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를 앞둔 만큼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속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5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고등학교 1학년 이철호군(17, 가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남색 교복을 입은 이군은 "학원 앞에서 전단지에 사탕을 붙여서 주거나 떡볶이, 치킨 등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제 못 믿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3일 오후 6시쯤 대치동 학원가에서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에 좋은 음료수인데 시음 행사 중"이라며 고등학생들에게 마약이 담긴 음료수를 건넨 일당 2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음료수를 학생들에게 마시게 한 후 학생의 부모에게 "자녀가 마약을 했으니 돈을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학생들로부터 구매 의향 확인을 빌미로 부모들의 전화번호를 받아냈다.
뉴스1이 입수한 학원가 인근 폐쇄회로(CC)TV에는 일당이 마약이 든 음료병을 들고 서성이는 모습이 찍혔다. 학생에게 접근해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들이 학생들에게 제공한 음료수병에는 '기억력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 ADHD'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유명 제약회사의 상표도 붙어 있어 학생들은 더 쉽게 속을 수밖에 없었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시음 행사를 미끼로 접근한 만큼 학원가 앞에서 만난 고등학생과 학부모들은 공포감을 드러냈다.
한 손에 교재를 든 고등학교 1학년 김모양(17)은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비싼 약도 사 먹는 현실인데 저였어도 속았을 것 같다"며 "학생들의 간절함을 악용한 게 너무 괘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원가 앞에서 만난 제갈모양(17)은 "학교에서도, 부모님도 남이 주는 음료를 마시지 말라고 당부했다"며 "이제 남이 베푸는 호의를 믿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정창우(43)씨도 "학생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봤다는 점이 특히 분노스럽다"며 "제 아이에게도 절대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먹지 말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학원에 데려다준 50대 학부모 이모씨도 "서울 한복판에서 아이들에게 마약을 건네는 범죄가 이뤄졌다는 게 충격적이다"며 "내 아이가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6일 경찰에 따르면 현재까지 접수된 피해 신고는 총 6명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음료수를 나눠준 혐의를 받는 일당 중 40대 여성 A씨를 전날 체포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40대 남성은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범행에 가담한 일당 2명을 추적하고 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마약 성분이 든 음료인지 몰랐다"며 "인터넷 구인 글을 보고 일했을 뿐이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경찰은 배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이자 마약퇴치연구소장은 "청소년이나 사춘기인 미성년자가 마약을 먹으면 몸에 악영향을 더 많이 미치게 된다"며 "한번 섭취로 중독이 되지 않지만 먹은 양에 따라서 증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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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일대 학원가는 "한국학원총연합회의 지침 사항이 내려오면 학생과 강사들에게 교육을 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