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의 '원조' 논쟁, 뉴스의 '단독' 자랑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독보적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데스크 칼럼입력 :2023/09/28 12:10    수정: 2023/09/29 10:3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얼마 전 어떤 후배 기자가 ‘단독 기사’를 하나 썼다. 고민 끝에 제목에 붙은 ‘단독’은 지웠다. 내용이 중요하지, 굳이 ‘단독’이라고 떠벌릴 것까진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그런데 약 40분 뒤에 다른 언론사에 같은 내용을 다룬 기사가 올라왔다. 우리 기사보다 늦게 출고된 그 기사 제목에 ‘단독’이란 문구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었다.

조금 황당했다. “같은 주제를 다룬 기사가 이미 출고된 걸 몰랐겠지”라고 애써 생각해 봤지만, 씁쓸한 마음은 여전했다. 선배의 엄격한 기준 때문에 조금 섭섭했을 후배의 얼굴이 계속 아련거렸다.

물론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 최초보도 만이 전부는 아냐…아젠다 키핑도 중요한 덕목

한국 언론에 ‘단독 기사’가 넘쳐 난다. 남들 다 쓰는 별 것 아닌 기사에도 '단독'을 붙인다. 예정된 사건을 조금 먼저 쓰면서 ‘단독’을 붙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른 회사 기사를 살짝 갈무리 한 기사도 ‘단독’으로 탈바꿈한다. ‘단독 같지 않은 단독’이 범람하고 있다.

왜 ‘단독’이 넘쳐나는지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단독’을 붙이는 것이 기사 노출 면에서 유리한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띌 뿐 아니라, 검색 알고리즘에도 더 잘 걸릴 가능성이 많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한 장면. 벤 브레들리 편집국장(오른쪽)이 밥 우드워드(왼쪽)와 칼 번스타인(오른쪽에서 두번재) 기자의 기사를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단독 같지 않은 단독’이 범람하면서, 정말 가치 있는 단독기사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버린다는 점이다.

속보 경쟁과 검색 전쟁의 산물인 ‘단독기사 난립’은 저널리즘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단독 기사’를 찾아다니는 직종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사회를 뒤흔들 특종’을 갈망한다. 개인적인 명예욕 때문이 아니다. 그게 기자라는 직종의 기본 책무다.

하지만 ‘단독 보도’나 ‘최초 보도’만이 저널리즘의 빛나는 열매는 아니다. 한 발 늦게 보도했지만, 사안을 제대로 파헤치면서 ‘세상의 등불’ 역할을 한 보도도 엄청나게 많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아젠다 세팅이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특정 아젠다’를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손석희 씨의 표현을 빌자면, ‘아젠다 키핑’이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 워터게이트 특종과 다치바나 다카시에서 배울 점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단독 보도는 ‘워터게이트 특종’일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불법적인 선거 운동을 파헤치면서, 결국 ‘대통령 하야’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 ‘워터게이트 특종’을 빛나게 만든 것은 단독 보도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워터게이트 보도’를 도드라지게 만든 것은 기자들의 끈질긴 ‘아젠다 키핑’이었다. (워터게이트 특종이 완성되는 과정이 궁금한 분은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가 공동 저술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한번 읽어보시라.)

2013년 도쿄대 측과 인터뷰를 하는 장면(도쿄대 도서관 제공)© 뉴스1

일본을 대표하는 탐사 전문 기자 다치바나 다카시도 마찬가지다.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그 금맥과 인맥’을 비롯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업을 빛나게 만든 것은 ‘단독’보다는 탁월한 취재력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한 ‘독보적 보도’였다.

그들은 단 한번도 ‘단독’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세상을 뒤흔든 보도로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저널리즘 전공자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독보적인 보도’로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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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넘길 수 있는 ‘단독’ 보도를 보면서 너무 거창한 얘기를 한 느낌이다. 너무 한 쪽만 강조하는 세태가 아쉬워서 조금 오버했다. 독자들께선 그 점 넉넉하게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어느 해보다 긴 추석 연휴의 첫날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덕담을 주고 받았으면 좋겠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