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의 '캐즘' 극복하고, 미래를 선도하자

"하이브리드 워크 환경 위한 투자 이뤄져야”

전문가 칼럼입력 :2022/05/30 09:05

조민희 알리콘 공동대표

무려 20년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으로 재임하며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은 저서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전기가 미국 공장을 혁신하는 과정을 이렇게 기술한다.

"신기술의 발명과 그에 따른 생산성 향상 사이에는 종종 상당한 시차가 존재한다. 에디슨이 1882년에 뉴욕의 로어 맨해튼을 눈부시게 밝힌 뒤 40년이 지나도록 전기는 미국의 공장들이 생산성을 높이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전기를 도입하는 것은 단지 공장들을 전력망에 연결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전체 생산 과정을 재구성하고 수직적 공장을 수평적 공장으로 대체해 새로운 전력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린스펀이 언급한 '상당한 시차'는 경제학에서 '캐즘(chasm)'이라는 용어로 정의된다. 여러 관습적 요인들로 인해 신기술이나 신제품이 대중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런 '캐즘'은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2020년 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적으로 휘몰아친 원격근무 전환이나 화상회의 소프트웨어 도입도 그렇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와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각자의 언어로 원격근무가 대중화될 미래를 예측했고, 인터넷 기반 화상회의 기술은 2010년경 이미 현재 수준으로 완성돼 있었다. 인류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 꼭 같은 공간에 모여야만 일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였고, 코로나19는 그 계기를 전 지구적 단위로 마련해 준 것뿐이다.

인류가 코로나19와의 공존 단계로 넘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무실 근무로 복귀하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2년간 배운 '같은 공간에 모이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버리고 전통적 근무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이 과연 기업 생산성과 국가 경쟁력에 도움 될까? '수력으로 돌아가는 공장'을 '전기로 돌아가는 공장'으로 바꾸는,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혁신을 이룩하는 데도 4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혁신을 이룩하기 위해 공장의 물리적 구조,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 생산품 관리 방식 등을 '전기로 돌아가는 공장'에 맞춰 바꾸는 노력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그 힘든 노력은 기존 방식 대비 100배가 넘는 생산성의 향상으로 돌아왔다.

조민희 알리콘 공동대표

이제 우리는 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한 공간에 모여야만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경험적 사실이 더 큰 파급력을 가진 시스템이 되도록 여러 환경을 바꾸는 도전이 아닐까? 전통적 근무 형태에 맞춰 제정된 근무지와 근무 시간에 대한 법령 손보고, 오랫동안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좋은 평가를 받는 한국 인사 평가 문화의 단점도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화상회의 소프트웨어에 투자했던 것처럼, 사무실 근무와 원격 근무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워크 환경을 위한 생산성 도구에 대한 투자도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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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을 열어젖힌 영국은 왜 결국 미국에 뒤처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1차 산업혁명기에 거둔 너무 큰 성공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영국에는 증기나 수력으로 돌아가는 공장이 너무 많아서, 전기로 돌아가는 공장으로 제때 전환할 수 없었다. 반면 1차 산업혁명 방식의 공장 수가 훨씬 수가 적었던 미국은, 전기로 돌아가는 최신 공장을 훨씬 더 빨리 도입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공업 중심 시대'에 특유의 집단주의적 근무 문화를 만들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정보기술 중심 시대'인 지금 과거의 근무 방식에 머물러 있다가는 영국이 과거의 유산에 발목 잡혀 미국에 따라잡힌 역사가 그대로 반복될 것이다. 필자는 그런 역사 대신, 우리나라가 일하는 방식의 '캐즘'을 극복하고, 산업의 미래를 선도하는 역사가 쓰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