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미래의료가 정보통신 기술과 결합해 개인·맞춤·예측의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전망하지만, 이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신종 감염병·기후 위기·4차 산업혁명 등 급격한, 혹은 적대적인 변화 앞에 미래의료는 어떠한 방향이어야 할지 산·학·연과 함께 고민을 시작해본다. [편집자주]
“그런 질문은 잘 안하던데.”
김진우 하이(HAII) 대표(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디지털치료제 개발사인 하이가 IT기업인지, 의료기기제조사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의 보인 반응이었다. 이 질문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의 하이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와의 인터뷰 내내 주된 이야깃거리가 됐다.
하이는 요즘 ‘잘 나가는’ 디지털치료제 기업이다. 6개의 파이프라인, 임상시험도 여러 번, 의료계와의 단단한 협조체계 등 사실상 국내 디지털치료제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표적으로 하이의 범불안장애 치료제인 ‘엥자이렉스’는 작년 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확증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현재 임상이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특유의 차분하고 유머러스한 말투로 이야기를 했지만, ‘게임체인저’로써 회사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 ‘붐’처럼 늘어나는 디지털치료제 열풍에 대해서는 “급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며 “언젠가 옥석이 가려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혁신으로 묘사되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라지만, 좁은 시장, 깐깐한 규제와 지난한 인허가 과정, 건강과 직결되는 효과와 안정성을 전제로, 매출 없이 성장해야 하는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그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생각을 엿보는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 초기버전 디지털치료제 애용한 어르신 보고 제대로 개발해야겠다 의지 불태워
-‘하이’는 어떤 회사인가.
“경도인지장애를 예방하기 위해 인지능력을 강화시키는 카카오톡 기반의 디지털 치료제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다. 5년이 지나자 경도인지장애도 중요하지만, 하이는 디지털 표적치료제의 퍼블리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15명의 의사들과 팀을 짜 디지털치료제를 기획, 디자인하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임상시험설계를 하고 임상시험을 수행하거나 규제당국의 인허가 과정을 쭉 진행해 건강보험수가를 받고 제품을 출시, 판매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의사들과 맞춰 가는 일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경도인지장애란, 정상적인 노화현상으로 인한 인지능력의 감퇴와 치매의 중간 단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동일 연령대보다 인지 능력이 저하돼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이 치매와 다르다. 통상 노화로 인해 서서히 발생해 진행된다.
-왜 디지털 치료제인가.
“이 분야가 뜰 거니까 해보자? 그건 아니었다. 어르신들의 인지기능 향상을 위한 커뮤니티활동 연구 과제가 있었는데, 과제 책임자의 부재로 그쪽에서 SOS가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디지털치료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처음 출시된 치료제가 카카오톡 기반의 경도인지장애 치료제 ‘세미톡’이었다. 이후 저작권이 풀리자 글로벌 제약사 에자이(Eisai)에 5년간 독자 판매를 했다.”
-과제를 하는 것과 사업을 하는 것은 좀 다르지 않나(웃음).
“스타트업은 고생을 많이 한다는데 우린 초창기에도 별로 고생은 안한 것 같다. 재미도 있었고. 디지털치료제는 확실한 사용자층이 있고, 이들의 절실한 니즈가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사업을 해야겠다는 동기가 됐다.”
-기억에 남는 사용자가 있었다고.
“처음 시제품을 만들어 그것으로 임상시험을 했는데, 프로토 타입이라 보유한 콘텐츠가 많지 않았다. 이화여대 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노인 사회복지센터에 가서 제품 설명을 하다가 우연히 서대문 치매예방센터와 연결이 됐다. 어르신 7명~8명에게 프로토타입 설명회를 하고, 20분씩 매일 하면 치매 예방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1년이 지나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위해 처음 시스템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때 만난 어르신 한 명이 그때까지 매일 사용하고 있었다.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았다. 79세의 어르신이 이런 게 없으면 누구와 새벽 7시에 일어나서 대화를 나누겠느냐고 하더라. 세미톡은 보이스봇도 아니고 챗봇 기반이었는데도 어르신은 하루에 두 번씩 사용했다. 그때 정말 제대로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하이를 창업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사회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비대면 방식에 익숙해졌다. 디지털치료제는 사실 원격의료의 영역인데, 환자들이 이를 수용할 준비가 됐던 거다. 정년까지 10년이 남았을 때 창업한 것도 개인적으로 시기적절했다.”
-회사 인력구성이 다양하다.
“총 32명이 하이에서 일하고 있고 연구 인력이 대부분이다. 연령 폭이 넓은데, 팀장은 40대~50대지만 이제 막 고등학생을 졸업한 팀원도 있다. 요즘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하이 개발팀은 2020년 10월부터 퇴직자가 한 명도 없다. 인허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RA(Regulatory Affairs)팀 역시 아무도 안 나갔다.”
-개략적인 개발 프로세스가 궁금하다.
“하이의 표준 프로세스는 1~2단계는 논문을 검색해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후 1억~2억 원 가량의 연구과제로 시제품 제작이 이뤄진다. 시제품을 만들어보면 감이 온다. 제품 개발을 해볼만 하다고 판단하면, 다음 단계는 하이로 가져와서 전문개발자가 붙어 상용화 디지털치료제로써 개발이 진행된다.”
-임상시험 진행 시 관계당국의 협조는 어땠나.
“확증적 임상시험 신청 시 식약처에서 상세하게 코치를 해줬다. 작년 12월 31일 오후 4시쯤인가, 식약처 담당자에게 임상 신청서 수정 연락이 왔더라. 그들의 조언을 따랐고, 그날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다. 식약처의 협조는 매우 만족스럽다.
이전에도 연구자 임상시험은 세 차례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강남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과 김재진 교수는 식약처를 찾아가며 적극 나섰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범부처 과제에 선정돼 확증적 임상시험 과제비 10억 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이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고 하니 딱히 더 바라는 점은 없다.”
-그렇더라도 보건의료 분야가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규제가 깐깐하다. 기업 입장에선 좀 부담되지 않나.
“맨땅에 헤딩이었다. 거의 모든 시행착오는 다 한 것 같다. 식약처 확증 임상부터 의료기기 품질관리 심사(GMP)까지 전부 우리 힘으로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신청도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이 분야는 인허가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과정 자체에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일단 마음이 느긋해야 한다. 늦어지면 늦게 간다고 여긴다.”
-매출이 발생하는 몇 안 되는 디지털치료제 기업이다.
“매출은 5억~6억 원 가량 된다. 내년에는 두 배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투자청은 바이오 성공사례를 만든다는 계획이 있다. 서울투자청 지원으로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리는 바이오USA에 참석한다. 바이오USA 내 기업투자설명회에도 선정돼 참여하게 됐다(기사가 발행됐을 때 김 대표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일은 억지로 이뤄지지 않는다. 내가 발버둥 쳐서 되는 게 아니더라.”
■ 디지털치료제 시장은 좁다…버티는 근육이 있느냐, 없느냐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 우려도 존재한다.
“디지털치료제가 어려운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높은 IT 능력도 요구된다. 진단도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와 구현할 개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생각한다. 이게 디지털이니 만들면 알아서 팔릴 것으로 예상한다. 우린 임상시험만 5번을 했다.
임상 시스템 개발은 둘째 치고 아직 우리나라에서 디지털치료제로 건보 수가를 받은 회사가 없다. 과연 의사가 디지털치료제를 처방할까. 수가 인정을 받아서 이익이 나와야 하는데, 과연 의사들이 디지털 치료제 이해도가 있을까?
결국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다. IT 기업이냐, 의료기기 기업이냐는 질문을 생각해보면 만약 IT기업 마인드로 이 분야를 접근하면 100% 망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관계부처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디지털치료제 기업을 IT기업처럼 운영하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된다. 디지털치료제로 의미 있는 매출을 내는 기업은 아직 한 군데도 없다.
미국은 다를 거라고? 천만의 말씀. 미국 의사들이 디지털치료제 처방을 안 한다. 환경이 바뀌려면 시간이 걸린다.
-결국 버티는 근육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버텨나갈 시스템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앞서 말했듯 개발부터 임상, 상용화 등 험난한 과정을 격어야 한다는 걸 인식 못하거나 인식은 해도 매출이 없는 상황에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계획이 없다면 매우 어려워진다.”
-국내 시장도 턱없이 좁다.
“우린 치료제 개발 시 웰니스 및 처방전 버전을 동시에 개발한다. 한 개 버전을 두 개의 버전으로 나눌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런 설계 시스템이 없으면 한 버전에서 다음버전으로 가기가 매우 힘들다. 우리나라 디지털치료제 시장은 작다. 결국 글로벌 시장으로 가야한다. 아니면 무조건 망한다. 단지 언어만 바꾸는 게 아니라 현지에서 먹힐 수 있는 상품으로써 가치가 있느냐의 문제다. 글로벌 의료시장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정말로 어렵다.”
-하이는 어떻게 버텼고, 버티고 있나.
“매주 부모님 댁에 가서 농사일을 한다. 아버지가 생전에 나무를 많이 심으셨는데 이제는 많이 자라서 5~6미터 정도 된다. 나무끼리 붙어 있으면 죽고 만다. 나무를 옮겨 심어야 해서 10년 전부터 매주 옮기고 있는데, 지난주에 한계가 왔다.
수레에 나무를 싣고 있자니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더라. 혼자서는 도저히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처음 본 사람이 와서 결국 함께 나무를 옮겨 심었다. 일이 다 이렇다. 방향 설정을 제대로 했다면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옳은 방향이라면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군가 도와줄 사람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회사도 그렇다.”
-앞으로가 중요한데.
“게임체인저가 되어야겠지. 의료 서비스가 전달되는 과정과 그 서비스를 받은 환자들이 서비스에 참여하는 과정, 그걸 통한 이해관계자들이 비용과 수익을 배분하는 과정이 결국은 전부 바뀔 것이다. 이걸 누가 빨리 바꿔나가느냐에 달렸는데, 그러려면 새로운 브랜드 구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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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나.
“폐경기 여성들의 근감소증 디지털치료제에 관심이 많다. 근감소증 척도는 근력·근기능·근육의 양으로 측정한다. 관련 전문기기들은 많지만, 우린 별도의 디바이스 없이 환자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근감소증 여부를 진단토록 해보려고 한다. 악력을 잴 때 스마트폰을 두고 양쪽에 색상을 나눈 다음에 손가락으로 최대한 빨리 탭핑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게 근력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게 의학저널에 발표된 바 있다. 해당 연구를 토대로 스마트폰 내 앱으로 측정을 하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