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 '버티기'에 들어간 스타트업

[백기자의 e知톡] "몸싸움 잘 하는 애가 이긴다"

인터넷입력 :2022/11/02 10:17    수정: 2022/11/02 22:16

“거기 나름 그래도 돈도 벌고 잘 나가는 스타트업 아니었나? 그런 데가 왜 저렇게 무너졌지…”

최근 몇몇 스타트업들이 신규 투자 유치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업계가 혹독한 겨울나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특성상 ‘성장’에 초점을 뒀던 곳들도 최근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일단 수익부터 챙긴다”는 말을 합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됐냐 물으면 “투자사가 그렇게 원해서”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일단 마케팅 비용부터 줄이고, 인력 채용을 예전보다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합니다.

‘언제까지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는 목표가 현재의 스타트업들에게 주어진 미션입니다. 높은 몸값과 처우를 보장하며 경쟁적으로 ‘개발자 모시기’에 열을 올렸던 열풍도 한풀 꺾인 모습입니다. 그래서인지 한 때는 도저히 개발자 채용이 안 된다고 하더니, 요즘은 그래도 괜찮은 개발자들이 보인다고도 말합니다.

겨울 등산(제공=픽사베이)

우여곡절 끝에 올해 가까스로 기업공개(IPO)에 골인했지만 제 속도를 못 내는 쏘카, 당초 예상보다 상장이 늦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새벽배송 기업 마켓컬리, 잇따른 투자 유치 불발로 경영권 매각 카드까지 내놓은 메쉬코리아, 돌연 서비스를 중단한 오늘회까지 스타트업 업계에 짙은 안개가 깔린 분위기입니다. 그렇다고 내년엔 시장 상황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커녕, 올해보다 더 힘들면 힘들지 나아질 건 없다는 전망이 갑갑한 마음을 더할 뿐입니다.

지난 몇 년 간은 사업 아이템만 좋다면, OO 출신 멤버들이 주축으로 창업한 회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면, 또 당장은 아니어도 비즈니스 모델과 투자 회수 계획만 명확해 보인다면 비교적 손쉬운 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스타트업이 주목을 받았고, 실제로도 많은 정부 예산이 창업가 양성과 스타트업 보육에 사용됐습니다. 기업가치 1조원을 찍는 기업에게 주어지는 ‘유니콘’이라는 화려해 보이는 계급장을 향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매진했고, 간혹 그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상황은 변했고 투자사의 요구 조건이 확 달라졌습니다. "미래가 아닌 현재 살아남을 수 있는 곳에 더 투자하겠다"는 것, 스타트업들에게 가혹할 수 있지만 현실임을 부정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어렵게 투자를 받더라도 자금 사용처가 더욱 명확해야 할 것이며, 비용으로 인한 효과 역시 뚜렷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금으로 지난 빚을 갚거나, 채용 명목으로 사무실 인테리어부터 꾸미고, C레벨 품위를 고려해 주요 경영진들의 법인차량을 마련하려는 스타트업들은 설 자리가 없는 판이 됐습니다.

지난 2018년 어느 한 스타트업 행사 강연에서 네이버 창업주 중 한명이자 성공한 투자자인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는 "돈을 아껴써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창업자들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지난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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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자금보다 실행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가다 보면 계속 목표와 다른 상황과 환경이 펼쳐지고 법도 계속 바뀌어요. 저희끼리 하는 말이 있어요. 몸싸움 잘 하는 애가 이긴다고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때 궤도를 수정하는 실행력, 시장에 나를 빠르게 적응시키는 능력이 중요해요.”

계절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겨울의 초입, 많은 것들이 바뀐 지금이 바로 ‘몸싸움’을 잘 해야 살아남는 시기인 셈입니다. 빠른 궤도 수정과, 그에 맞는 실행력을 가진 기민한 스타트업만이 생존할 수 있고, 결국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혁신 기업(스타)이 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