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미래의료가 정보통신 기술과 결합해 개인·맞춤·예측의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전망하지만, 이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신종 감염병·기후 위기·4차 산업혁명 등 급격한, 혹은 적대적인 변화 앞에 미래의료는 어떠한 방향이어야 할지 산·학·연과 함께 고민을 시작해본다. [편집자주]
선택과 집중이란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이들은 항상 존재한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뷰노’의 지향점은 후자가 더 가까워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작년 10월 혁신의료기기로 인증받은 ‘딥ECG(VUNO Med-DeepECG)’는 이러한 회사 방향의 산물이나 마찬가지다.
딥ECG는 심부전증·심근경색증·부정맥을 검출하는 소프트웨어형 의료기기다. 통상 심전도 검사는 심장의 전기적 활동을 파형으로 기록된다. 검사 시간이 짧고 비용이 저렴해 접근성이 높지만, 심장질환 선별 효과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한계도 존재한다.
딥ECG는 심장질환자의 심전도 데이터를 AI가 학습해, 육안으로는 알 수 없었던 심전도 데이터의 미세한 차이를 감별해낼 수 있다. 기존에 심전도 검사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심부전증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다.
앞서 생체신호 사업을 총괄하던 이예하 대표는 창립 초기부터 딥ECG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집에 내가 있는데 심전도 디바이스로 측정을 한다고 생각해보자”며 “심부전이나 심근경색 시그널이 온다면? 우리가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예하 대표는 “시장을 보고 나아가자”고 말한다. 국내 의료AI 분야에서 나름의 규모와 인지도를 갖고 있는 뷰노이지만, 더 큰 시장을 찾으려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대표는 시장은 사람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병원 밖의 더 많은 사람들 말이다.
-딥ECG는 어쩌면 리스크가 있는 시도일수도 있지 않나.
“회사가 의료영상 분야로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제품도 이제는 꽤 늘어났고,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회사에는 시장을 보고 나아가자고 했다. 기존 영상 관련 제품 가운데는 시장에 안착한 것들도 있다. 일종의 투트랙 전략이다. 기존 영상 제품은 성능과 안정성을 높여서 안정적으로 매출에 기여하도록 하자.
동시에 더 큰 시장으로 가기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병원에서 만들어낸 솔루션을 병원 밖에서 활용할 수 있다면 훨씬 큰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체 신호 분야의 사업은 일상에서 환자 본인이 건강관리 집중토록 하자는 것이다.”
-소위 돈 되는 쪽에 집중하자는 의견은 없던가.
“물론 안정적인 매출은 중요하다. 때문에 영상에 집중하자는 우려도 있겠지. 그렇지만 더 큰 시장 진입을 노력해보는 것도 해보자는 거다. 생체신호는 그러한 가능성을 실현시켜주는 영역이다.”
딥ECG뿐만 아니라 뷰노는 ‘뷰노메드 딥카스’(VUNO Med–DeepCARS)도 시장에 내놓은 상태다. 딥카스는 일반병동 입원 환자의 전자의무기록(EMR) 등에서 수집한 혈압·맥박·호흡·체온의 4가지 활력 징후를 분석해 심정지 발생 위험도를 제공하는 AI의료기기다.
뷰노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딥카스 임상시험을 진행했으며, 국제 권위의 학술지에 심정지 예측 성능을 입증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식약처는 작년 8월 딥카스를 허가했고, 혁신의료기기로도 지정했다.
뷰노는 딥카스가 일선 의료현장에 본격 도입되면 병원에서 발생하는 심정지를 방지하거나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생체신호를 활용한 딥카스에 대해 건보보험수가 적용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AI 분야의 제도적 지원은 어떻다고 보나.
“식약처의 가이드라인(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의 임상 유효성 평가 가이드라인)은 매우 선진적이다. 전 세계 처음으로 AI 의료기기의 인허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제도는 선진적이지만, 규제 인력 확충은 필요해 보인다. 국내 AI 의료기기 제조사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기업의 니즈를 수용하기에 식약처 관련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관건은 건강보험 수가 적용 아니겠나.
“식약처로부터 허가를 받아도 상용하가 어려운 이유는 의료기기 시장이 건보수가 체계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해외의 의료기기를 국내 도입한다 치자. 외국에서 오랜 기간 상용화가 되었던 것이라 국내 도입시 적정 수가가 적용된다.
반면, 국내 제품은 임상 사용이 부족하니 상대적으로 불리한 측면이 발생한다. 관련 산업을 키우려면 결국 식약처로부터 안전성에 문제가 없음을 인정받아 허가받은 제품이라면, 임상에 사용토록 유도하려는 분위기 조성이 부족한 게 아쉽다.
안전성 이슈가 없으면 바로 시장에 도입해, 우선은 비급여 형태로 정보를 축적한 후 적정 수가를 적용해 시장에 안착시켜야 한다. 선진입, 후평가의 제도 말이다.”
-AI와 데이터는 떼려야 뗄 수 없으니 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의료데이터 활용이 꽤 팍팍하지 않나(웃음).
“그렇긴 하다(웃음). 우린 승인받은 사항 그대로를 연구할 뿐이다.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승인을 취득해야 하고 데이터 관리 방안도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의료기관은 클라우드에 가명화된 의료데이터를 올리고, 우린 이를 분석·학습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승인받은 내용대로 데이터를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10년 후 뷰노는 어떤 기업으로 변모하게 될까.
“창업 후 의료진을 돕기 위한 AI 솔루션을 만들었다. 다음은? 일상에서 고령화에 따른 헬스케어 솔루션을 만드는 방향이 아닐까. 자택에서 뷰노의 심전도 디바이스로 측정을 해 심부전이나 심근경색 신호가 와 곧장 병원에 내원해 검사를 받을 것이다. 병원에서의 검사는 뷰노의 분석 솔루션을 통해 이뤄지고.”
-토탈 케어는 광고 카피라이팅에나 등장하는 것 아니었나(웃음).
“뷰노는 궁극적으로 병원과 일상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회사가 되려고 한다. ‘의미 있는’ 솔루션과 플랫폼을 만들어 환자부터 병원까지 잇겠다는 방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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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는 끝이 났다. 자리를 파하면서 기자는 이 대표를 좀 떠보기로 했다. 경쟁사가 어디냐고 슬쩍 묻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구글’과 ‘애플’이라고 대꾸했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 그가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허황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기술의 방향성이 의료진을 돕고 나아가 환자에게도 가치를 전할 수 있다면. 구글과 애플이 우리의 경쟁자라고 생각해요. 아이폰 만큼 딥ECG가 많이 사용되도록 성장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