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고르바초프, 한국과도 인연 깊었다

생활입력 :2022/08/31 13:54

온라인이슈팀

유혈사태 없이 냉전을 종식시켰지만 소련의 붕괴는 막지 못했던 구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오후 사망했다. 향년 91세.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질병으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이날 오후 사망했다. 그는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공동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말년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전대통령의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그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구소련의 최고 권력자로 재임하면서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길고 길었던 미소 냉전을 종식시킨 인물이다.

그는 소련 정치 및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글라스노스트(개방)·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시도했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반발과 보리스 옐친 등 신진 세력의 대두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소련을 붕괴의 길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방에서는 냉전을 종식시킨 그를 높이 평가하지만 정작 러시아에서는 '초강대국 소련을 멸망시킨 매국노'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냉전 종식을 이끌어 한때 서방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 소련 출신 중 세계적으로는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노태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고르바초프 (사진=뉴스1)

그는 한국과 인연도 깊다. 그는 1991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구소련 지도자다. 오랫동안 소련은 적성국가였기 때문에 구소련 지도자 중 한국을 방문한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또 구소련이 1991년 해체됨에 따라 그는 한국을 방문한 마지막 구소련 지도자가 됐다.

고르바초프의 방한은 소련 붕괴 직전인 1991년 4월 19일에 이루어졌다. 당시 그는 일본 방문 일정을 마치고 한국을 방문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를 제주도로 초청, 4월 20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북방정책은 한국의 새로운 대공산권 정책으로 기존의 적대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외교정책이었다.

이 외교정책에 따라 1990년 10월 소련과 국교가 수립됐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이후 러시아와 국교를 재개했다.

1992년 10월 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방한이 이루어질 뻔했다 러시아 정부에서 고르바초프에게 출국 금지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무기한 연기됐고, 1994년 3월이 돼서야 방한이 성사됐다.

30일(현지시간) 사망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이마의 반점이 트레이드마크였다.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그는 유달리 제주도에서 열리는 행사에 많이 참석했다. 첫 방한 장소인 제주도의 풍경이 인상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쉬리로 유명해진 쉬리 언덕과 사계어촌체험마을 등을 둘러봤으며, 아내 라이사가 해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담은 동상이 제주도에 남아 있다. 2001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마에 있는 반점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한국에서도 이마에 있는 반점이 화제였다. 특히 이마의 반점이 한반도 지도를 닮아 널리 회자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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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젊은이들은 이마에 있는 반점이 초콜릿이 흘러내린 것 같다고 해서 ‘고르바초코’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