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더 열심히 살았더니 더 불행해졌다

기자수첩입력 :2023/05/24 16:43    수정: 2023/05/25 17:37

최근 출장 차 덴마크에 다녀왔다. 복지 선진국의 단면을 며칠 엿본 것에 불과하지만 느낀 바가 있어 몇 자 적어본다.

덴마크의 청소년들은 고등학교와 대학 진학 전 각각 두 번의 ‘쉼표’가 주어진단다. 각각 일 년씩 총 2년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학업이 아닌 인생 공부를 하는 시간이다. 첫 번째 일 년은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는 시간이고, 뒤는 대학진학이 인생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시간이라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선행학습도 모자라 복습에 여러 곳의 학원을 뺑뺑이 도는 우리나라의 아이들과는 딴판이었다.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그네들의 삶. 나는 그것이 한국 사람의 기질과는 맞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우리나라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서로가 경쟁하고, 인정받기 위해 일하면서 죽을 둥 살 둥 살아남아야만 하는, ‘열심’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우리의 삶은 사실 불행에 가깝다고 말이다. 

언론계에서도 너무 열심히 살다 불행해지고, 아예 길을 잃을까봐 두려운 젊은 기자들이 많은 것 같다.  

최근 ‘바이스 미디어’가 파산했다. 그에 앞서 ‘버즈피드’도 뉴스 서비스를 중단했다. 모두 한 때 뉴욕타임스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를 위협하던 디지털 미디어의 선두주자들이었다. 이들의 실패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 우울한 이야기들뿐이다.

우리 언론계의 사정도 별다를 것이 없다. 한 종합편성채널의 구조조정 소문까지 돌면서 불안감이 커지는 것 같다. 여러 언론의 인원 감축 소식도 계속 들려온다. 

국내·외의 언론계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언론계를 떠나려는 젊은 기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언론이라는 침몰하는 배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탈출하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떠나려는 기자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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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이나 상담을 받고 싶지만, 이럴 때일수록 바짝 엎드려 재깍재깍 나오는 월급이나 받으며 어려운 시절을 버티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낙관이나, 옛날이 좋았다는 술주정이나, 요즘 기자들은 인내심이 없다는 힐난 따위만 돌아오니 더 절망할 뿐이다.

나는 너무 열심히 살다가 불행해져 길을 잃은 동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 지 모르겠다.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한마디만 하고 싶다. 나도 너처럼 길을 잃었다고, 가능하면 손도 잡아주면서, 그런 동정이 아닌 위로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