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인류가 기술로 확보한 새로운 시공간이다. 그곳을 유익하거나 재미있는 내용물로 채워 이용자 시간을 점유하기 위한 기업간 전쟁이 시작됐다. 그 한편에서는 그곳을 놀이터 삼아 놀면서 돈까지 버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과 놀이의 결합. 새로운 경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에서 새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들의 일상을 엿보는 시리즈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지 3년째, 이제는 회사 회의, 수업 등이 갑자기 원격으로 전환되더라도 당황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공적 활동을 넘어 친구, 친척 모임도 화상회의 솔루션을 이용해 갖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비대면 소통이 익숙해졌다.
비대면 소통은 방역 측면에서 보다 안전하고, 출퇴근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는 등 장점이 있기에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조차 소통의 품질에는 아쉬움을 표한다. 예기치 않게 섞여 소음이 되는 다수의 목소리, 원치 않아도 배경이 되는 주거 공간, 대면 소통에 비해 떨어지는 친밀감 형성 효과 등이 그 이유다.
이런 평가가 쌓일 동안, 순수한 흥미와 호기심으로 비대면 소통의 세계를 확장해온 집단이 있다. 실제 사람의 얼굴 표정, 몸짓 등에 맞춰 움직이는 가상 캐릭터 기반 오픈월드 게임 'VR챗' 이용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애니메이션에서 볼 법한 각종 캐릭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광경이 다소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팬덤이 형성돼 동시 접속 이용자 수가 4만명 수준에 이르게 됐다. VR챗의 묘미에 빠진 이용자들이 다양한 놀이 방식을 만들어냄에 따라 얻어진 결과다.
현재 버츄얼 유튜버로 활동하는 '대월향'도 그 중 한 명이다. "캐릭터가 나를 대신해 움직이고, 직접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계기였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 취미로 해왔던 인터넷 방송에 VR챗에서의 즐거운 순간들을 담았다. 그러는 동안 실제 친구 못지 않게 가까워진 가상공간 속 친구들도 생겨났다. VR챗 콘텐츠가 호응을 얻으면서 구독자 수가 84만명을 넘기는 등 유튜버로서의 성과도 거뒀다.
대월향이 버츄얼 유튜버가 되기 전 계획했던 진로는 웹툰 작가였다. 대학교에서 관련 학과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한 뒤, 반 년간 다녀온 영국 유학이 현재 활동의 밑거름이 됐다. VR챗 활동과 유튜브 영상 제작에 있어 보다 폭넓은 영어권 인구를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된 점이 이점으로 작용했다.
"유학 이후 병역 기간 동안 진로를 고민해봤지만 하고자 하는 게 딱히 없었다. 다만 고등학생 때부터 인터넷 방송에 관심이 있었다. 내가 방송을 보고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웃음을 줘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당시 떠오른 장르가 버츄얼 유튜버였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직접 이야기하는 형식이 기존 인터넷 방송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느낌을 받았고 더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 때만 해도 버츄얼 유튜버가 지금보다 더 흔치 않은 분야였다."
VR챗은 PC만 있더라도 플레이가 불가능하진 않다. 다만 가상 캐릭터를 보다 실감나게 조작하기 위해 VR 헤드셋뿐 아니라 신체 움직임을 인식할 부가기기도 사용되곤 한다. 활동 초반에는 이런 밑천을 갖추기 위해 일반적인 유튜버보다는 애를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기본적인 여건은 다 좋지 않았다. 부모님도 반대하는 입장이셨다.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PC 구입비 등 초기 자금을 조달하고, 당시에 VR 관련 행사에 참가해 상품으로 걸린 VR 기기를 타오는 식으로 조건을 맞췄다. 3D 모델링 프로그램도 무료 버전을 사용하는 식으로. 부모님은 첫 월급을 다 드렸더니 그 뒤로 말씀을 얹진 않으신다."
본격적으로 버츄얼 유튜버 활동을 하면서, VR챗에서 다양한 가상공간들을 친구들과 둘러보며 하루에도 스무 시간 넘게 접속해 있던 날도 있을 정도로 열의를 쏟았다.
대월향의 주력 콘텐츠는 VR챗에서 외국인 이용자들에게 친숙한 유머, 유행어 등을 소재로 함께 노는 장면을 보여주는 '밈 하이라이트'다. 외국인 시청자들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고정 콘텐츠로 자리잡게 됐다. 유튜버로서의 이점 외에도, 같이 게임을 즐기고 콘텐츠를 만들면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었다는 점에서도 이런 콘텐츠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평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동안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도 덧붙였다.
VR챗 이용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콘텐츠들이 지금까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철저한 기획에 기초한 영상 제작도 시도하고 있다. 달에 불시 착륙해 생존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가상공간을 보여주는 영상 등이다. '가장 버츄얼 유튜버스러운 콘텐츠는 뭘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된 시도다.
"콘텐츠 기획에 신경을 많이 쓴다. 제 콘텐츠는 아이디어 싸움이다. 항상 색다른 콘텐츠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목소리가 매력 있거나 언변이 좋은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획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단 많은 것들을 본다. 유튜브도 그렇고, 주 시청자층이 외국인들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유행하는 유머도 많이 찾아본다. 본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일반적인 게임 방송 유튜버와 달리 캐릭터 콘셉트도 많이 고민하게 된다. "
일반적인 유튜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부분으로는 비용을 꼽았다.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3D 가상공간이나 아바타도 새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평균적으로 이런 외주 비용이 월 100만원 가량 든다고 밝혔다.
가상세계를 주 무대로 삼는 메타버스가 차세대 인터넷 서비스가 될 것이란 전망이 여럿 나와 있다. 국내외 대기업들도 자체 플랫폼들을 내놓고 있지만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낸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VR챗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버츄얼 유튜버로서 향후 메타버스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꾸준한 플랫폼 이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초점이 맞춰진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은 이상적인 형태의 메타버스를 기대하기엔 이른 것 같다. 메타버스 내에서 일을 한다거나, 상거래 활동을 하는 모습이 익숙해지긴 어렵지 않을까. 저처럼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가상 플랫폼에서 회사 일거리를 처리하기보다, 엑셀을 쓰는 게 편하기 때문에. 그냥 일반적인 인터넷도 많이 안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VR챗이 메타버스와 가장 비슷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는데, VR챗의 성공 비결이자 한계는 '마이너스럽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상당하지만, 반면 그런 부분을 재밌어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메타가 발표한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은 대중적인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지루하고 밋밋하다. VR챗과 같은 성공을 거두긴 힘들 것 같다. 그외 저작권이나 디지털 성범죄 등 문제 대책도 아직 부족하다."
올해 목표는 버츄얼 유튜버에 특화된 콘텐츠 제작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동시에, 해외 유명 버츄얼 유튜버와도 함께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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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츄얼 유튜버 활동을 일단 많이 하고 싶다. 외국 유명 버츄얼 유튜버들과도 협력해 좋은 인연을 많이 쌓고 싶다. 그게 제 꿈이다. 최근 기획을 많이 가미한 콘텐츠를 많이 선보이려는 것도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