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서 잘 나갔어요. 9년 간 2번의 특진과 4번의 수상, 27번 평가에서 17번을 A 이상을 받았거든요. 사람들이 넌 있기만 해도 임원인데 왜 그만 두느냐 했죠. 저도 공포감이 컸지만 네이버를 창업하기로 결심했어요.”
네이버 창업주이자 사회적기업 베어베터를 ‘무보수’로 이끌고 있는 김정호 대표가 지난 20년 간의 창업 스토리를 풀어놨다. 택시 운전사 아버지 밑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가 이제는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 수 있었던 비법을 창업 예비생들에게 전수해 관심을 모았다.
17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프라이머 12기 데모데이’ 행사에 연사로 참석한 김정호 대표는 먼저 자신을 이해진 네이버 전 의장이나 김범수 카카오 의장급이 아닌 평범한 학부 졸업생이라고 소개했다.
“고려대학교 85학번으로, 졸업 후 삼성에 취직해 9년 하고 하루 다녔습니다. 하루 더 다닌 이유는 퇴직금 더 받으려고.”
김 대표는 유니텔 PC 서비스 담당 과장을 하다 회사를 나와 네이버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그 때가 사업자 등록 기준 1999년 6월2일이다. 창업 멤버는 총 8명, 자본금은 5억원이었다. 1천500만원을 투자한 덕분에 그가 가진 지분은 3%였다. 그리고 김 대표가 퇴사한 시점인 2009년 1천500만원 투자금은 총 400억원이 됐고, 세금을 뺀 300억원을 챙겼다.
“네이버의 경우 4대 주주가 100억원이라는 세금을 냈어요. 이재용 삼성 부회장보다 많은 세금을 낸 셈이죠. 그 뒤 주변에서 투자해 달라는 곳에 100억원을 투자했는데, 이 돈으로 1천억원 이상 벌었어요. 굉장히 운이 좋았죠. 카카오, 넵튠, 케이큐브벤처스, 블루홀스튜디오 지금 큰 성공을 거둔 곳에 투자를 하고 보니 흙수저가 다이아몬드 수저가 됐습니다.”
김정호 대표는 현재 베어베터라는 사회적 기업을 30억 들여 창업해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이를 두고 그는 ‘자원봉사’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즐기면서 살아요. 그래도 여러분께 해드리고 싶은 얘기는 딱 하나예요. 젊었을 때 놀지 마세요.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어보죠. 초반 5분 정도 놀면, 이 게임 이길 수 있을까요? 처음 시작할 때 놀아버리면 회복할 수 없어요. 20대의 1년이 50대 때 8년 정도 되는 거 같아요. 한 달이라도 젊었을 때 더 많은 일을 해보길 바랍니다.”
이어 그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아끼는 소비 습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삼성에 다니는 9년 동안 월급의 100%를 적금으로 넣었어요. 일 열심히 해서 좋은 평가를 받아 보너스로 살았습니다. 야근 하면 나오는 교통비 20만원, 해외 출장 갔을 때 나오는 일당과 숙박비를 아껴 살았죠. 소비 습관이 있는 친구에게는 자본이 모이질 않아요. 창업할 때 사실 돈이 많이 들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 때 돈이 없으면 주주로 참여하지 못해요. 네이버가 2002년 상장할 때 누구는 대거 주식을 팔아 람보르기니를 샀지만, (이런 사람은) 그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어요. 소비 습관이 있어서 조금 돈이 생겼을 때 써버리면 확실히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김정호 대표는 네이버 재직 시절 절박했던 상황도 솔직히 털어놨다. 직원에게 월급을 주기 힘들 정도로 두 번의 부도 위기가 있었다고.
“네이버는 두 번 부도날 뻔 했어요. 두 달 있으면 월급이 없어지는 상황이 두 번 있었던 거죠. 이걸 넘길 때 분위기는 애절했고 결사적이었어요. 네이버, 한게임 멤버들은 과거에 대부분 집에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김범수 의장 부친은 시장 건어물 가게를 했고, 대부분이 유복하지 않았죠. 전 재산뿐 아니라 친구 돈도 넣고, 망하면 낭패인 상황이었습니다. 너무 결사적이다 보니 한 달 동안 집에 두 번만 가기 등 이상한 짓도 많이 했어요.”
창업 준비생들에게 김정호 대표는 아이템보다 실행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업 후 예상과 달리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몸싸움’을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업할 때 제일 중요한 거요? 아이템, 자금보다 실행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가다 보면 계속 목표와 다른 상황과 환경이 펼쳐지고 법도 계속 바뀌어요. 저희끼리 하는 말이 있어요. 몸싸움 잘 하는 애가 이긴다고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때 궤도를 수정하는 실행력, 시장에 나를 빠르게 적응시키는 능력이 중요해요. 네이버도 4~5년간 돈을 벌지 못하고 버텼어요. 못 이기면 죽는 격렬한 몸싸움을 했죠. 삼성도 기획력이 좋은 회사는 아니에요. 몸싸움을 잘하는 회사죠. 삼성 출신끼리 잡스 형님이 TV와 자동차에서 미래를 보여줬으면 좋을 텐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스마트폰 다음에)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관련기사
- 프라이머, 12기 데모데이 17일 개최2018.01.17
-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작은 시작부터 해라”2018.01.17
- 김상헌 네이버 고문 “스타트업 멘토 역할 기대 돼”2018.01.17
- 1세대 게임인, 게임인재단에 2억5천만원 기부2018.01.17
끝으로 그는 네이버 창업 당시 두렵지 않았냐는 한 청중의 질문에 매우 공포스러웠다고 답했다. 또 당시 인생의 플랜B는 뭐였냐는 질문에는 재미있는 답변을 했다.
“1억1천만원을 들고 하계동 전세를 얻으러 갔을 때 당시 모 아파트가 1억5천만원이더군요. 이 때 알았어요. 삼성에서 젊은 나이에 과장을 하고 월급도 극단적으로 모았는데 이거 밖에 안 되나 싶더군요. 이건 답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유치한 이유였죠. 어차피 10년 더 다녀도 전세살이겠구나 싶어 창업을 결심했어요. 굉장히 공포스러웠죠. 네이버가 잘 안 됐다면요? 저의 인생 플랜B는 생맥주집이었어요. 대학 5년 간 생맥주 알바를 굉장히 잘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