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페이스’가 문을 닫는다.
주목받던 밀레니얼 미디어, 각종 수상과 이슈를 선점했던 뉴미디어 실험의 ‘안녕’이다. 명확한 방향성, 고품질의 콘텐츠, 깊이 있는 시각. 비록 지향점의 호불호는 있었지만, 닷페이스의 해산을 바라보는 언론계의 감정이란, 안타까움이나 쓸쓸함 이상인 것 같다. 미디어의 지속가능함이란 난제. 좋은 콘텐츠가 지속가능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정한 현실. 그리고 돈.
한때 나도 뉴미디어 실험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론사 소속 기자이자 1인 미디어 몇 년 병행 활동을 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메이저에서 비껴났지만, 색다른 시각을 가진 1인 미디어, 대안미디어 등 뉴미디어 종사자들은 자주 술을 마셨다.
취재 열정은 그득해도 돈이 없어서 쪼들리는 생활에 대한 한탄, 주류 언론계의 텃새에 대한 기막힘. 월급을 받으며 ‘이중생활’을 하던 나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태워가는, 무모하리만치 순수한 저널리즘을 향한 열정을 퍽 동경했다.
이중생활을 그만 둔 건 의학기자가 되기로 작정한 까닭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홀로 뒷골목을 배회하는 게 쓸쓸했기 때문이다. 시위 취재를 하다 물 폭탄을 맞고, 거기에 장맛비까지 쫄딱 맞으며 광화문을 걷고 있노라니 소위 ‘현타’가 왔다. 나는 서울의 뒷골목을 걷던 그 적적했던 시간을 종종 기억한다.
“걱정하지만 대체로 즐기고 있다.”
수년 후 한 시상식장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나는 저널리즘 실험을 하는 팀을 맡고 있었다. 의사결정은 빠르되 가장 좋은 것이 선택되어지도록 하는 것.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로이 의견을 제시하는 분위기.
이런 팀 문화를 만드는데 6개월이 걸렸다. 나와 팀원들은 1/n씩의 역할을 맡고, 난 거기에 두 개 더, 책임과 밥값을 부담했다. 기똥찬 아이디어는 이런 분위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나는 내심 닷페이스를 이기고 싶어 그들의 영상을 해부하듯 보고 또 봤다.
그렇게 처음 만든 다큐 시리즈로 민언련에서 상을 받았다. 함께 수상한 매체는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곳들이었다. 이후 나는 회사를 떠났지만 마지막 휴가를 쪼개 팀원들과 마지막 다큐를 만들었다. 꽤 멋있었고, 그만큼 쓸쓸했던 피날레였다고 기억한다.
닷페이스의 6년만의 해산. 이것을 바라보는 언론인들의 씁쓸함. 혁신이란 도무지 요원할 것만 같은 언론 시스템 아래에는 고민에 빠진 젊은 기자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뉴미디어라면 가능하겠다고 여긴 어떤 ‘희망’ 같은 것을 닷페이스에서 보려했을 것이다. 그런 미디어가 현실의 벽 아래 부딪쳤음을 알아버렸을 때의 침통함, 쓸쓸함.
한때 닷페이스를 이겨보고도 싶었지만, 사실은 그들이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칼럼으로나마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안녕, 닷페이스. 그리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