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로도 뻗치는 '성범죄'..."규제 빈틈 막아야"

처벌 규정 개정·가해자 임시조치 도입·기업 자율규제 강화 등 제안돼

컴퓨팅입력 :2022/01/28 07:49    수정: 2022/01/28 08:40

메타버스로도 디지털 성범죄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아동·청소년 이용자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가상 아바타 기능이 더해졌다는 특성상 기존 범죄 유형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 수단으로도 악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행 수사 체계 및 법제, 플랫폼 운영방침들을 살펴볼 때 메타버스 상에서의 성범죄를 적절히 규제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아직은 피해가 적지만, 향후 메타버스 이용이 활발해질 것을 대비해 각종 제도 상의 빈틈을 메워야 한다는 조언이 제기됐다.

국회에서 27일 열린 '메타버스 매개 아동·청소년 성 착취 현황과 대응방안'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논의가 진행됐다.

■"성범죄자, '가상 아바타' 쓰면 아동·청소년에 접근 용이"

여성, 아동, 청소년 지원 사회단체 탁틴내일의 정희진 팀장은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를 보면 현재 온라인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이용자 간 소통, 동영상 촬영, 실시간 방송, 음성 대화 등 모든 기능들 제공한다"며 "현재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 착취가 나타날 수 있는 또다른 플랫폼으로 메타버스가 추가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온라인 성범죄 관련 상담 사례 중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성희롱이 포함된 대화, 음란물 전달 등의 문제를 발견한 양육자 의뢰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 특성상 디지털 성범죄 발생 시 범죄자 증거 수집이 다소 여의치 않은 점도 우려할 요인으로 꼽았다. 자유롭게 가상 아바타를 설정하고, 가입 시 성별과 나이를 자유롭게 기재할 수 있게 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최근 '로지' 등 실제 사람으로 착각할 만한 가상 아바타가 등장한 점도 주목했다. 가상 아바타가 낯선 상대방에 대한 경계를 약화시켜 디지털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가상화폐를 이용한 금전 갈취 등의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희진 팀장은 "민관 협력을 통해 범죄 발견 및 대응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 책무 강화 차원에서 자율규제 현황을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 착취 정황이 발견될 경우 가해자 계정 차단이나 삭제, 중지 등 처리를 하는 신고의무제도를 도입하고 발견된 사례에 대한 수사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성범죄자에 대한 계정 삭제, 차단을 제도화한 해외 사례들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온라인 플랫폼의 안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메타버스에 활용되는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만큼 산업 규모나 신종 범죄 현황, 신고율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정기적 실태조사도 제안했다.

로지

■"메타버스, 현행 성범죄 규제에선 가해자 빠져나갈 여지 많다"

신민영 변호사는 메타버스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가 국경 없는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해 국제 수사 공조 체계가 공고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해외에 서버가 있고, 또 다른 나라에 해당 서비스 사업자의 본사가 있고, 가해자가 또 다른 나라에 있다는 이유로 수사권이 미치지 못해 피해자만 억울한 경우를 없애야 한다"고 첨언했다.

가족폭력처벌법 상 임시조치 제도를 디지털 성 착취 관련해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신 변호사는 "당장 가해자는 성 착취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데, 수사기관에선 영장이 없으니 긴급체포할 수 없다면서 그냥 이틀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며 "메타버스를 비롯한 온라인 상에서의 성 착취는 적시 대응이 본질인 만큼 임시조치와 유사한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지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TF 팀장은 "현행법 상 메타버스 내에서의 성적 괴롭힘은 통신매체이용음란죄, 명예훼손죄 등 비성범죄로서 다뤄지게 된다"며 "공연성이 요구되다 보니 일대일 소통 상황에 대해서는 범죄 적용이 되지 않고,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의 경우 법원에서 음란성을 엄격히 다루기 때문에 쉽게 언어 등으로 행해지는 성희롱은 적용이 안 된다"고 진단했다.

서 법무부 팀장은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성적 괴롭힘의 80% 이상은 언어를 매개로 한 것인 점을 고려해 온라인 상의 비접촉, 비신체적 성범죄도 규제를 도입할 시점"이라며 "독립된 처벌 규정이 만들어져야 하며, 해외 입법례도 많다"고 법제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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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화 국회 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 조사관은 메타버스 내 성범죄를 적절히 처벌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법제 보완이 필요한 부분들을 지적했다. ▲성범죄 처벌 규정에서 배제돼 있는 아바타에 대한 행위도 제도적으로 편입 ▲청소년성보호법 상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대한 정의에 사전 촬영된 영상물 외 실시간 영상 기반 가해 행위도 포함 ▲성범죄 증거 수집을 위해 아동이 메타버스 이용 시 녹화 기능이 기본적으로 동작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이병귀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장은 "사업자 신고 의무제도 도입, 메타버스 내 경찰·사법 서비스 운영, 전담 수사기관 설치 등 제언의 많은 부분이 공감된다"며 향후 법제 개선을 위한 관련 부처 활동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