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1년이면 될 일, 韓은 3년 동안 삽도 못 떠"

[반도체가 미래다-3부] ①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22/11/03 16:14    수정: 2022/11/03 16:52

반도체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가 이제 기술 패권 경쟁과 4차 산업혁명 속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 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 안보 자산으로 평가 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삼성전자가 투자하기로 결정한 지 1년 만에 미국에서 공장을 짓는 데 반해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시에서 3년 동안 삽도 뜨지 못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달 27일 '제15회 반도체의 날'을 맞아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서울코엑스호텔에서 지디넷코리아와 인터뷰를 하며 이같이 말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반도체 위탁생산(Foundry·파운드리) 신규 공장 기초 공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해 새로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사진=유혜진 기자)

반면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쏟아 붓기로 한 용인반도체산업단지 착공식은 지난 7월 취소됐다. 경기도 여주시를 비롯한 인근 지방자치단체가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공장에서 남한강 물을 끌어다 쓰는 만큼 근처 지자체에 상생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맞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19년부터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를 꾸리겠다고 나섰지만 땅 주인에게 보상하는 데에만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 부회장은 "한국은 기업 경영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다"라며 "(시간이 중요한 반도체 처럼) 대규모 투자하는 데에는 걸림돌을 없애 신속하게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 단지가 꾸려질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사진=용인시)

다음은 이창한 부회장과 일문일답.

Q.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업 환경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기업 활동하기 어려운 나라다. SK하이닉스가 3년 동안 용인반도체산업단지 조성을 기다리는 반면 삼성전자는 1년 만에 미국에서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서 1년도 안 돼 행정 절차를 다 끝내는 동안 SK하이닉스는 한국에서 몇 년이 지나도록 시작도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공장을 짓겠다고 하면 공무원이 부지에 사무실을 차려 현장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줬다. 한국에서는 필요한 인가 받으려고 여러 군데 흩어진 정부부처를 돌아다녀야 한다. 우리 집에서 어려움을 겪어 발품 팔고 있다가 다른 곳의 여러 공직자가 직접 찾아와 한꺼번에 다 해준다고 생각해보자. 어디 가서 기업 경영하고 싶겠느냐."

김기남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그렉 애벗 미국 텍사스 주지사가 2021년 11월 2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 신규 공장 부지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Q.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데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데 좁은 땅덩어리가 가장 발목을 잡는다. 미국에는 빈 땅이 널렸지만 한국 땅은 희소 자원이다. 좁을 땅을 나눠가지려니 규제가 산 넘어 산이다. 복잡하게 용처를 정해둔다. 귀한 땅을 가진 사람이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값을 많이 치루고 싶은 심정을 이해한다. 지방자치단체가 각자 이익을 도모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대규모 투자가 어려우면 국가도 손실을 입고, 정치 분위기에 기업이 휩쓸리면 힘들다. 갈등을 풀 사회·정치 구조가 한국에 없다."

용인반도체산업단지 조감도(사진=용인시)

Q. 기업이 좀 더 과감하게 투자를 하게 하려면 정부가 어떤 유인책을 내주면 좋겠는가.

"정부가 5년 동안 34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초강대국을 달성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결국 기업이 투자한다. 정부는 투자하기 좋은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정부가 마중물 같은 자금을 대줄 수도 있다. 어차피 투자하겠다는 기업 입장에서는 돈보다 이리저리 뛰어다닐 시간을 아껴주길 바란다. 처음부터 규제 없는 게 가장 좋다. 우리 나라에서는 규제를 만들고 잠시 풀어주면 특권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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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이 10월 27일 ‘제15회 반도체의 날’을 맞아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서울코엑스호텔에서 지디넷코리아와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혜진 기자)

Q. 정부와 정책 입안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정책을 만드는 사람조차 산업 정책과 기업 정책을 헷갈려 한다. 기업이 공정하게 거래하는지, 경영 성과를 어떻게 배분하는지 살피는 일과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게끔 돕는 일은 다르다.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특혜를 준다'는 의견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혜택을 받는 것은 맞지만 관련 기업이 성장해야 국가 경제도 커진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유리하니까 반도체특별법으로 돕지 말자'고 한다면 대만에서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TSMC가 없어져야 대만이 잘 된다고 하는 논리다. 우리는 TSMC를 부러워하면서 한국에서는 그런 기업을 키우지 말자는 주장은 이상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