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는 인공지능을 모르고, AI기업은 신약개발을 모른다"

김우연 AI신약개발지원센터장, 협업 접점 만드는 것…"이질적 두 분야 융합 역할 맡을 것"

헬스케어입력 :2022/03/30 13:55    수정: 2022/03/30 20:34

“우리나라에서 AI를 활용한 신약이 임상시험에 진입한 사례는 3건에 불과하다.”

김우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산하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장(KAIST 화학과 교수)의 말이다. 김 센터장은 “AI 신약개발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제약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화학 박사를 수료한 이후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의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20년 물리화학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낸 만 45세 미만 젊은 연구자에게 대한화학회가 수여하는 ‘젊은물리화학자상’을 수상했다. 아울러 AI 신약개발 플랫폼 기업인 ‘히츠(HITS)’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의 가능성과 한계를 직접 경험한 터라, 제약협회가 그를 신임 센터장에 낙점했을 때부터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센터장으로 활동한지 한달, 김 센터장은 3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AI 신약개발의 가능성과 AI신약개발지원센터의 역할에 대한 그간의 고민과 향후 방향을 밝혔다.

사진=픽셀, 김양균 기자

■ AI-제약, 달라도 너무 다르다

최근들어 AI를 활용한 신약개발은 제약바이오 분야의 주된 의제로 부상했다. AI 기술이 신약 개발과정에 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러 글로벌 시장분석기관들은 AI를 통한 후보물질 설계부터 유전체 등 생체정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임상과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최적 환자군을 도출하는 등 신약 R&D 전단계에 AI 기술이 활용되면, 신약개발주기가 기존 15년에서 7년으로 단축될 것으로 전망한다.

때문에 전 세계에서는 신약개발 AI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제약기업들은 AI기업들과 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영국에서 AI로 디자인한 신약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 돌입했으며, 그에 앞서 2020년에는 미국에서 AI로 추천한 코로나19 약물재창출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을 거쳐 긴급사용 승인을 받는 일도 있었다.

특히 ‘알파폴드2’의 등장과 인공지능 단백질 설계 기술의 발전은 항체 신약 같은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도 AI 활용의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국내 AI신약개발 스타트업은 38개사로, 지난해 상반기 14개사에 대해 1천700억 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정부도 ‘AI 활용 혁신신약 발굴’ 등 27개 사업을 통해 제약바이오산업의 AI 활용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거대 제약사들도 AI기술 확보에 적극적이다. 현재 30여 곳에서 자체개발이나 신약개발 AI기업과의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AI 신약개발 시장은 M&A, 라이센스 인-아웃 등 이렇다 할 비즈니스 모델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서구와 우리의 AI기술력 차이 때문일까? 국제학회에 발표되는 국내 기업, 대학 및 연구기관의 AI 논문이 대거 늘고 있다는 점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김우연 센터장은 “국내 AI 신약개발 시장의 발전 속도가 더딘 원인은 AI기업와 제약기업이 공동으로 협업할 적절한 접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AI신약개발기술은 아직 글로벌 선두주자와 비교해 그 격차가 크지 않는 만큼 우리도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협업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혁신 기술을 통한 미래의료의 구현’이란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던 기업들은 신약 개발의 복잡한 과정과 ICT와 제약이라는 생소한 분야의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의욕적으로 협업을 시작했다가도 실망만 남는 사례도 부지기수.

김 센터장은 “많은 기업들이 AI기술 도입이나 AI기업과의 협력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조건이 있다. AI기술과 신약개발기술의 두 분야가 상호이해와 협업이 그것이다. 이 지점에서 AI신약개발지원센터의 역할론이 나온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이질감을 녹이겠다는 것이다.

김우연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 센터장. (사진=한국제약바이오협회)

우선 센터는 올해 하반기 ‘신약개발 연구자를 위한 AI 플랫폼’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제약바이오산업에서 AI·시뮬레이션·빅데이터 기술 도입을 촉진시키겠다는 것. ‘융합형 AI 신약개발 전문가 교육’ 사업도 맡는다. 김 센터장은 “올해 신약개발 연구원 맞춤형 학습과정과 현장실습과정을 개설해 신약개발 현장의 AI 전문 인력 부족현상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선 내용처럼 AI기업과 제약사 사이의 ‘물 흐르는 듯한’ 협업은 아직 거리가 멀다. 김 센터장은 “우리나라 AI 신약개발 시장은 협업 측면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주된 이유를 AI솔루션 매칭 과정에서 찾았다.

AI 신약개발 모델은 실제 실험에 적용해봐야 정확한 성능을 알 수 있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AI솔루션이 자신들이 원하는 기술과 성능을 갖췄는지 가늠이 어렵고, AI기업은 자사가 개발한 AI솔루션의 가치를 미리 입증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AI기술과 신약개발 수요가 잘못 매칭돼 공동연구가 좌초하기도 한다. 

김 센터장은 “신약개발자가 AI솔루션을 충분히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며 “IT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의약화학자들도 웹상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AI 플랫폼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일명 ‘신약개발 연구자를 위한 AI 플랫폼’이다.

그는 “플랫폼을 통해 AI 신약개발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여러 매칭이 이뤄질 수 있다”며 “유효물질과 선도물질 발굴단계에 적용할 이 AI 플랫폼은 제약기업이 고가로 구입하는 해외 소프트웨어 도입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문가 자문위원회와 AI 신약개발 협의체 운영 등도 AI업계와 제약업계의 교류의 장이 될 것으로 김 센터장은 기대하고 있다. 그는 “두 전문영역이 소통하고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센터는 오는 5월부터 국내·외 AI기술 동향과 AI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융합형 전문 인력 양성’ 교육도 강화할 예정이다.

‘AI 신약개발 백서’도 발간할 계획이다. 김 센터장은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해당 기술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자문위원들과 함게 AI 신약개발 백서를 발간해 신약개발 전 과정에서 요구되는 AI 기술 로드맵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보건의료 데이터와 관련해 “공공기관의 빅데이터, 데이터 중심병원의 의료데이터를 제약기업의 임상데이터와 연계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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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AI신약개발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제약사는 이른바 ‘주가 띄우기’의 방편으로, AI스타트업들은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

이에 대해 김 센터장은 “이런 우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신약개발 자체가 단번에 성과가 나오는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 많은 기대나 우려 등은 경계해야 한다”며 “기술 성숙과 함께 결과 도출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