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하기만 한 美빅테크와의 플랫폼 3차 대전

[이균성의 溫技] 검색과 앱 마켓 그리고 AI

데스크 칼럼입력 :2023/06/23 08:53    수정: 2023/06/23 14:45

우리나라는 ‘IT 강국’으로 불렸었다. 미국 빅테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IT 분야 여러 영역에서 자생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상용화한 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속인터넷망을 구축하고, 그 위에 검색 게임 전자상거래 등의 산업을 꽃피웠다. 미국 빅테크 기업에 맞서 이들 시장을 지켜낸 몇 안 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여기에 반도체 스마트폰 TV PC 등 관련 전자산업도 잘 지켜냈다.

우리나라를 지금도 ‘IT 강국’이라 부르는 사람은 드물다. 그 말이 식상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곳곳에서 미국 빅테크에 밀리는 형국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한 뒤 앱 마켓플레이스는 구글과 애플에 완전히 넘겨줬다. 모바일 운영체제(OS) 싸움에서 도전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탓에 앱 마켓플레이스 또한 우리가 감당할 플랫폼이 아니게 됐다. 빅테크 등에 올라타야만 하는 것이다.

재주는 우리 기업이 부리고 돈은 빅테크가 버는 앱 생태계 구조가 짜인 것이다.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를 인수할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게 국내 IT 역사에서는 뼈아픈 일로 두고두고 소환될 것이다. 2007년 아이폰이 나온 이후 모바일 시대가 됐지만 우리나라는 OS와 앱 마켓플레이스에서 해볼 사업자가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웹 시대에 우리나라가 해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상황이 되었다.

챗GPT 플러스.

영화나 드라마를 포함한 동영상 플랫폼 시장도 앱 마켓플레이스와 비슷한 처지가 됐다. 이곳 또한 재주는 우리 기업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버는 생태계가 됐다. 정부가 이제 와서 디지털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에 5천억 원을 투입한다고는 하지만 이 구조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건 허망해 보인다. 관련 사업자에겐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으로 느껴질 뿐이다.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은 넷플릭스에 비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힘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의 경우 국내 사업자와 달리 투자한 콘텐츠를 글로벌로 유통하기 때문에 돈을 더 쓰고도 더 많이 벌 가능성이 높다. 좋은 콘텐츠 제작자가 모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사용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내 사업자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체급이 된 것이다.

CJ CGV가 자금난으로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국내 OTT 사업자에 못잖은 아쉬움을 갖게 한다. 이제 와서 영화관을 ‘체험형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도 활용해 혁신하겠다고 하지만 ‘강을 건넌 뒤 쓸모가 떨어진 배’처럼 보인다. CGV는 한국 영화의 붐을 일으킨 1등 공신이다. 국내뿐이 아니다. 글로벌로 약 600개의 점포와 4200개의 스크린을 보유해 규모에서 세계 5위다.

모바일 OS나 앱 마켓플레이스 그리고 OTT는 먼 안 목으로 조기에 반도체 못잖은 대규모 투자를 선행하며 글로벌을 염두에 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쿠팡 모델’이 필요한 시장이었다. 국내 OTT 시장에 아쉬운 건 모바일 OS나 앱 마켓플레이스에서처럼 그런 사업자가 없다는 점이다. CGV가 10년 전에 오늘을 내다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바일 OS나 앱 마켓플레이스 그리고 OTT의 경우 한국 기업에서 주도 사업자가 나오는 게 불가능한 영역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 콘텐츠의 저력을 보면 꼭 그렇게 생각할 일만도 아니었을 수도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미국에서 수년간 웹툰에 들인 공이 지금 어느 정도 성과로 이어지는 것처럼 OTT도 초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과 정책과 사업자가 어우러졌다면 지금과 다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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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시대를 구분 짓곤 한다. 인터넷 시대나 모바일 시대라는 표현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시대를 구분 짓는 IT 기술 전쟁이 벌어질 때는 플랫폼 대전(大戰)을 동반하곤 한다. 웹 중심의 인터넷 시대에는 검색 플랫폼 대전이 벌어졌었다. 우리는 이 대전에서 세계 어느 나라 못잖게 잘 싸워냈다. 모바일 시대에는 앱 마켓플레이스 대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 대전에선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했다.

OTT 시장에서 우리가 힘을 못 쓰는 건 그 여파다. 이제 다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챗GPT가 촉발시킨 AI 시대. 최대 전쟁터는 검색과 생성AI를 결합한 플랫폼이 될 것이다. 미국 빅테크와 벌이는 플랫폼 3차 대전이라 부를 만 하다. 그 싸움의 결과는 5~10년 뒤 우리 IT 생태계를 결정하게 될 거다. 네이버와 카카오 생태계가 모조리 구글과 MS 생태계로 옮겨가는 걸 상상하는 것은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