 평균이 3.7명인데 우린 2.6명에 불과하다.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2006년 이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시간이 흘러갈 동안 의대 정원을 꽁꽁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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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이 지속될 경우 2035년이면 2021년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으려고 해도 2만7천여 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비단 미래의 일만이 아니다. 응급실 뺑뺑이를 비롯해, 소아과 오픈런,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의 약화 등 의사 부족으로 인한 의료현장의 문제는 지금도 심각한 상태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전제가 의대정원 확대라는 게 사회적 합의라고 해도 될 듯하다.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소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분야를 살리고 지방의료를 강화할 실효대책도 정교하게 짰으면 한다. 의사들이 요구한 것처럼 필수의료수가를 개선하고 의료사고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하겠고, 야당이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공공의대 설립과 지방의사제 도입도 잘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아픈 이는 치료를 못 받고 성형만 잘 하는 나라가 되면 곤란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