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물가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봇(정책 선회) 기대감에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0선까지 밀려났고, 원·달러 환율도 1300원 아래로 내려섰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둔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아래로도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2월 23일(1193.6원) 이후 1년 2개월 간 1200원 이상을 유지해 왔다.
15일 서울 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날 11.5원 하락한 1298.9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이틀 동안 26.8원이나 급락했다.
달러화 가치도 크게 내려왔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지난해 9월 말 114선까지 오르면서 2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13일(현지시간) 100.700에 마감하며 100선으로 내려섰다. 달러인덱스가 100선으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 4월 22일(100.933) 이후 1년 만이다.
원화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꺾였다는 판단에 미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 등 조기 피벗(정책선회) 기대감이 나오면서 달러화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이어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시장 예상치를 하회하면서 달러화가 약세를 키우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미 노동부가 발표한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계절 조정 기준 전월대비 0.5% 하락해 시장 예상치(0.0%)를 크게 하회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4월(-1.2%) 이후 3년 만에 최대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전날 소비자물가가 둔화한 데 이어 도매물가도 빠르게 내려가면서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다는 데 힘이 실렸다. 일반적으로 생산자물가는 소비자물가의 선행 지표로 받아들여 진다.
이에 앞서 발표한 3월 미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월 대비 5.0% 상승해 2월에 기록한 6.0% 보다 1.0%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5.1%보다 낮은 것이다. 2021년 5월 이후 1년 10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월대비로도 0.1%올라 시장 전망치(0.2%)를 밑돌았다.
시장에서는 물가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연준의 목표치인 2%를 여전히 큰 폭 웃돌고 있어 미 연준이 다음달 FOMC 회의에서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반영된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은 연준이 5월 FOMC에서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33.0%로,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을 67.0%로 반영하고 있다.
이미 미 채권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해 세 차례 금리 인하에 돌입할 것을 반영하고 있다.
전날 외환당국과 국민연금간의 외환스와프 체결도 원화 강세로 작용하고 있다.
외환당국은 13일 국민연금공단과 올해 말까지 35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외환스와프 거래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외환스와프는 일정 기간 서로 다른 두 통화를 맞교환 하는 것을 말한다. 국민연금이 한은에 원화를 제공하는 대신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공급 받아 해외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이번에 외환당국과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가 재체결 되면서 외환당국 입장에서는 외환시장 불안정시 국민연금의 현물환 매입 수요를 흡수해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 완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경제지표가 반등할 경우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위험선호 심리도 살아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외국인 자금 유입도 원화 강세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국내 코스피 시장에서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 동안 9669억원 어치를 순매수 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880억원 어치 사들였다.
반면 물가가 꺾였지만 근원물가가 여전히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내 금리 인하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3월 헤드라인 물가는 5.0% 상승해 전월보다 상승폭이 둔화됐지만 에너지와 식품 등 변동성이 큰 부분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헤드라인 물가보다 높은 5.6% 수준을 기록했다.
실업률이 3.4%로 1969년 이후 최저 수준인 등 여전히 타이트한 고용시장 환경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연준의 긴축을 지지하는 요인이다. 미 연준이 지난달 점도표에서 밝힌 올해 최종금리 5.1%를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미국의 긴축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이어져 달러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2분기 1200원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과 1300원대 박스권에서 횡보할 것이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 원달러 환율이 시장 기대처럼 현수준을 유지하거나 완만하게 움직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4월 중에는 1달러당 1300원 전후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4월 말 또는 4월 하순 이후에는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해 이번 분기말에는 1달러 당 1200원 또는 그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최근 상대적인 원화 약세는 계절적인 요인이 만들어낸 디커플링이라고 보고 있으며 우리 내적인 펀더멘털 요인보다는 여전히 미국 통화정책의 방향이 주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며 "2분기부터 중국 경제지표 반등이 본격화될 경우 추세선을 크게 벗어나 있는 원화 환율이 빠르게 추세선 쪽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의 원화 강세는 미 연준 금리 인하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등 일시적인 영향이 크고, 올해 상반기까지는 원·달러 환율이 1300원 박스권에서 움직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더 빨리 금리 인하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도 원화에는 약세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은 미 연준 긴축 완화 기대감과 외환당국과 국민연금 간의 통화스와프 체결 등에 따른 일시적 영향이 크고 추세가 바뀔것 같지는 다"며 "이창용 한은 총재가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만 내수 둔화 등의 흐름을 봤을 때 우리가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 상반기 중에는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아래로 크게 하락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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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국의 그간의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는 위험자산인 원화에는 약세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며 "금리 인하 이후 경기에 대한 완만한 회복 등이 뒷받침 될 경우 4분기 말께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초반까지 내려설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제공=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