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시작한 '가상 패션', 월 1500만원 수익 났다

[메타버스로 출근하는 사람들] ①제페토 크리에이터 '렌지'

컴퓨팅입력 :2022/02/07 15:39    수정: 2022/02/08 15:21

메타버스는 인류가 기술로 확보한 새로운 시공간이다. 그곳을 유익하거나 재미있는 내용물로 채워 이용자 시간을 점유하기 위한 기업간 전쟁이 시작됐다. 그 한편에서는 그곳을 놀이터 삼아 놀면서 돈까지 버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과 놀이의 결합. 새로운 경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에서 새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들의 일상을 엿보는 시리즈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월 수입 300만원 이상인 직업이 있다면, 웬만한 취업준비생들은 혹할 만한 조건일 것이다. 업계 평균치도 아니고 회사 입사 후 받은 첫 월급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누가 봐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 아닐까. 또 요즘은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면 소위 '스펙'을 공유하는 것이 일상화된 만큼, '어떤 능력자를 뽑길래'라는 관심도 같이 생길 만하다.

지금은 대표적인 제페토 크리에이터로 꼽히는 '렌지'가, 제페토 아바타용 의류 제작·판매로 거둔 첫 월 수입이 이렇다. 시점을 알면 더 의외로 느껴진다. 지금처럼 제페토가 국내 대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주목받기 훨씬 전인 2020년 4월에 거둔 성과다.

렌지가 아이템 제작에 뛰어든 계기도 거창하지 않다. '할 수 있게 돼서'다. 당시 제페토가 아바타용 아이템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고 이와 관련한 공모전을 실시하자, '나도 해볼까'라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

의류를 비롯해 제페토에서 구현되는 물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3D 디자인 설계 솔루션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제페토 아이템을 만들어보기 전에는 이런 솔루션을 배운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관련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는 등 독학으로 시작했다.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수강하는 등 상대적 이점이 따로 없었다는 얘기다.

차별점은 제페토의 '찐팬'이었다는 것 하나다. 렌지는 2019년 제페토를 접했다. 2018년 하반기 제페토가 출시된 것을 감안하면 초창기에 시작한 편이다. 과거 사람들과 재미있는 소통을 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던 온라인 게임이 그리워서 시작한 것이, 꾸준한 소비로 이어졌다. 더 재밌게 즐길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공모전 참여 등 적극적인 크리에이터 활동까지 이어졌다.

중간 과정을 잠시 생략하고 현재의 성과를 짚어보면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제페토 크리에이터 16명을 고용하는 사업자로 거듭났다. 올해 목표는 80명 규모로 이를 확장하는 것이다. 크리에이터만 채용해왔지만, 이런 외연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매니저도 채용 중이다. 본격적인 사업화를 위해 강남 지역에 사무실도 마련했다. 비록 개인 크리에이터로 활동할 때 꿈꾸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당분간 유예하게 됐지만, 특정 업계를 주도하는 기업으로서 도약할 준비를 하게 됐다.

사실상 한 직업군을 발굴한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산업화한 셈이다. 별다른 진로 계획 없던 학생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과정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크리에이터 렌지

■3D 아바타 패션 시장, 이렇게 대박날 줄이야…"월 수익 1500만 기록"

제페토는 이용자가 직접 아바타 아이템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플랫폼 '제페토 스튜디오'를 제공한다. 아이템을 제작해 제출하면 제페토 측에서 심사를 거쳐 이용자가 구매할 수 있게 해준다.

렌지는 제페토 아이템 제작을 위해 3D 설계 솔루션 '마야'를 사용한다. 유튜브를 활용한 독학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더 나은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 관련 강의도 수강하는 등 노력을 들였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월 수입 1천500만원 가량을 거두는 제페토 크리에이터로 자리잡았다. 성과가 확실하다 보니,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걱정도 가뿐히 없앴다.

제페토

"첫날 수익이 6~8만원 정도였다. 당시에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런 방법이 있냐면서 긴가민가 하는 반응이셨다. 나중에는 수익 규모가 커지고, 실제로 어떤 것들을 하고 있는지 보여드리니까 엄청 신기해하면서 크리에이터 활동하는 것을 되게 지지해주셨다. 동생이나 친구들 반응도 이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다소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재치 있고 웃긴 아이템 위주로 제작을 많이 했다면, 요즘은 일상적인 의복에 가까운 아이템을 많이 만들고 있다. 아이템 출시 빈도에 수익이 좌우된다. 매일 아이템을 출시하는지, 일주일이나 2주에 걸쳐 한 개를 출시하는지 등에 따라 월 수입 차이가 난다."

렌지를 비롯한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요즘에는 제페토 크리에이터를 유망 직업군으로 주목하는 시선도 많아졌다. 렌지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제페토 크리에이터가 많이 증가했으며, 이용자도 증가해 제페토 아이템의 평균 가격대도 높아졌다. 제페토가 괜찮은 수익을 거두는 시장으로 입소문이 남에 따라 3D 디자인 능력을 갖춘 인재 유입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수익화 수단이 동일하진 않으나, 마찬가지로 개인이 수익을 낼 수 있는 플랫폼인 유튜브를 보면 장기간 흥행하는 크리에이터가 드물다. 다수에게 주목을 받는 기회가 찾아와도,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크리에이터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1세대 제페토 크리에이터로서 이런 걱정은 없는지 물었다.

"유튜브 같은 경우 크리에이터와 시청자 집단이 상대적으로 확연히 구분돼 있는 것 같다. 제페토는 그렇지가 않다. 3D 아이템 설계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사람도 있지만, 일반인이나 학생도 많고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제페토 크리에이터가 늘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동시에 제페토 이용자 모수도 커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실제로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한 작년 4월 대비 월 매출이 다섯 배 가량 늘었다."

렌지의 제페토 아바타

■"진입 허들 낮추고 싶어 크리에이터 소속사 설립…올해 80명 규모로 확대"

성공한 개인 크리에이터로서 자리잡은 이후에는 제페토 크리에이터 소속사인 '매니지먼트 오'를 만들었다. 이미지 편집이 가능한 사람들을 모아 제페토 아이템 제작을 분업화했다. 렌지가 3D 모델링 작업으로 만든 옷 모형에, 소속 크리에이터들이 제작한 여러 2D 패턴 이미지를 결합해 아이템 제작 속도를 높였다. 원피스 형태의 3D 물체를 만들었다면, 여기에 다양한 무늬나 색감을 입혀 아이템을 만드는 식이다.

매니지먼트 오를 설립한 배경에는 개인 크리에이터 이후의 행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제페토 스튜디오가 서비스되고 판매 수익 1위를 기록했다. 여기서 더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아이템 크리에이터 그 다음에는 무엇이 돼야 할지 고민했다. 아이템 크리에이터로는 당장 1년 정도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었다. 개인 크리에이터로만 계속 활동하면, 똑같은 작업을 계속 한다는 점에서 재미를 잃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제페토 크리에이터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페토 크리에이터란 직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도와 또 다른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네 다섯 명 정도의 크리에이터들을 모아 시작했던 게 지금은 2D 작업 담당 12명, 3D 작업 담당 4명 총 16명 규모로 늘어났다."

올해는 소속 크리에이터 규모를 80명 정도로 늘리고, 이들을 전방위에서 지원할 매니저 직군도 채용할 계획을 잡았다. 인도네시아 등 제페토 이용이 활성화돼 있는 글로벌 시장 공략도 염두하고 있다.

"올해 초까지 목표한 만큼 소속 크리에이터 수를 늘리려 한다. 보다 더 많은 시너지를 낼 수 있게 협업 구조도 바꿨다. 제작되는 3D 템플릿과, 이 템플릿의 재가공 권한도 전체적으로 부여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새로 제작하는 경우가 줄고 기존 템플릿에서 일부를 수정하는, 다른 아이템에서 리본이나 가방 등 일부만 떼 와서 붙이는 식의 작업 방식도 가능해진다. 일주일에 한 개 만들던 걸 두 세 개씩 만들 수 있게 된다. 크리에이터들이 템플릿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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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만큼, 회의론도 상당해졌다.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것인지에 대해 IT 업계에서 다양한 분석이 오가고 있다. 제페토를 비롯한 메타버스 플랫폼이 장기적으로 소구력을 가질 수 있을까. 렌지는 '공간'을 제공하는 메타버스의 특성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짚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채팅을 하듯이, '제페토 월드'라는 3D 공간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같이 논다. 어떨 땐 단점일 수도 있는데, 제페토에는 정말 많은 기능이 제공된다. 일반적인 SNS처럼 친구와 채팅을 하는 동시에 제페토 월드에서 아바타로 킥보트를 타기도 하고, 술래잡기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놀다 보면 타 SNS에 비해 친구들과 유대감, 같은 공간에서 만나고 있다는 느낌을 더 크게 받는다. 그런 게 메타버스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