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챗GPT, 기자의 미래를 위협하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단순 사실 보도→지혜의 저널리즘으로

데스크 칼럼입력 :2023/02/02 16:17    수정: 2023/02/02 23:3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챗GPT가 뉴스 생산에 본격 뛰어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오픈AI의 대화형 챗봇 ‘챗GPT’ 열풍을 지켜보다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 대학 리포트나 논문이 아니라 기사를 쓰게 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지 갑자기 궁금해 졌다.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로봇 저널리즘’이 쟁점이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AP를 비롯한 세계 유력 언론사들은 이미 로봇 저널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증권 시황이나 스포츠 결과 보도, 기업 실적 같은 기사들은 조금씩 자동화 알고리즘이 대체하는 추세다.

(사진=오픈AI)

그런데 챗GPT는 이전에 나왔던 로봇 저널리즘과는 차원이 다르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마추어 바둑 기사와 프로 바둑 기사 정도 차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챗GPT가 언론계에 본격 적용된다면?

질문을 던진 뒤 기자들이 하고 있는 일을 곰곰 따져봤다. 생각보다 많이 대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널리즘 영역은 챗GPT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을까

기자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을 한번 따져보자. 대한민국의 기자들 중 상당수는 하루 종일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을 것 같다.

1. 보도자료 처리

2. 기자 간담회 취재

3. 토론회/컨퍼런스 취재

4. 현안에 대한 분석/해설 기사 작성

5. 발생 사건 취재

6. 탐사 보도

맡고 있은 영역이나 매체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충 이런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챗GPT는 이런 일중 어떤 것들을 해낼 수 있을까? 기자 간담회나 컨퍼런스 발표 자료는 별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실시간 토론을 보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분석/해설 기사는 어떨까? 챗GPT를 몇 차례 사용해 본 경험에 따르면 과거 자료를 기반으로 한 분석 능력은 꽤 놀라웠다. 방대한 자료를 습득하는 능력은 사람보다 한참 앞선다. (알파고가 바둑 최고 기사들은 가볍게 꺾은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챗GPT는 미디어 시장을 구원할 절대 반지일까, 아니면 악마의 유혹일까? 사진은 영화 '반지의 제왕' 한 장면.

이렇게 따져보니, 지금 기자들이 하고 있는 일 중 챗GPT가 도저히 대체하지 못할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현재 수준에 음성 인식 기술만 좀 더 보완된다면 토론회나 기자 간담회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내 진단이 조금 극단적일 수는 있다. 현장에서 열심히 취재하는 기자들은, 다소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 기자 분들에겐, 정말 죄송하단 말을 전한다.)

내가 챗GPT의 능력을 다소 극단적으로 평가한 건, 저널리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자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언론학자 미첼 스티븐스는 ‘비욘드 뉴스-지혜의 저널리즘’을 통해 이 문제를 잘 짚어줬다.

그는 출입처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재 시스템을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맹목적 인용 보도(he said/she said journalism)나,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정보를 되풀이 보도하는 건 금방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특히 단순 사실 보도는 오래지 않아 로봇이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

■ 챗GPT 시대를 살아갈 기자는 어떤 덕목 갖춰야 할까 

언론의 미래는 5W에서 5I로 진화 발전해야 한다고 스티븐스는 주장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라는 질문을 기반으로 한 기사는 이제 기자들의 전유물이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언론은 현명하고(Intelligent), 확실하게 이해를 하고(Informed), 해석적이며(Interpretive), 통찰력(Insight)있는 분석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우쳐주는(Illuminating) 기사로 승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티븐스는 이를 ‘지혜의 저널리즘'이라고 불렀다.

물론 지금 당장 챗GPT가 기자들의 일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사나 챗GPT 개발사 모두 그 쪽으로 눈을 돌릴 이유도 아직은 많지 않다. 

하지만 챗GPT가 언론계, 특히 기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코 작지 않다.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한 기사 작성이나 취재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별다른 비판이나 통찰 없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보도는 챗GPT 시대에는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일 수도 있다. 

챗GPT에게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단순 사실보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능력으로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챗GPT를 충실한 비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챗GPT 같은 대용량 언어 모델이 쉽게 대신하지 못하는 발로 뛰어다니는 보도(shoe-leather reporting) 능력도 지금보다 더 연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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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현상을 통해 ‘지혜의 저널리즘’ 담론을 떠올리면서 해 본 생각들이다. 물론 이런 생각들이 '기술에 대한 과도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선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반박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챗GPT 같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 기자라고 해서 이런 변화에 대해 '나 홀로' 저항할 수는 없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주변의 문법이 확 달라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